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땐 꼬박 학교서 근무…경보장치 울려 혼 빼기도
연휴땐 꼬박 학교서 근무…경보장치 울려 혼 빼기도
  • 조종도 기자
  • 승인 2014.05.09 11:02
  • 호수 4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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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야간 당직원의 근무일지
▲ 초등학교 당직원 오기만 어르신이 자연학습장으로 가는 문을 잠그고 있다.

4층 건물 오르내리며 출입문·창문 단속하는 게 일
잘 때도 경보음·휴대전화에 촉각… 숙면은 어려워


100세시대에는 주된 직장에서 은퇴한 이후 긴 시간의 노후를 보내야 한다. 집에 칩거하는 경우 생활의 리듬을 잃기 쉽고 자칫 건강을 해치게 된다. 건강을 위해서나 소득을 위해서나 일자리를 갖는 게 중요하다. 노후 일자리를 찾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학교 당직원의 일상을 소개한다.

충북 진천의 한 신설 초등학교 당직원인 오기만 어르신(73)은 오후 4시쯤 집을 나선다. 집에서 자동차로 10분이면 도착하는 거리라 근무가 시작되는 4시 40분까지 여유가 있지만 좀 일찍 서두른다.
오 어르신은 학교 당직원으로 일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하다. 주변에선 뭘 그렇게 힘든 일을 하려고 하느냐고 만류하는 사람도 있지만, 먼저 은퇴해서 쉬다 병원에 입원한 몇몇 동창들을 보면서 일을 놓지 않기로 결심했다. 문제는 마땅한 일자리가 없는 것. 지인에게 부탁해도 일흔이 넘은 은퇴자가 갈만한 곳은 없었다. 그가 대한노인회 취업센터를 통해 학교 당직근무자가 된 걸 행운으로 생각하는 이유다.
학교에 들어오다 보니 교실 창문이 열려 있는 게 보인다. 6학년 교실이다. 아이들이 미처 닫지 못하고 간 게 분명하다. 걷다가 눈에 띄는 비닐조각과 휴지를 줍는다. 이건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벌써 몸에 뱄다.
이 학교는 현재 학생수가 몇 명 안 되지만, 올해 6월 1800세대의 대단위아파트가 입주하게 되면 달라질 것이다.
공식 업무 시작은 오후 4시40분부터다. 당직실에서 주차장 CCTV를 보면서 교사들의 퇴근을 확인한다. 오후 5시, 주차장을 가득 채웠던 차량이 많이 빠질 때쯤이면 행정실에 들러 행정실 요원으로부터 당일 지시사항과 함께 당직일지를 받는다.
교사들의 퇴근을 확인한 뒤 오후 5시부터 1~4층을 오르내리며 모든 출입문과 창문을 닫기 시작했다. 1층에만 교무실 등을 포함해 48개의 방이 있다. 학교건물은 방범용 창살이 없는 게 특징이라 1층은 더 신경 써서 잠궈야 한다. 교실 뒤쪽 출입문을 먼저 안에서 잠그고 교단 쪽 출입문은 밖에서 잠근다. 눈여겨봤던 6학년 교실은 재차 확인한다. 잠금과 확인을 거듭하다보니 1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어느새 이마에 땀이 흐른다.
오후 6시, 교내를 순찰하면서 밖에서 잠금을 또 한 번 확인한다. 순찰을 위해 잠깐이라도 마지막 출입문을 나설 때에는 반드시 보안장치를 작동시켜야 한다.
오 어르신은 비상등이나 비상구 안내 표지판에 불이 들어오는지 살펴봤다. 별 이상이 없다. 눈에 띄는 분말 소화기는 한 번씩 거꾸로 흔들어준다. 유사시 작동이 제대로 작동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최근 대형화재라든가 각종 안전사고를 보면서 모든 게 부주의로 인한 인재라는 걸 뼛속 깊이 깨닫는다.
실내외에 설치된 수도꼭지도 신경 써야 할 부분이다. 수도를 사용하고 잠그지 않아 아까운 수돗물이 하수구로 계속 흘러내리거나 드물게 복도로 넘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운동장의 식수대는 물소리도 안 들려 자칫 밤새 물이 낭비될 수 있으므로 반드시 확인한다.
경비회사의 자동경보기가 설치된 출입문은 더 확실하게 꼼꼼히 잠가졌는지 확인해야 한다. 건물 어느 한 곳이라도 열려 있으면 건물 전체가 열려 있는 것과 같아 전자 보안장치가 가동되지 않는다. 만약 보안장치가 제대로 걸리지 않으면 열려 있는 곳을 찾아 닫은 뒤에 다시 가동한다.
돌풍과 함께 비가 오던 날 경보장치가 갑자기 울려 놀란 적이 있다. 경비회사에서는 외부침입자가 있는 것 같다고 연락해왔다. 알려 준 곳을 가보니 교실 창문이 덜 닫혀 있었다. 바람결에 첨단 보안시스템이 오작동한 것이었다. 때론 나뭇가지 그림자의 흔들림도 감지해 외부침입자가 들어온 것처럼 경보가 울린다고 한다.
행정실 직원이나 교사가 야근할 때에는 최종 근무자의 퇴근 예정시간을 확인해 두는 게 편리하다. 이때는 출입문도 다 잠그고 당직실에 대기하는 게 좋다. 야근자를 위해 현관문을 잠그지 않고 당직실에 머물다간 외부 침입자가 숨어드는 걸 놓칠 수가 있다.
오 어르신은 순찰을 마친 뒤 저녁식사를 시작했다. 당직실에는 전기밥솥, 전자레인지, 냉장고 등이 구비돼 있다. 밑반찬을 집에서 미리 챙겨와 냉장고에 넣어두고 먹으니 큰 부족함을 느끼진 않는다. 처음엔 최종 근무자가 퇴실할 때까지 기다린 적도 있지만 요즘은 7시30분까지 무조건 식사를 마친다.
모든 직원이 퇴실한 뒤에는 착신장치를 가동해 휴대폰으로 어디서든 전화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 전화 착신전환이 끝나면 당직실에서 감시카메라 모니터를 보면서 야간근무를 시작한다.
정해진 순찰은 오후 6시, 다음날 새벽 6시 등 두 차례다. 휴일이나 방학 때에는 낮 12시에 한번 더하여 1일 3회 실시한다.
오 어르신은 규정 외에 저녁 9시경 한 차례 더 순찰을 돌았다. 보름이 가까운지 달이 휘영청 밝게 떠 있다. 그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어릴 적 추억을 더듬었다. 마루로 만들어진 교실을 쿵쾅거리며 뛰어다니던 때가 떠올랐다.
당직실에 돌아와 감시카메라 모니터를 들여다보니 슬슬 졸음이 밀려온다. 언제 취침하라는 규정은 따로 없지만 그만의 수칙을 정해 놓고 있다.
잠잘 때 그는 경보음을 잘 들을 수 있도록 무인전자경비 판넬 가까이에 머리를 두고 휴대전화는 베개 밑에 둔다. 어떤 경우에는 경보음을 듣지 못할 수 있고 경비업체 호출 전화를 못 받을 수도 있어서다. 경보음을 못 듣거나 호출전화에 응답하지 않으면 경비회사 직원이 직접 출동한다. 기기 오작동이 아닐 경우 특별한 이유를 입증하지 못하면 당직원이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이날 밤도 별 이상은 없었다. 경보음 한번 울리지 않았다. 그래도 긴장상태는 계속된다. 잠을 꽤 잔 것 같지만 머리가 상쾌하지는 않다. 시계가 어느덧 새벽 5시를 가리킨다. 화장실에 다녀와 정신을 차린 뒤 5시 40분쯤 경보장치를 해제했다. 지난 밤 꺼놓은 수동의 전원도 켜짐으로 전환하고 현관문을 열어 하루 일과 시작을 준비한다.
아침 6시, 오 어르신은 현관문을 나와 밤새 유리창은 깨지지 않았는지, 출입문 상태는 어떤지 점검하면서 4개동을 순찰했다. 아침 순찰에는 30분 정도가 걸린다. 이후 주차장 출입문을 개방하고 1층에서 4층까지 지난 밤 잠근 모든 곳의 현관출입구와 창문을 열면서 밤새 변화 상황을 점검했다. 이때에도 메인 출입구를 나설 때는 경보장치를 가동하고 교내순찰을 돌아야 한다.
아침 7시, 주차장과 화단을 돌아보면서 바람에 날려 온 휴지나 버려진 담배꽁초를 줍고 화단잡초까지 살폈다. 7시30분엔 쓰레기 수거차가 온다. 그는 쓰레기 수거상황을 지켜보면서 말끔하게 수거될 수 있도록 돕는다.
겨울철에는 아침 8시에 난방장치를 가동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수업 전까지 실내온도를 20도로 끌어올리려면 그보다 30분 전에 가동하는 게 낫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침식사는 8시에 한다. 8시30분에는 착신전환을 해제하고 행정실에서 근무일지를 작성한 뒤 이상유무를 구두 보고하고 8시40분께 퇴근한다. 하지만 이는 평일의 경우다. 연휴에는 근무가 계속 이어져, 4~5일 꼬박 학교서 지낼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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