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시니어 친구들 “동년배 노인에 우정 베풀어 즐거워”
美 시니어 친구들 “동년배 노인에 우정 베풀어 즐거워”
  • 조종도 기자
  • 승인 2014.01.16 20:01
  • 호수 4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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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행복시대 여는 노노케어<4>

미 콜로라도 주에 사는 모이시(80)-소피야(77) 부부는 ‘시니어 친구’(Senior Companions) 봉사단원들이다.
모이시는 노인, 장애인 등 8~10명의 수혜자를 위해 ‘우정’을 베풀고 있다. 그의 고객 중에는 맹인과 거의 앞을 못 보는 시각장애인도 여럿 있다. 그들을 위해 쇼핑 같은 심부름을 해주거나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주기도 하고 전구를 갈아주기도 한다. 수혜자들은 벌써 수년째 모이시의 도움을 받고 있다.
소피야는 8명의 러시아 출신 이민자들을 돌본다. 영어가 서툰 그들을 위해 각종 문서를 영어로 번역해주거나 병원 처방을 받을 때도 도와준다. 소피야는 “나이를 초월해 우정을 나누는 데 즐거움을 느낀다”면서 “특히 수혜자들의 생일을 챙겨주는 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모이시와 소피야는 봉사의 대가로 콜로라도 주 정부에서 주는 일정한 급여를 받고 있다.
“우리는 일을 사랑해요. 때로 일은 힘들고 피곤하죠. 하지만 우리는 결코 수혜자를 떠날 수 없어요. 늙거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누군가 도와야 하기 때문이죠.”
‘시니어 친구’ 10년 경력의 모이시와 15년을 일한 소피야는 2006년 ‘미국을 풍요롭게 하는 노인자원봉사’ 상을 받기도 했다.


미 전역 1만4천명 심부름·말벗 등 활발한 봉사
일자리 아닌 자원봉사…일정 소득 넘으면 무급

▲ 미국에서는 1973년부터 노인이 동년배 노인의 친구가 되어주는 ‘시니어 친구’ 제도가 활발하다. 한 여성 노인이 동년배의 그림 그리기를 도와주고 있다.

미국의 ‘시니어 친구’=모이시-소피야 부부가 참여하는 ‘시니어 친구’ 프로그램은 은퇴자를 위한 미국의 대표적 자원봉사 제도 중 하나이다.
‘시니어 친구’는 60세 이상의 활동적인 노인에게는 고정된 수입과 함께 다른 노인들과 우정을 쌓을 기회를 주고, 수혜자들에게는 시설에 가지 않고 집안에서 머물며 생활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노노케어와 매우 유사하다.
‘시니어 친구’ 덕분에 수혜자의 가족이나 전문 돌보미들은 잠시나마 시간적 여유를 갖게 되고 수혜자들 역시 좀 더 비싼 케어시설로 이동하는 대신 자신들의 집에서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게 된다.
‘시니어 친구’는 1993년 미 자원봉사서비스법에 의거해 설립된 국가 및 지역사회 서비스 공사(Corporation for National & Community Service) 산하의 주요사업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제도의 기원은 1960년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 정부는 1968년 ‘시니어 친구’ 제도를 도입하는 내용이 담긴 노인법 개정안을 내놨으나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후 미 정부는 ‘시니어 친구’ 시범 프로젝트를 탬파베이와 플로리다, 신시내티, 오하이오 주에서 시행하기 시작했다.
71년 12월에는 닉슨 대통령이 ‘백악관 고령회의’에 대한 메시지에서 “노노서비스가 가능한 인적 자원봉사 서비스를 의회가 확대하도록 요구하겠다”고 공식 선언하기도 했다.
73년에는 마침내 자원봉사법에 ‘시니어 친구’ 프로그램이 당당히 포함됐다. 75년엔 무려 1000개 이상의 프로젝트가 시작됐으며, 한 프로젝트에 약 40~120명의 자원봉사자가 소속돼 활동하기에 이르렀다.
미 일간지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2011년 현재 ‘시니어 친구’ 프로젝트에는 1만3600명이 참여하고 있으며, 매년 수혜자 약 6만1000명의 삶에 의미 있는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봉사자들 가운데 40%는 75세 이상이다.
‘시니어 친구’ 봉사자가 되려면 먼저 신체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봉사 대상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프로그램에서 요구하는 사항을 준수할 의지가 있는지도 따진다. 정규교육 여부나 종족, 종교, 출신국가, 성(性), 장애, 정치적 입장 등에 의해서는 전혀 차별받지 않는다.
‘시니어 친구’는 평균 2~4명의 어르신 수혜자에 주당 15~40시간을 봉사한다. 이들은 서비스에 참여하기 전에 오리엔테이션과 정해진 훈련을 미리 받는다.
봉사자들에게는 비과세 시간임금(2011년 기준 시급 약 3000원) 외에도 봉사와 관련된 보험서비스 혜택이 주어진다. 다만 급여를 받으려면 봉사자가 거주하는 주 정부가 정한 액수를 초과하는 소득이 있어서는 안 된다. 지난해 알래스카와 하와이 주를 제외한 소득기준은 1인 2만2980달러(약 2400만원), 2인 3만1020달러(약 3300만원)이다.
특이한 것은 소득 상한선을 초과하는 자원봉사자들을 위해 ‘무급 시니어 친구’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점이다. ‘무급 시니어 친구’는 봉사 시간이나 최소 2명 이상의 수혜자를 보살펴야 하는 점은 동일하다. 이들은 비록 급여를 받지 못하지만 보험서비스 혜택 등은 동일하게 주어진다.


일본, 2000년에 이미 개호보험 도입했지만
가족 이외에 동년배끼리 돌보는 제도는 미흡

▲ 노노개호의 문제점을 주제로 다룬 일본 단편영화의 한 장면. 이 영화는 노년기의 남편이 아내를 돌보다 추억이 서린 호수에서 동반자살을 시도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일본의 노노개호=일본에서는 ‘노인이 노인을 간병하는 것’을 가리켜 ‘노노개호’(老老介護)라고 부른다. ‘노노개호’에는 노인 부부끼리, 형제끼리 돌보는 경우와 90대 부모를 60대 자녀가 돌보는 경우 등이 있다.
2010년 일본 후생 노동성 조사에 따르면, 주요 간병인(돌보미) 가운데 배우자가 약 25%로 가장 많았다. 돌봄이 필요한 70~79세 노인만 따로 조사했더니 비슷한 또래의 노인이 돌보고 있는 비율이 무려 42.6%였다.
노노개호 중 치매에 걸린 노인이 다른 치매 환자를 돌보는 것을 ‘인인개호’(認認介護)라고 하는데 인인개호 역시 증가하고 있다. 개호 대상자 중 치매 환자는 15.3%를 차지하며, 특히 여성에서는 치매 환자가 17.5%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일본의 노노개호는 미국이나 한국의 노노케어와는 성격이 다르다. 미국과 한국의 노노케어는 노인의 일자리 또는 자원봉사와 연계된 사회복지 프로그램인 반면, 일본의 노노개호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고령의 가족들이 돌볼 수밖에 없는 사회적 현상을 주로 가리킨다.
일본 사회는 노노개호가 사회문제가 될 것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특히 노노개호에서는 돌보미가 주위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혼자서 모든 부담을 떠맡는 경우가 많은데, 이로 인해 생기는 ‘개호 피로(疲勞)’는 불행한 사태로 이어지기도 한다.
2013년 2월 18일자 일 아사히(朝日)신문에는 노노개호 끝에 96세의 남편이 치매에 걸린 91세 아내를 살해한 충격적인 뉴스가 실리기도 했다.
같은 해 8월 29일자 일 요미우리신문(讀賣新聞)도 “동년배끼리 이뤄지는 노노개호가 지난 10년간 상승 추세에 있다”면서 “향후 삶의 질이 제대로 유지될지 우려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자립도가 크게 떨어지는 치매 노인수는 2012년 305만명에서 2020년에 410만명, 2025년에는 470만명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경증 치매자가 중증 치매자를 돌보는 ‘인인개호’ 역시 갈수록 늘어날 것으로 일본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고령화를 일찌감치 겪은 일본은 2000년 4월부터 개호보험 제도를 도입했다. 노인의료비의 급증으로 인해 의료보험이 원래의 기능을 유지할 수 없게 될 것이 우려되자 일본 정부는 노인을 위한 전문보험을 만든 것이다. 개호보험은 우리나라에서 2008년부터 도입한 장기요양보험과 유사한 제도이다.
개호보험의 대상자는 65세 이상 노인 질환자(제1호 피보험자)와 40∼64세의 중증 질환자(제2호 피보험자)로 구분된다. 개호보험은 피보험자의 상태에 따라 개호 등급을 매기는데, 예방적 목적의 ‘요지원 1’부터 ‘요개호’ 1~5단계 등 6단계로 나눈다.
일본은 개호보험 이외에도 집이 없는 저소득층 노인이 일정액의 생활비를 지불하고 입소하는 노인복지시설 ‘경비(輕費)노인홈’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경비노인홈은 A형과 B형이 있는데 A형은 급식·보건·목욕 등의 서비스가 제공되고, B형은 비교적 건강한 노인이 자취를 할 수 있도록 시설을 제공하는 것이다.
또한 노인들 스스로 서로 도우면서 삶의 질 향상과 노후 보장을 꾀하는 노력도 함께 시도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고령자 복지클럽생활협동조합이다. 1994년 시작된 고령자 복지클럽생협은 현재 일본 47개 광역 지방자치단체 중 33곳에서 200여개가 설립돼 활동하고 있다. 마을 조합원끼리 서로 도우면서 자연스레 노노케어로 연결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일본은 가족 중심 노노개호의 큰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시니어 친구’나 우리나라의 노노케어처럼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동년배들이 ‘노인 돌봄’을 분담하는 형태로는 발전되지 못했다.
일본의 노노개호는 실직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일본 총무성의 2012년 취업구조 기본조사에 따르면, 일본에서 돌봄이나 간호를 위해 이직하는 사람이 매년 10만명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염지혜 중원대학교 교수(사회복지학과)는 일본에서 노노케어가 발전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일본의 노인복지는 개호보험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면서 “제도 발전과정의 차이와 함께 일본인의 문화적 특성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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