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못잖은 인기와 열정“우린 라디오 실버스타”
프로 못잖은 인기와 열정“우린 라디오 실버스타”
  • 이상연 기자
  • 승인 2014.07.11 14:25
  • 호수 4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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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노인복지센터‘탑 방송국’
▲ 서울노인복지센터‘라디오 실버스타’요원 김종성 어르신과 박인섭 어르신이 7월 8일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프로그램 대본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조준우 기자

2009년 자체 방송 시작… 지난해에는‘보이는 라디오’선봬
총 12명이 DJ 등 담당… 70대가 많지만 어엿한 경력자


서울 종로구 서울노인복지센터를 찾는 어르신들은 매일 오전 10시 30분을 기다린다. 이유는 ‘라디오 실버스타’ 어르신들이 직접 진행하는 센터 자체 라디오 방송 시작 시간이기 때문. 어르신들은 이 순간만큼은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DJ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기자가 센터를 방문한 7월 8일도 예외는 아니었다.
방송 30분전인 오전 10시부터 청취자들이 라디오 스튜디오 앞 복도에 자리 잡기 시작한다. 삼삼오오 모여 앉은 이들의 행렬은 스튜디오가 위치한 3층부터 아래층 복도까지 이어진다. 곧 센터 전체가 북적거린다.
같은 시각, 스튜디오 안도 분주하다. 오늘 방송의 DJ 김종성(76) 어르신은 막바지 대본 수정 작업에 한창이다. 엔지니어를 맡은 김원철(69) 어르신은 선곡된 곡들의 순서 정리에 여념이 없다.
10분 뒤, 김원철 어르신이 시험방송용 음악을 내보내자 모니터링 요원 박인섭(75) 어르신이 센터 곳곳을 돌며 음향 상태를 점검한다. 잠시 후, 박 어르신이 김원철 어르신에게 손짓으로 ‘OK’ 사인을 보낸다. 그러자 김 어르신이 DJ 김종성 어르신에게 ‘큐’ 사인을 날린다. 곧 스튜디오 벽 상단 ‘ON AIR’ 표시등에 불이 들어오고 시그널 음악과 함께 DJ의 멘트가 흘러나온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어김없이 저희 ‘TOP’(탑·방송국 명칭) 방송국 라디오를 청취하러 오신 여러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예년보다 빨리 찾아온 더위 탓에 힘드시지요? 이 노래 들으시고 힘내시기 바랍니다. 첫 곡으로 손인호의 ‘울어라 기타줄’ 들려드리겠습니다.”
김원철 어르신이 음악을 틀자 김종성 어르신이 ‘휴’ 하는 한숨을 내뱉는다. 무사히 방송이 시작됐다는 안도의 한숨이다. 마침 방송 음향을 점검하던 박 어르신도 부스에 도착했다. 방송 시작 전 조금 상기됐던 세 사람의 얼굴이 여유로워졌다.
김원철 어르신은 “시작이 반이라고 처음이 중요하다. 출발을 잘 했으니 남은 방송을 즐기는 일만 남았다”고 말한다.
잠시 후, 노래가 끝나자 김종성 어르신이 본 방송을 시작한다. 방송 타이틀은 ‘대한민국의 근대사’. 그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정확한 날짜까지 짚어주며 일목요연하게 설명해낸다.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닌 듯 보인다.

▲ 엔지니어를 맡은 김원철 어르신이 방송 시작을 알리는‘큐’사인을 보내고 있다.

사실 김 어르신은 방송 경력자다. 군복무 시절에는 국방뉴스 라디오 DJ, 전역 후에는 가수들과 전국을 누비며 각종 행사 사회를 봤다. 그리고 은퇴 후 우연히 알게 된 ‘라디오 실버스타’ 요원 모집에 응시했고, 지난해 3월부터 이곳에서 자신의 장기를 살리고 있다.
이는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 저마다 ‘화려한’ 이력들을 자랑한다.
김원철 어르신은 “고등학교 방송반을 시작으로 서울 여의도 증권거래소 시황 중개, 극동방송 재직 경험 등 두루 방송 관련 일을 해왔다. 현재 우리를 포함해 12명이 방송을 하고 있는데, 대부분이 방송 경험이 있는 이들”이라며 “나는 현재 증권거래소에서의 경험을 살려 경제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날 모니터링 요원 임무를 맡은 박 어르신도 자신의 코너를 자랑한다.
그는 “노인들이 큰 관심을 갖는 건강 관련 이야기를 하고 있다. 신문이나 잡지에 난 건강 관련 기사를 스크랩 해 어르신들에게 알려주곤 한다. 학교 교장 자리를 내려온 뒤 펜을 잡을 일이 별로 없었는데, 덕분에 요즘 다시 공부 삼매경”이라며 “새삼 이런 기회를 만들어 준 서울노인복지센터에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라고 말한다.

라디오 실버스타 사업은 서울시와 센터가 추진했던 ‘실버문화벨트’ 사업의 일환으로 2009년부터 시작됐다. 그때부터 ‘라디오 실버스타’들은 매주 토‧일요일을 제외한 평일(전문 봉사자가 진행하는 수요일 제외)에 오전 오후 한 차례씩 하루 두 번 방송을 하고 있다.
한송이 서울노인복지센터 사회복지사는 “센터 내 자체방송이지만 현재 라디오 방송 고정 청취자는 대략 2000명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고 말한다.
어르신들의 큰 반향을 얻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에 센터는 직접 주최하는 국화축제 등에서 ‘보이는 라디오’ 등을 실시, 더욱 많은 분들이 어르신들이 직접 만들어가는 라디오를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한 복지사는 “올해에도 10월 중 개최하는 국화축제에서 ‘보이는 라디오’ 방송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라디오 실버스타로 활동하는 어르신들은 지난해부터 20만원의 보수를 받고 있다. 자원봉사 사업에서 노인일자리 사업으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비록 큰 액수는 아니지만 라디오 실버스타 어르신들은 큰 사명감을 갖고 방송에 임한다. 30~35분 남짓한 방송을 위해 그 몇 배에 달하는 시간을 쏟아 붓기도 한다.
박 어르신은 “탑 방송국의 ‘탑’은 두 가지 뜻이 있어요. 첫째는 인근 탑골공원의 첫 글자이고, 두 번째는 ‘TOP’(최고)이라는 뜻이에요. 저희들은 후자의 의미를 가슴에 품고 방송을 합니다. 아마 무료봉사로 이 일을 하라고 해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겁니다. 노인들에게 문화를 전달하는 이런 일이 어디 쉽게 얻어지나요”라며 활짝 웃는다.
방송 요원으로서의 보람을 설명하던 박 어르신이 슬쩍 방송 시간을 확인한다. 벌써 시간이 막바지에 달했다. 김종성 어르신이 마지막 곡 레이 찰스의 ‘Hit The Road Jack’을 소개하며 청취자들에게 다음을 기약한다.
“무더위에 각별히 주의하시고 방송 들어주신 분들 감사드립니다. 마지막 곡 들으며 아쉬운 작별을 고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서울노인복지센터 탑 방송국 ‘라디오 실버스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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