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인 폭행 사회문제 대두… 90% “폭력 경험”
의료인 폭행 사회문제 대두… 90% “폭력 경험”
  • 유은영 기자
  • 승인 2013.09.10 11:11
  • 호수 38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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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서 의사 흉기로 찌르고 둔기로 때리고
▲ 응급실에서 의사를 폭행하고 난동을 부리는 환자의 모습이 담긴 CCTV 영상이 지난 8월 13일 유튜브를 통해 공개되면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이 환자는 자기보다 늦게 온 어린 아이를 먼저 진료했다는 이유로 의자를 들어 의사의 머리를 찍고 있다.

진료중 의사 폭행 엄벌하는 개정안 국회 계류 8개월
환자단체 “욕설만 해도 징역형 과한 처벌” 반대


의료단체가 급증하는 환자 폭력으로부터 의료인의 안전과 생명을 보장하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한의사협회 대한간호협회 등 5개 의료단체는 최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료인 폭행시 가중처벌하는 법안을 조속히 통과시킬 것”을 주장했다.
대한의사협회 노환규 회장은 “의사의 90%가 진료공간에서 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민주당 이학영 의원은 지난해 12월 ‘의료인 폭행 가중처벌법’을 발의했지만 국회에 계류중이다. 이 개정안은 진료중인 의료인을 폭행·협박하는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환자단체와 시민단체들은 ‘의사 특권법’이라며 법 개정을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이미 의사를 폭행하는 자를 처벌하는 법률이 다수 존재하고 개정안의 형량이 과도하게 높아 타 법률과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게다가 의사를 밀치기만 해도 5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지도록 한 개정안은 의사 특권을 법으로 보호하는 처사라며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관계자들은 개정안을 보완해서라도 의료인 폭행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진료에 불만을 품은 환자가 의사를 칼로 찌른 일이 올해만 두 건이나 일어났다.
한편, 안전행정부는 환자 사생활을 보호해야 한다며 진료실 내 CCTV 설치를 금지했다.

치료 결과에 격분 칼로 찔러
의사가 환자에게 폭행당하는 일이 급증하고 있다. 환자의 폭행 양태는 단순 폭언이나 협박을 지나쳐 목숨을 노리고 흉기를 휘두르는 일도 빈발한다.
지난 2008년 11월 부산 동구 모 병원에서 혈액투석을 받던 환자가 진료에 불만을 품고 신장내과 의사를 수 차례 찔러 의사가 중태에 빠졌다. 2009년에는 부천의 한 비뇨기과 원장이 전립선염 치료가 효과가 없다며 난동을 부리는 환자의 칼에 찔려 사망했다. 의료인 폭행은 의사에 한정되지 않는다. 같은 해 11월에는 강원도 모 의원에서 환자가 여성 간호사 2명을 흉기로 찔러 1명이 숨지고 1명이 중태에 빠지는 사건이 있었다. 2011년 경기도 오산의 한 치과에서는 치석제거시술을 받은 후 부작용으로 이가 시리다며 보상을 요구하던 환자가 병원장을 흉기로 십여차례 찔러 과다출혈로 사망에 이르게 했다.
지난 7월엔 조선족 환자가 흉터자국 치료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의사를 과도로 등과 우측 팔, 우측 허벅지를 6차례나 찔렀다. 피해를 입은 이 병원 원장은 당시 환자가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자 치료비를 할인해 주고 치료에도 정성을 기울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환자 협박에 무서워 고소 취하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는 응급실 의사 2명 중 1명이 환자와 보호자에게 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는 조사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매년 응급의학과 전공의 지원율이 저조한 가장 큰 원인으로 응급실 폭력과 난동이 꼽힌다. 의사들이 폭력과 난동에 무방비 노출돼 있는 상황에서 올바른 의료 서비스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에 응급의료를 방해한 사람을 5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응급의료법이 작년 5월부터 시행에 들어갔지만 실효성은 없어 보인다.
대한응급의학회에 따르면 폭행 장면이 담긴 CCTV 증거가 있는데도 사건 처리 자체를 안 하려 하고 심지어 응급의료법의 존재조차도 모른다는 것이다. 경찰에 신고하면 고소를 하라고 하는데 신분이 노출된 의사는 고소해도 가해자의 협박에 소를 취하하는 일이 빈번하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합의를 종용한다고 한다.

18대 이어 19대 국회서도 계류
지난 18대 국회에서 민주당 전현희 의원은 의료인 폭행시 가중처벌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환자·시민단체 반발로 응급실 폭행으로 한정돼 복지위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했다. 그러나 이듬해 복지위 전체회의에서 의료법 개정안 중 면허갱신제, 회원 자율징계요구권만 통과되고 응급실 의료인 폭행 가중처벌 조항은 삭제됐다. 2012년에 이르러 응급실 의료인 폭행을 규제하는 법률이 시행되고 있지만 의료인들은 응급실뿐만 아니라 의료기관 전체로 가중처벌의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욕설 한 번에 5년 징역은 과중”
환자·시민단체들은 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한다며 맞선다.
환자단체연합 안기종 대표는 “이미 의료법과 형법에 폭행에 대한 처벌조항이 있는데 의사에 대한 폭력을 가중처벌하는 법을 왜 만들어야 하나”는 입장을 폈다.
특히 안 대표는 의료인 폭행 가중처벌법의 실효성에 의문을 나타냈다. 응급실에서의 폭행을 가중처벌하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이 개정됐을 때 환자단체는 반대하지 않았다. 응급실 의료인 폭행시 다른 응급 환자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응급실 폭행은 대부분 만취 환자나 보호자 또는 조직 폭력배 등에 의해 발생하는데, 이때 다른 환자 진료에 방해가 된다고 보아 찬성했다는 것이다. 안 대표는 “이미 응급실 폭행시 5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가중처벌하고 있다”며 의료인 폭행 방지법을 따로 만들어야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경실련 관계자도 “처벌을 강화해 의료인 폭행 사건을 예방할 수 없다”며 “의료기관의 교육과 관리감독을 우선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자 및 시민단체가 의료인 보호법 마련 움직임에 반대하고 나서는 것은 개정안 내용이 환자에게 불리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 의원이 발의한 가중처벌법은 피해자인 의사와 폭행한 환자가 화해해도 환자가 처벌을 받게 돼 있다. 게다가 법의 적용 범위도 환자 혼자서 흉기 등을 휴대하지 않더라도 진료중인 의료인에게 폭행하려는 몸짓을 취하거나 심한 욕설을 해도 적용된다. 욕설 한 번에 5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는 것은 중형이라는 것이다.
안 대표는 의료인 폭행을 줄일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의사와 환자간에 신뢰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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