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와 있는 게 제일 행복한데 다시 선거에 나가겠어요?”
“손자와 있는 게 제일 행복한데 다시 선거에 나가겠어요?”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4.06.20 11:40
  • 호수 4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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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 육아일기 펴낸‘2선 의원’출신 이계진 전 아나운서

30여년 아나운서 생활, 강원도지사 선거에서 패한 후 정계 떠나
혼자 1700평 밭농사… 매일 서울 오가며‘국방FM’생방송 진행


이계진 전 아나운서는 여전히 방송활동을 하고 있었다. 다만 우리들이 모르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지난해 4월부터 ‘국방 FM’의 시사프로그램을 맡고 있었다. 2010년 강원도지사 선거에서 패한 후 소식이 끊겼다가 최근 손자에 대한 각별한 사랑을 담은 육아일기를 펴내며 다시 언론의 관심을 받고 있다. 아나운서 생활 30년, 2선(17·18대) 의원 등 과거 화려한 경력을 뒤로 하고 산골로 들어가 농사를 짓는 그를 6월 중순, 서울 후암동에 있는 자그만 커피숍에서 만났다. 부근의 국방방송에서 막 프로를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다.

-방송을 하는 줄 몰랐다.
“아나운서 그만 둔지 10년만이고, 도지사 선거 끝난 지 4년만이네요. 시골집(경기도 광주)서 이곳까지 왕복 130km 거리를 승용차로 오가고 있어요. 군인과 자식을 군에 보낸 부모, 군인의 연인들 대상으로 매일 2시간씩 생방송을 해요. 정치 얘기만 빼고 안보·외교·문화·경제 다 해요.”

-‘국민 아나운서’라는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 자리다.
“그런 생각도 할 수 있겠지만….이 나이에 할 수 있는 일이고 보람도 느껴 즐거운 마음으로 합니다.”

-큰 방송국에서 콜이 오지 않았나.
“이 프로를 하는 도중에 번듯한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지만 정중하게 거절했어요. 그렇게 처신해서는 안 될 것 같았지요.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스스로를 알아서 행동한 겁니다. 사람들은 ‘인생은 60부터’라고도 하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도 하지만 나이는 못 속여요. 확실히 체력이 그전만 못해요.”

-요즘 60대면 청년이란 소리를 듣는다.
“스스로 나이가 들었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거기서 용기를 얻어야 해요. 그걸 무시하면 ‘오버페이스’하는 겁니다. 방송하다 잘못이라도 할 경우 ‘저래서 나이 들면 안 된다’는 비난을 면치 못해요. 욕심을 부리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건 옳지 않다고 봐요. 나도 내 나이에 맞는 관리를 한 거지요.”

이계진 전 아나운서는 3년 전 아들과 팔씨름을 해 완패한 이후로는 늙었다는 걸 인정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2008년부터 손자 2명이 성장하는 과정을 일기처럼 기록해 ‘똥꼬할아버지와 장미꽃 손자’(하루헌)란 책을 펴냈다. 낙선 후유증으로 패닉 상태였을 때 손자와 함께 보낸 즐거운 시간이 ‘힐링’이 돼주었다는 말도 했다.

-제목이 특이하다.
“아이들은 그 나이에 말을 배우고 친구 또래들과 즐기면서 나쁜 말을 먼저 배워요. 그래서 빵꾸, 똥꾸를 배운 거지요. 나에게도 그 말을 쓰더라고요. ‘빵꾸 똥꾸 할아버지야’ 그러기에 ‘우리 규성이는 장미꽃이야’ 그랬더니 아이가 몇 번 대꾸를 하다가 할아버지가 계속 좋은 말만 하니까 안하더라고요. 세상 모든 할아버지들도 같은 마음일 거예요.”

-2선 의원 출신이 육아일기라니 의외다.
“정치인 시절에 ‘집에 가서 애나 보라’는 말이 가장 듣기 싫은 말이었는데 정작 손자를 보니 너무 행복했어요. 이렇게 행복한데 선거에 다시 나가겠습니까.”

-지난 6·4 지방선거에 출마 권유는 없었나.
“있었지만 내가 안 나가겠다고 했어요. 어느 지역이라고 말은 못하겠고요. 지난번 선거에서 나로선 최선을 다해 정직한 선거를 했다고 자부했어요. 그런데 당에서 ‘그렇게 정직하게 해서 되겠느냐’는 말을 듣는 순간 정말 충격 받았어요. 그렇다면 거짓말도 하고 막 해야 한다는 뜻인데 그렇게는 못 나가겠다는 겁니다. 나는 그렇게 배우지 않았거든요.”

-이번 강원도지사 선거는 박빙이었다.
“민심을 얻는 건 공식처럼 되지 않아요. 민심은 바람처럼 왔다갔다하는 겁니다.”

이계진 전 아나운서는 강원도 원주 출신으로 원주고와 고려대 국문학과를 나왔다. 군 복무 중 KBS 아나운서 시험에 합격한 이후 KBS·SBS에서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 ‘한밤의 TV연예’ ‘체험 삶의 현장’ 등 간판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아나운서 시절의 에피소드를 담은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딸꾹!’(1990)이란 책은 70여만부나 팔렸다. 이씨는 “그 책은 광고도 하지 않고 사재기도 하지 않았는데 많이 나갔다”며 “당시 개그맨(김병조)을 웃겼던 책이다”고 밝혔다.

-본인의 얘기인가.
“아니죠. 주변 아나운서들의 경험담을 모은 겁니다. 나는 방송 사고를 거의 내지 않았어요. 초년병 시절, 숙직한 다음날 새벽 5시 뉴스를 정시에 하지 못하고 조금 지나 했던 일이 있어요. 전날 12시까지 일을 마무리하고 새벽 1시에 잠들었다가 자명종 소리를 듣지 못했어요. 그 일로 징계위원회에 올라가고 그랬던 기억이 있네요.”

-왜 정치인이 됐는가.
“원래는 정치할 뜻이 없었어요. 60 초반까지 아나운서 하다가 시골로 들어가 마음의 평화를 가지고 살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노무현 정부 때 (낙하산으로) 내려온 KBS 사장이 내 방송이 자기네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수를 시켜 못하게 했어요. 그때 ‘30년 경력의 아나운서를 하루아침에 자기네들 마음대로 하다니…. 자유 민주국가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하고 분개했지요.”

-그렇다고 해도 국회의원이 될 수 없었을 텐데.
“14대 때부터 여기저기서 콜을 많이 받았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정치에는 뜻이 없어 신문사에 연락해 나는 국회에 나가지 않으니 그런 기사 쓰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을 정도였으니까요.”

-도움을 받은 정치인은?
“아나운서 그만두자 한나라당에서 제일 먼저 연락이 왔어요. 박근혜 대표 시절이니까 그분에게서 도움을 많이 받았지요. 나를 대변인으로 발탁을 했거든요. 처음엔 능력이 안 된다고 거절했어요. 세 번째 연락이 왔을 때 너무 안한다고 하면 청한 이의 입장이 난처할거라고 생각돼 한다고 했지요. 그만큼 정치를 잘 몰랐던 거지요, 남들은 대변인 하고 싶어 줄까지 선다는데 말이지요.”

-의원 생활 중 기억에 남는 일이라면.
“17대(2004~2008)에 문광위, 18대(2008~2012)에 농림위에 소속돼 ‘국어기본법’을 통과시키고, ‘농협구조개선’을 내손으로 주도했어요. 아쉬운 점은 우리나라 간판문화를 바꾸려 했다가 뜻을 이루지 못한 점이에요. 우리의 간판들이 크고 어지럽고 미적 감각이 부족한 면이 많잖아요. 기존의 간판은 그대로 두더라도 새 간판부터는 위치나 크기 등을 도시미관에 맞춰 달도록 법으로 정하려 했지만 간판관련업체로부터 로비가 들어왔어요. 잘 됐다면 미대 나온 청년층의 일자리도 생기고 좋았을 텐데요.”

-문창극 총리 후보 사태를 보고 느낀 점은.
“모든 화는 입에서 나온다는 걸 새삼 깨달았어요. 어지러운 시대를 살아온 이들 중 흠 없는 사람은 드물 겁니다. 그 분은 억울할 수도 있을 거예요. 전체 강연은 그렇지 않은데 일부분만 뉴스를 통해 보여주니까 지탄을 받는다고 생각해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시대에 그 나이, 그 위치라면 젊은 세대 앞에서 말수를 줄여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총리감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다면.
“모르죠. 있겠지만 내가 그것까지 말해야 하나요(웃음).”

-박근혜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나.
“나는 그 편이라 잘 한다고 봅니다.”

이계진 전 아나운서는 1996년 중풍에 걸린 노모와 몸이 약했던 아내의 건강을 위해 시골 생활을 시작한 이후 현재까지 ‘아마추어 농부’로 지낸다. 1700평의 밭에 더덕·고구마·참깨 등 30여가지 농작물을 재배한다. 인터넷도 안되는 산골이지만 근처에 뜻이 맞는 또래의 벗들이 많아 외롭지 않다. 그가 사는 것을 보고 인연을 맺고 들어온 교장·기업의 전무·건축사 등이다. 그들끼리 ‘건농회’(건달 농민들의 모임이란 뜻)를 만들어 해마다 10월, 수확한 농작물과 담아놓은 술을 한 자리에 펼쳐 놓고 ‘옥토버 페스티벌’을 연다. 이 전 아나운서는 “회원 중에 색소폰 부는 분, 노래 잘하는 분도 있다”며 “낙엽 타는 연기 속에서 지지고 볶고 권커니 잣거니 하면서 흥겹게 논다”고 전했다.

-노인에게 농촌은 살기 좋은 곳인가.
“능력이 된다면 농촌에서 살기를 권해요. 지방의 보건소 대단해요. 관리해주고, 약 주고, 방문해서 어떠시냐고 묻고 참 좋아요. 대수술 빼고는 웬만한 병은 다 치료가 가능해요. 나는 자주 활용하는 편이에요. 65세 이상은 약도 무료입니다.”

-노인의 자살률·빈곤률이 높은 걸 어떻게 보나.
“내가 언젠가 스님에게 ‘전보다 잘 사는데도 왜 사람들은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자살들을 하나요’하고 물었더니 스님이 ‘기대치가 높아서’라고 간단히 대답해주었어요. 그게 무슨 뜻이냐, 옛날에는 밥만 먹어도 행복하다고 했어요. 요즘은 돈도 좀 쓰고 여행도 가고 자식도 아버지를 따라주어야 하고…. 그런 욕망이 높아진 반면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까 불행하다고 여기는 겁니다. 스스로 욕망을 줄이고 기대치를 낮추면 불행하지 않아요.”

이계진 전 아나운서는 “여든 노인이 종합병원 옆에 살아야겠다는 것도 욕심”이라며 “병원 옆에 살더라도 누가 도와주지 않으면 죽는다, 그보다는 차라리 보건소장이 찾아오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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