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호 감독과 작가 최인호가 나눈 마지막 작별
이장호 감독과 작가 최인호가 나눈 마지막 작별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4.04.04 17:34
  • 호수 4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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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주 기자의 취재수첩

이장호 감독은 일찍이 돈과 여자, 인기가 안겨주는 짜릿하고 달콤한 과실을 맛보았다. 그가 29세에 처음 만든 영화 ‘별들의 고향’(1974)이 지금처럼 ‘1000만 관객’을 동원하면서다. 영화 속 신성일의 “경아, 오랜만에 같이 누워보는군”이란 대사는 요즘 개그에서도 가끔 들을 수 있을 정도다. 며칠 전 이 감독을 만나 어떻게 그런 영화를 만들게 됐느냐고 물었다. 이 감독은 “내가 한 건 없고 원작이 탁월하고 이장희 같은 능력 있는 가수가 멋진 음악을 만들어줘 가능했다”고 대답했다.
원작을 쓴 이가 바로 작가 최인호(1945~2013)이다. 이장호 감독과 최인호는 초·중·고를 같은 학교를 나왔다. 최인호는 덕수초교 시절, 월요일 조회 때마다 교장선생으로부터 백일장 장원 표창장과 상품을 받았다. 이 감독은 멀찍이서 부러운 마음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곤 했다. 이 감독의 말에 의하면 최인호는 그때부터 또래의 아이들보다 조숙했고 영악했다. 이 감독의 고등학교 시절 최인호에 대한 기억.
“우리는 가끔 수업이 끝나면 태평로 덕수궁 뒤쪽 성공회 성당의 정원 으슥한 곳에 숨어서 담배를 피우곤 했다. 그때까지 최인호가 모범생인 줄로만 알았던 나는 의외로 불량학생처럼 담배를 태우던 그 애의 모습을 발견하고 신기하기만 했다. 뿐만 아니었다. 더욱 인상적인 일은 키가 작은 그 애가 입을 꼬부려 휘파람을 능숙하게 불어재꼈는데 내 아버지가 좋아하는 외국곡이었다. come to my garden in Italy….”
이 감독에게 최인호는 친구라기보다는 늘 앞서가는 개척자였고 그 개척의 수혜자는 자신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최인호가 가난하면서도 대책 없이 결혼하자 이 감독도 대책 없이 뒤따라 결혼했다. 그리고 그가 첫딸을 낳았고, 이 감독도 뒤이어 딸을 낳았다고 했다. 최인호가 신문소설 ‘별들의 고향’으로 혜성 같이 등단한 인기 작가로 변신하자 그의 후광을 업고 이 감독도 영화 ‘별들의 고향’으로 신데렐라와 같은 젊은 인기 감독이 되었다는 것이다.
최인호는 침샘암으로 5년 간 투병하다 지난해 유명을 달리했다. 투병 중일 때 이 감독은 최인호를 자주 만나지 못했다. 최인호가 사람들을 기피했기 때문이다. 이 감독은 처음에 섭섭했지만 본인의 뜻이 워낙 완강해 자유롭게 놔두기로 했다. 최인호는 강남성모병원을 다녔다. 한때 병세가 호전되기도 했다. 성모병원 원장이 이 감독의 지인이다. 원장을 통해 이 소식을 전해 듣고 마음속으로 안도하고 기도할 뿐이었다. 이 감독은 그 무렵 일생에 몇 번 안 꾸는 선명한 꿈을 꾸었다고 했다.
“노을이 지는 아프가니스탄 같은 산악지대 협곡을 내가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고 있었다. 최인호를 만나러 가는 거였다. 인호를 만나지 못하면 밤에 어떻게 다시 돌아오나 걱정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어둡고 낯선 동네에서 인호를 못 찾고 방황했다. 수상한 이들이 나를 노리고 접근해 오고, 나는 골목을 쫓겨 다니는 무서운 꿈이었다.”
최인호는 죽기 직전까지 울면서 글을 써 유작집 ‘눈물’을 남겼다. 최인호는 이 책에서 구원의 끈을 놓지 않고 하나님에게 나약하게 매달리다가 나중에는 다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향해 ‘감사합니다’라고 말함으로써 끝을 맺었다. 이 감독은 “그 책을 읽고 가슴이 아팠다”며 “최인호처럼 죽었으면 좋겠다고 기도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일생 동안 너무나 속물로 살았다. 인호는 암 투병의 5년에 이르러 비로소 하나님과 절실하게 만났다. 하나님이 최고의 선물(침샘암)을 주셔서 인호의 일생 마지막 5년간 죽어도 여한이 없는 그런 반성과 속죄를 다하고 갔다.”
이 감독은 최인호가 죽어서도 자신을 깨닫게 했다며 고마워했다. 생전에 최인호를 따라 했듯이 자신도 지금부터 투병기로 들어가 하나님에게 매달리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장호 감독과 작가 최인호, 두 사람의 각별한 우정과 절절한 이별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고, 생의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그에 대한 소중한 참작의 거울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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