망원경으로 본 북녘의 메마른 모습
역동적인 남쪽과 너무 달라
망원경으로 본 북녘의 메마른 모습
역동적인 남쪽과 너무 달라
  • 임범철 군포시지회장
  • 승인 2013.08.30 10:50
  • 호수 38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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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분단의 현장 DMZ를 가다
▲ 1·3세대 탐방 참가자들이 황희 정승이 말년을 보냈던 반구정에서 통일을 반드시 이룩하자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임진각·자유의 다리·제3땅굴·도라산역 등 탐방
“청소년들 국가관·미래관 바뀌는 계기 됐을 것”

 

▲ 임범철 군포시지회장

대한노인회는 안전행정부 공감복지시대 소통 허브빌 사업의 일환으로 세대 간, 계층 간, 지역 간 소통을 위해 1·3세대 간 화합의 다양한 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
그 중 한 가지 사업으로 정전협정 및 DMZ생성 60주년을 기념으로 이 심 중앙회장과 황영하 경기연합회장 등 1·3세대 60여명이 함께 서부전선 DMZ, 땅굴 등을 탐방했다.
임진각(서부전선 안보 관광허브), 자유의 다리(증기기관차), 제3땅굴(1978년 세 번째 발견된 남침 갱도), 도라산 전망대(육군1사단 운영, 전망대), 도라산역(경의선 최북단역), 통일촌(민통선 내 전략촌 마을), 반구정(임진강변 황희 정승이 갈매기와 함께 머물던 곳)을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대부분 예전에 가봤던 곳이었지만 수년이 흐른 지금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집결지인 인덕원역으로 향했다. 서로 인사를 나눈 뒤 버스로 임진각으로 출발하였다.
두 시간 뒤 임진각에는 효창동 출발 팀, 파주시 공설운동장 출발 팀, 인덕원 출발 팀이 모여 인원 파악 후 전망대, 망배단, 자유의 다리를 둘러보았다.
철조망 너머로 보이는 북녘의 모습과 천으로 막은 벽에 써 있는 실향민들의 한 맺힌 글귀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우리 일행은 수속을 하고 민통선 안에 있는 도라산역으로 갔다. 서울과 신의주를 있는 경의선 철도역 중 하나로 해발 156m에 파주시 군내면 도라산리 민통선 안에 있어 도라산역이라 이름 지었다. 임진각역에서 도라산역까지 4km의 구간을 약 2년에 걸쳐 완공 후 2002년 2월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 방문 시 김대중 대통령과 도라산역을 방문하여 철도 침목에 서명을 하기도 해 한반도 통일의 염원을 상징하는 명소가 되었다. 남북 통일이 되면 개성, 신의주를 거쳐 유럽으로 가는 길목이 된다는 가이드의 설명이 더욱 마음을 아프게 했다.

▲ 서부전선 DMZ 탐방 참가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일행은 서부전선 군사분계선 최북단에 자리 잡은 도라산 전망대로 갔다. 송악산 OP가 폐쇄된 후 1986년 사업비 약 3억원을 들여 국방부가 설립한 통일안보 관광지다. 관람석 500석, VIP실, 상황실이 있고 망원경으로 북녘의 메마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개성공단, 장단역, 김일성 동상 등 역동적인 남한의 모습과는 달리 생명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척박한 땅덩어리로 보였다.
포로들이 한 번 다리를 건너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데서 유래한 ‘돌아오지 않는 다리’는 공동경비구역 서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1953년 한국전쟁 말에 이 다리를 통해 포로 송환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이 다리를 이용한 때는 1968년 북한의 초계정에 의해 피랍된 미국 해군 정보선 푸에블로호 선원들이 석방되어 남한으로 건너온 때이다.
1978년 8월 18일 판문점에서 북한군이 미루나무 절단작업 중이던 미군을 도끼로 습격해 보니파스 대위 등 두 명을 살해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 후 새로운 다리를 만들면서 돌아오지 않은 다리는 쓰지 않게 되었단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에 살고 있음을 실감하면서 우리 일행은 제3땅굴을 보러 갔다. 북한이 기습작전을 목적으로 휴전선 비무장지대의 지하를 굴착해서 뚫어놓은 남침용 군사 통로이다. 전술 능력은 1시간에 3만여명의 병력과 야포 등 중화기를 통과시킬 수 있는 규모이다. 땅굴 앞에는 분단의 역사와 자연생태계 영상을 담은 입체 영상물을 상영하는 DMZ영상 관계, 관련 유물과 자료를 전시하는 전시관이 있었다.
땅굴을 직접 체험하기 위해 왕복 1시간여를 걸쳐 다녀오는데 축축하고 눅눅한 실내 공기가 으스스 했고, 머리를 들 수도 없고, 바닥은 굴곡이 심해 걷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베트남 전쟁 때 지하벙커를 연상하게 되어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동행한 청소년들은 남북 분단의 아픔이 나이든 우리보다 훨씬 덜 하겠지만, 이번 DMZ 서부전선 탐방이 그들의 국가관, 미래관을 바꿔 주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을 것 같아 가슴이 뿌듯하였다.
마지막으로 자유로를 달려 돌아오는 길에 임진강변의 반구정을 들렀다. 황희 정승이 87세의 나이로 관직에서 물러난 뒤 여생을 보내며 쉬던 곳이다. 임진강 낙하진에 인접해 있어 원래는 ‘낙하정’이라 했는데 갈매기가 많이 모여들어 반구정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황희 정승은 나라의 근본이 백성이라는 것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고 했을 만큼 조선의 청백리로 널리 알려져 있다.
황희 정승이 안성의 임종석(臨終席)에서 영결(永訣)로 써 준 시가 “우리들 몸이 없어진 뒤의 일은 단지 청렴 렴(廉) 자(字) 하나를 지키는 것이다”라고 한다. 이것만 보아도 왜 모든 백성으로부터 존경을 받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황희 정승의 21대 손으로, 파주에서 600년째 황씨 가문을 지키며 살고 있다는 황영하 경기연합회장의 말씀을 듣고 일행 모두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청소년들은 우리들보다 더 신기한 듯 황 회장을 바라보았다.
반구정을 마지막으로 우리 일행은 처음 출발지로 향하며 아쉬운 하루의 일정을 마무리 하였다.

▲ 이 심 중앙회장이 DMZ를 탐방한 1·3세대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다음날 박근혜 대통령의 광복절 68주년 축사에서 진정한 의미의 광복과 건국은 한반도 평화를 이루고 남북한이 하나 되는 통일을 이룰 때 완성된다고 말했다.
이산가족 상봉과 DMZ내 세계 평화 공원 조성을 북측에 공식 제안했다. DMZ내 평화 공원 조성을 ‘한반도를 신뢰와 화합 협력의 공간으로 만드는 새로운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둘러본 비무장 지대가 세계 평화공원으로 바뀐다면 잘 보존 된 생태 환경으로 인해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어려운 아름다운 공원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한반도 분단으로 떨어져 사는 이산가족의 상봉을 재개하고 서신 왕래도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박 대통령의 축사는 먹먹하고 답답했던 내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 1·3세대 조국분단의 현장 서부전선 DMZ 탐방은 3세대나 1세대인 우리에게 아주 의미가 큰 행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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