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웨딩화보 촬영하는 청년사진가 오치화,강경민
어르신 웨딩화보 촬영하는 청년사진가 오치화,강경민
  • 이다솜 기자
  • 승인 2013.09.13 11:18
  • 호수 38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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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세월 함께 울고 웃은 노부부 가장 아름다워”
▲ 김금식(71), 김재옥(70) 어르신 내외가 멋진 양복과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마주보고 있다.
▲ 이애순(83), 장석종(86) 어르신이 회전 목마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20~30대 활동하는 공간서 노부부 웨딩화보 화제
영정사진 무료촬영 등 어르신 위한 봉사활동도 열심


흔히 신혼부부가 결혼식을 올릴 때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입고 찍는 웨딩화보…. 때문에 웨딩화보는 젊은 연인이나 부부들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헌데 노부부의 웨딩화보를 전문적으로 촬영하는 두 명의 청년이 있다. 바로 스튜디오 ‘엘리펀트 스냅’을 운영하는 사진가 오치화(37), 강경민(30)씨다.
기자가 두 사람의 존재를 알게 된 곳은 인터넷 상의 한 커뮤니티였다. 약 1만명의 젊은 예술가들이 가입해 있는 이 공간은 회원들이 직접 그린 그림이나 촬영한 사진 등을 공유하는 곳이다.
8월 중순, 이 커뮤니티에는 어르신 부부의 웨딩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순식간에 140여 명이 넘는 청년들이 게시물에 대한 긍정적인 마음을 나타내는 ‘좋아요’를 클릭했다. ‘아름다워요!’ ‘정말 행복해보이시네요!’ ‘정말 예쁘고 멋집니다’ 같은 댓글도 달렸다.
오씨와 강씨가 촬영해 올린 사진이었다. 그들은 다양한 분야의 사진을 찍고 있지만, 특히 어르신 웨딩화보 촬영에 주력하고 있다. 돈을 지불한다면, 어르신들의 웨딩사진을 찍어주는 스튜디오는 많다. 그렇다면 그들만의 차별성은 무엇일까.
오씨는 “대부분의 스튜디오가 억지스러워 보이는 웨딩화보를 찍는다”며 “저희는 최대한 자연스러운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촬영하는 내내 두 분의 일상적인 모습을 지켜보며, 이를 사진에 담기 위해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실내 촬영보다 야외 촬영을 선호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르신들을 모시고 야외로 나가 풍경, 그리고 카메라와 친숙해지기까지 충분한 시간을 가진 뒤 촬영을 시작하는 것이다.
웨딩화보 촬영은 의상이나 소품, 메이크업 등으로 인해 기본적인 비용이 발생한다. 때문에 무료로 촬영하진 못하지만, 두 청년은 작업을 추진할 때 절대 돈만 보고 움직이지는 않는다는 것이 설명이다. 즉, 이윤을 적게 남기더라도 웨딩촬영을 간절히 원하는 어르신, 또는 어르신의 자녀들이 있다면 일반적인 스튜디오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촬영도 가능하다는 것.
두 청년이 수많은 사진 중에 어르신들의 웨딩화보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일까. 강씨는 젊은 부부의 사진을 찍다가 문득 가장 아름다운 사진은 무엇일까 고민하게 됐다. 그는 새롭게 시작하는 부부도 아름답지만, 오랜 시간 함께 해 온 노부부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수십 년 동안 함께 살아 온 어르신들의 모습을 담고자 결심하게 됐다.
강씨는 “이혼율이 높아진 요즘, 젊은이들은 함께 웃고, 울며 오랜 세월을 보내 온 어르신들의 웨딩화보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며 “오랫동안 사랑을 지켜온 어르신들의 모습을 부러워하고 동경하면서 ‘우리도 이렇게 늙어가자’고 다짐하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들은 평소에도 틈틈이 시간을 내 복지관에서 영정 사진이나 일반 사진을 촬영해 드리는 등 어르신들을 위한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이다. 어르신들이 평소 자신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지 않는 것이 안타까웠고, 자신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사진촬영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이처럼 어르신에 대한 두 사람의 마음이 각별한 것은 조부모와의 애틋한 관계 때문이기도 하다.
오씨는 어린 시절 외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어르신은 오씨가 군 복무를 할 당시 돌아가셨고, 때문에 임종을 지키지 못했던 것이 한으로 남아있다. 외할머니는 눈을 감는 순간까지 오씨의 이름을 불렀다. 외할머니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오씨는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각별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강씨의 할머니 역시 돌아가셨지만, 다행이 살아계실 때의 모습을 수많은 사진에 담아뒀다. 그는 최근까지도 페이스북 등 인터넷에 종종 할머니의 사진을 올리며, 여러 사람들과 할머니와의 소중한 추억을 나누고 있다.
“할머니는 상당히 재밌고 호쾌하면서도 엄한 분이었다. 사람 대하는 법, 예의범절 등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는 지침을 알려준 분이기도 하다. 때문에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최고의 스승이자 친구다. 실은 어르신들의 웨딩화보를 추진하게 된 것도 할머니의 영향이 크다. 누군가에게 저희가 찍은 어르신들의 사진 한 장이 아주 값진 기록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강씨는 최근 불거지고 있는 청년세대와 노인세대 간 갈등의 원인을 대화 부족으로 본다. 그는 청년들이 먼저 어르신들께 많은 질문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청년들은 어르신들이 모두 꽉 막힌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런 편견을 갖기 보다는, 어르신들이 쌓아 온 삶의 지혜나 노하우를 여쭙는다면, 두 세대의 관계가 가까워질 것이다.”
두 사람은 어르신들과 웨딩화보 촬영을 진행할 때도 촬영과는 상관없는 여러 질문을 하며 대화를 나눈다. 어르신들의 젊은 시절 일이라든지, 어르신들이 처음 만나 사랑에 빠졌을 때의 이야기를 묻는 것이다. 이처럼 대화를 주고받다 보면, 어르신들은 훨씬 편안하고 밝아진 모습으로 촬영에 임해 결과물도 만족스럽다고. 두 사람은 이 모든 것이 대화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앞으로도 어르신 웨딩화보 촬영을 계속할 계획이다.
“조금 더 의미 있는 촬영을 위해 어르신들과 많이 소통하고 연구하고 싶다. 아직까지는 어르신의 자녀분들이 주로 연락을 주는데, 앞으로는 어르신들이 직접 저희에게 사진촬영을 의뢰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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