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의 소박한 만찬 앞에서 뭉클해지는 이유…
가족들의 소박한 만찬 앞에서 뭉클해지는 이유…
  • 이다솜 기자
  • 승인 2014.01.17 10:45
  • 호수 4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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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 ‘만찬’
▲ 영화 속 장남의 시점에서 바라본 가족들의 모습. 소박한 식탁을 둘러싼 가족들의 표정이 밝다. 사진­=㈜인디스토리 제공

담담한 시선으로 이 시대의 가족 그려
투박하지만 긴 여운… 1월 23일 개봉


일반적으로 영화가 가족의 끈끈한 사랑에 대해 그리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가족 구성원이 함께 위기를 극복하고 해피엔딩을 맞는 방식으로 교훈을 주거나 현실적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가족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식이다. 1월 23일 개봉하는 독립영화 ‘만찬’은 후자다. 영화 속의 가족이 처한 상황이나 캐릭터가 무척이나 현실적이어서 가상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실제 존재하는 한 가족의 기록을 보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여기 은퇴 후 소일하며 여생을 보내는 노부부가 있다. 아이가 생기지 않는 장남, 이혼 후 자폐증을 가진 아들을 홀로 키우는 딸, 대학 졸업 후 변변한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는 막내아들이 근심거리지만, 그럭저럭 살아낼 만한 일상이다.
어느 날 아침, 아내는 남편에게 미역국과 밥을 차려주며 “나 오늘 생일이예요”하고 담담하게 말한다. 허나 그날 오후까지 자식들은 축하 전화 한 통이 없다. “녀석들이 웬일이지?” 묻는 남편의 말에 “그럴 수도 있죠”하고 넘기는 아내의 모습이 안쓰럽다. 남편은 아내가 안됐는지 외식을 권한다. 그러나 얼마 전 장남의 실직으로 생활비가 빠듯해진 아내는 한사코 거절한다.
남편은 홀연히 밖으로 나가 햄버거를 사온다. 한 번도 햄버거를 먹어본 적이 없다는 아내의 말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아내는 햄버거를 신기해하며 맛있게 먹는다. 작은 행복에도 활짝 웃는 노부부의 모습이 사랑스럽게 그려진다. 대체 이날 자식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던 것일까.
운명은 때때로 끔찍하리만큼 가혹하다. 아내의 생일, 이들 가족에게 닥친 불행도 그랬다. 소리 없이 다가온 여러 개의 악재가 순식간에 삼남매를 덮친 것. 대리운전을 하던 막내아들은 사고로 사람을 죽이고, 장남과 함께 이를 은폐한다. 심장이 약했던 딸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고, 막내아들은 누나의 죽음이 자신의 죗값인 것만 같아 괴로워하다가 마음의 병을 얻는다. 한 순간에 딸을 잃고, 미쳐가는 막내아들을 지켜보는 노부부의 마음은 타들어간다.
비극의 연쇄가 시작되기 전 다섯 식구가 둘러 앉아 함께 밥을 먹는, 영화 중반부의 만찬 장면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갓 회사에 취직한 장남과 결혼을 앞둔 딸, 대학 졸업을 앞둔 막내아들은 큰 걱정 없이 행복한 모습이다. 가족들은 아내가 끓인 김치찌개를 먹으며 기분 좋게 술잔을 부딪힌다. 서로의 밝은 앞날을 기원하면서…. 이미 이들에게 어떤 불행이 닥칠지 알고 있는 관객들은 눈물 한 방울 없는 이 장면에서 가장 큰 슬픔을 느끼게 된다.
백화점에 진열된 고가의 신제품처럼 화려하고 잘 빠진 영화가 쏟아지고 있는 요즘, ‘만찬’은 상대적으로 소박해 보인다. 투박한 화면도 종종 과장됐거나 어색한 배우들의 연기도 눈에 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국내 독립영화 최초로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되는 등 평단의 호평을 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김동현 감독의 뚝심 있는 연출 때문이다. 그는 사건에 휘말린 가족을 보여줄 때조차도 긴장감이나 초조함을 조성하지 않고 특유의 느린 박자를 유지한다. 그저 한 발자국 떨어진 채로 위기에 처한 가족을 보여줄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선은 냉정하기보단 따뜻하게 느껴지는데, 이는 아마도 영화 속 가족에 대한 김 감독의 애정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작위적이지 않은 영화의 화법은 관객으로 하여금 더욱 깊고 잔잔한 감동을 느끼게 한다.
김 감독은 가족을 소재로 영화를 만든 이유에 대해 “청년실업, 명예퇴직, 이혼, 노후 문제 등을 한꺼번에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한 가족의 이야기를 하면 모두 담을 수 있겠다 싶었다”며 “영화 속 가족은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구성원들이고 아마도 이 가족 구성원들에서 벗어나는 대한민국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설명했다.
다가오는 구정, 가족들과 함께 소박한 ‘만찬’으로 긴 여운을 나눠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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