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없는 회사’ 고려제강 언양공장, 평균 63세 직원들이 세계 1위 제품 만든다
‘정년 없는 회사’ 고려제강 언양공장, 평균 63세 직원들이 세계 1위 제품 만든다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4.02.07 11:24
  • 호수 4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고려제강 언양공장 근로자들이 인생 2막의 힘찬 의지를 보이고 있다. 앞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김병섭 반장. 사진=고려제강 제공

“건강 허락하면 70세 넘어서도 일할 것”
야근·특근 없고, 매월 건강검진도 받아


서울 여의도에서 수익률이 좋다는 평가를 받는 신영자산운용의 이상진 사장은 최근 사석에서 “정말 희한한 회사를 다 봤다. 직원 평균 나이가 63세인데 세계 1위 제품을 만드는 회사이다”고 말했다. 그 정도라면 직원들이 당연 젊을 텐데 그렇지 않아 별일이라는 뜻일 게다. 바로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에 있는 고려제강 언양공장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회사에서 현장관리를 맡고 있는 김병섭(65) 반장에게 ‘직원들 모두가 60대 이상이냐’고 묻자 “전체 직원 50명 가운데 현장을 뛰는 직원 34명이 60~70대이다”고 답해 주었다. 김 반장의 경우는 28세에 고려제강에 입사, 지난 2003년 55세에 정년퇴직했다. 촉탁으로 3년 더 일하다 중국에 있는 고려제강에 1년 동안 가 있다 이곳 언양공장이 생기면서 근무하기 시작해 현재에 이르렀다.
언양공장은 중국으로 기존설비를 이전하면서 1년 넘게 비어 있다가 2008년 9월, 퇴직자 전용공장으로 재정비해 문을 열었다. 김 반장의 경우 때맞춰 공장이 오픈한 덕에 쉬지 않고 계속 일을 할 수 있었다. 퇴직자 공장이 생긴 배경은 고려제강 홍영철(66) 회장의 제안에 의해서다. 노동조합이 1993년 항구적 무파업을 선언하면서 노사 화합의 토대를 닦자 홍 회장이 ‘재고용 카드’를 내놓은 것. 홍 회장은 ‘납기와 품질, 생산성 등에서 성공적’이라고 자평했다.
김 반장에게 ‘세계적인 제품이 뭐냐’ 묻자 “모든 자동차에 들어가는 특수선재이다. 자동차 문이나 트렁크를 여닫을 때 작동하는 선재(쇠밧줄)로 뒷바퀴 브레이크 패드를 움직여주는 주차브레이크의 가늘고 긴 쇠줄도 그 중 하나다”고 말했다.
이 쇠밧줄은 현대·기아차는 물론 벤츠·BMW·GM·아우디 등에도 공급된다. 자동차용 선재 분야에서 국내 1위이고, 세계에서 미국 회사와 1위 자리를 놓고 경합을 벌인다고.
선재 제조는 이렇다. 포스코에서 손가락 굵기의 철근을 가져와 연선 과정을 거쳐 0.22㎜ 굵기의 가느다란 쇠줄로 뽑아낸 후 머리단을 따듯 10여겹으로 꼬아 제품을 완성한다. 질기고 단단해야 함은 물론 굵기도 일정해야 한다.
김 반장은 오전 8시, 경남 양산시 중부동에 있는 아파트를 나와 통근차를 타고 30여분 달려 공장에 도착, 오후 6시까지 근무한다. 그는 기계가 잘 돌아가는지, 제품이 제대로 나오고 있는지, 안전사고 위험성은 없는지 등 작업 현장을 살피는 것이다. 김 반장은 “40년 가까이 해온 일이라 육체적으로 힘든 건 없다”며 “버튼 하나로 15~30㎏짜리 완제품을 자동 운반하는 특수 크레인이 천정에 매달려 있어 큰 힘이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공장은 특별히 고령 근로자를 위해 다양한 배려를 해준다. 잔업이나 특근은 없고, 시력이 좋지 않은 걸 감안, 개별 조명을 설치해놓았다. 한 달에 한 번 울산 시내에 있는 병원의 의사가 공장을 찾아와 당뇨 검사와 혈압 체크 등 건강검진을 해준다. 한 직원은 “회사에 나오는 게 곧 건강관리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장은 가동된 지 6년이 돼 간다. 힘든 점은 없을까. 강길훈(59) 공장장은 “고령 직원만 있는 특수성을 고려한 업무 배치와 임금 조정, 작업 환경 조성, 노무 관리 등은 다른 회사 참고가 불가능해 앞으로 풀어나갈 숙제가 많다”고 말했다.
이 공장은 24시간, 주 6일 풀가동된다. 기계를 돌리는 일반 직원들은 3조로 나뉘어 오전 6시~오후 2시, 오후 2시~밤 10시, 밤 10시~다음날 아침 6시까지 3교대로 일한다. 연 100만톤의 특수선재를 생산하며, 2012년 매출은 104억원, 영업 이익률은 6%다.
이들이 받는 보수는 월 160만~190만원. 김 반장은 관리자라 이보다 많은 200만원 선이다. 그는 단 한 차례의 결근이나 지각이 없었다.
김 반장은 지난 구정에 보너스로 한 달 치 월급을 받았다. 그러니까 지난 1월 회사로부터 받은 돈은 400만원 이상이다. 그 나이에 적지 않은 액수다. 김 반장은 “아내가 특히 좋아한다”며 “손주들 세뱃돈도 두둑이 주고, 나를 위해서도 쓰고, 친구들 술도 사주곤 한다”고 말했다.
김 반장은 남매를 두었다. 딸은 포항 포철고 교사이고, 아들은 토목회사 대표이다. 자녀들은 부모에게 손을 벌리지 않아도 되지만 아버지는 굳이 이들에게도 용돈을 쥐어 준다고.
“내 또래의 친구들은 모두 집에서 놀아요. 친구들이 나를 아주 부러워합니다. 모두 회사 덕분이지요. 이렇게 늦은 나이까지 일할 수 있게 해준 회사에 대해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어요.”
공장 근로자의 대부분이 김 반장처럼 노년의 여유로운 경제생활을 누린다. 정년퇴직도 없다. 김병섭 반장은 “70이 넘어서도 건강만 허락된다면 일을 계속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