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가족 돌보는 두 남자의 각별한 사연
치매 가족 돌보는 두 남자의 각별한 사연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4.02.28 14:54
  • 호수 4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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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치매와 관련해 의미심장한 두 남자를 보았다. 한 사람은 공무원 출신의 박정섭(가명·76·서울 사당동)씨로 몇 주 전 전립선에 이상을 느껴 병원을 찾았다. 담당의사 이지열(서울성모병원 비뇨기과)교수는 박씨에게 전립선 특이항원 수치 10(0에 가까울수록 정상, 4보다 높으면 전립선암 의심)이 넘은 검사 결과지를 보여주면서 “왜 이제야 왔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박씨는 “집에서 환자를 돌보느라 병원을 자주 다닐 수 없었고, 오늘 마침 환자와 같이 병원을 찾는 길에 잠시 짬을 냈다”고 말했다. 이 교수가 다시 “일흔이 넘은 분이 간병하는 환자분이 누구냐”고 묻자 박씨가 대답했다.
“아내에요. 치매 때문에 10년 전부터 간병하고 있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씻기고 밥 먹이고 치우고 시간 보내고 동네병원가고 하는 것 모두…. 그러니 제가 병원에 자주 오기 어렵습니다. 오늘 할 수 있는 검사도 좀 빨리해주시고요.”
이 교수는 검사처방을 내고 시행한 조직검사 결과 전림선암을 확인했다. 암 병기는 그리 나쁘지 않아 수술적 치료가 가능한 상태다. 수술을 권하는 담당의에게 박씨는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수술이 겁나거나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수술하는 동안 아내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어렵다는 것이다.
“아내 수발들 사람이 저밖에 없어요. 제가 아니면 아내는 밥도 안 먹고 아무것도 먹으려 하지도 않거든요. 제가 암에 걸렸다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아요. 수술하면 아내를 업고 어딜 다닐 수도 없고 그렇잖아요. 그냥 아내보다 제가 먼저 가지 않게 좀 도와주실 수는 없나요.”
이 교수는 “어르신께 제일 좋은 건 전립선 제거수술입니다. 그게 어려우시다면 암의 진행을 늦추는 호르몬 치료는 받으실 수 있나요, 그냥 지금처럼 가끔 병원에 오시면서 주사를 맞고 피검사를 하시면 됩니다. 하지만 재발의 위험이 있고 그러기엔 어르신의 상태가 많이 아쉽네요”라고 말했다.
박씨는 “괜찮아요. 나이 든 늙은이가 얼마나 더 살겠어요. 그냥 그렇게 해주세요”라면서 “아내가 기다릴 것 같아서 이만…”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또 한 남자는 알츠하이머성 치매로 진단 받은 어머니를 7년째 간병하고 있는 강형철 숭의여대 교수이다. 강 교수는 처음에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지만 이제는 주변 친구들이 가족 중에 누군가가 치매 진단을 받았다고 하면 ‘축하할 일’이라고까지 안심시켜 주는 상태가 됐다. 그 말에 놀란 친지들에게 강 교수는 “이제 당신은 인생에서 가장 즐겁고 희한하고 행복한 일을 만나게 될 것이다”고 덧붙인다.
강 교수에 따르면 치매환자는 곧바로 모든 것을 잊는 것으로 알지만 치매환자라도 정상적인 생각을 하는 시간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 환자 상태에 따라 대응하는 장치가 사회적, 국가적 차원에서 이미 상당 정도 마련돼 있으니 혼자 모든 것을 다 감당한다는 생각을 버리라고 말한다.
가장 중요한 점은 치매에 걸린 가족을 환자라는 생각으로 대하지 말고 기억이 가물가물해져 잘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 조금 많은 어머니, 아버지를 대한다고 생각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라는 것이다.
강 교수는 “만약 우리가 알고 배우고 깨우친 것을 모두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면 어찌될까. 심지어 좋은 일이 아니라 부끄럽고 창피한 혹은 극단적인 굴욕감을 느낀 일이라든가 힘들고 아픈 일들을 하나도 잊지 않고 기억한다면 우리의 머리는 어떻게 될까”라고 반문한 후 “잘 기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잊어버리는 일도 매우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두 남자의 치매환자를 대하는 자세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아내 간병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희생하며 삶을 송두리째 바치는 남편, 어머니의 치매를 자연스런 노화 현상으로 보거나 심지어 좋은 쪽으로 해석하고 여유마저 보이는 아들….
치매는 곧, 가족의 불행이자 고통, 가정경제 파탄의 지름길이라고 하늘을 원망하며 절망에 휩싸이는 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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