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태, 국민은 더 이상 인내하기 힘들다
세월호 사태, 국민은 더 이상 인내하기 힘들다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4.08.29 11:20
  • 호수 4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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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말 고교동창 모임에 나갔더니 10명 중 8명이 “세월호 세자만 들어도 스트레스 받는다”며 “이제 그만 좀 하자”는 반응들이었다. 세월호 피로감이 누적되자 역반응이 나오기 시작했다.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동정과 정부에 대한 분노가 점차 ‘(유가족들이) 너무한다’ ‘정부는 원칙대로 강하게 처리해야 한다’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지난 4월 16일 사고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신문·방송에 세월호 사고 관련 보도가 나오고 있다. 처음엔 탈출 명령을 내리지 않은 선장과 선원, 이를 구하지 않은 채 뱃전을 빙빙 돌던 해경에 대한 질책이 일었다. 유병언과 장·차남의 어처구니 없는 졸부 행세, 구원파의 국가 공권력을 비웃는 불량한 태도 등을 맹렬히 비난하고 엄정한 법 처벌을 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세월호 유가족들의 청와대 행진과 대통령 면담 요구 시위, 금속노조원 ‘유진아빠’의 단식투쟁,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의원의 동조단식, 그리고 다시 길거리로 나선 새정치연합 의원들을 보면서 국민감정은 실망과 책망으로 돌아섰다.
세월호 민심은 여론조사에도 나타난다. 조선일보가 8월26일,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긴급조사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8.6%가 ‘여야가 재협상한대로 해야 한다’며 ‘유가족 뜻에 따라 재재협상을 해야 한다’(43.5%)를 눌렀다. 합의를 지켜야 한다는 의견은 60세 이상 남성(82.5%)에게서, 재재협상 의견은 20대 여성(74.5%)에게서 가장 높이 나타났다. 특히 우리 사회의 균형추인 40대가 재협상 안 지지로 돌아섰다. 응답자의 53%가 수사·기소권을 주자던 지난 8월 초 여론조사와 비교하면 세월호 민심이 싸늘하게 식었다. 문명사회의 근간인 자력구제(自力救濟·피해자가 가해자를 처벌)금지 원칙이 무너진다는 새누리당의 논리가 먹혀들어간 것이다.
하지만 민심이 돌아서는 근본적인 이유는 세월호의 정치화다. 야당은 지방선거와 재보선을 세월호 심판으로 변질시켰다. 상식적으로 사고 책임 비중은 선장·선원> 청해진해운·유병언> 해경· 정부 순이다. 그럼에도 진보진영은 ‘닥치고 박근혜’로 몰며 ‘청와대의 7시간’만 물고 늘어졌다. 유가족의 동선도 이해하기 힘들다. 당연히 청해진해운·구원파농장부터 몰려갔어야 했다. 그런데 이들의 KBS-청와대-국회본관-광화문-다시 청와대 앞의 농성 코스는 정치적 루트로 비칠 수밖에 없다. 이대로 가면 세월호 유가족은 갈수록 고립되지 않을까 싶다.
일반인 희생자 유가족들도 “재협상 안을 수용하겠다”는 쪽으로 기울였다. 이들은 “많은 국민이 서명동참과 릴레이 단식 등으로 저희와 슬픔을 함께해 주시고 있지만 저희 때문에 경제적 어려움의 수렁으로 빠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세월호 특별법을 앞세워 민생과 관련한 법들을 외면하는 정치적 행위를 중단하시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또, “일부 단체 또는 정치세력의 이익을 위해 유족 뜻과 달리 사건 해결의 본질에서 벗어나 정치공세로 변질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이 와중에 ‘유민아빠’의 가족사와 막말 동영상이 속속 드러나면서 그의 진정성에 대한 뒷말이 꼬리를 문다. 이미 단원고 유가족 옆에는 광우병 사태 이후 지겹게 봐온 온갖 대책회의 인물들이 어른거린다. 머지않아 깃발부대와 경찰이 충돌하는 낯익은 풍경이 등장할지 모른다. 우리 사회의 큰 사건들은 으레 그렇게 지나갔다.
세월호 사고에 민심이 식어가는 이유는 또 있다. 세월호 사고를 수습하려면 많은 시간과 천문학적인 비용이 든다. 해양수산부가 최근 국회에 제출한 ‘세월호 사고관련 소요재원 추정’을 보면 세월호 수습비용은 야당·유족요구사항 977억3000만원과 수색·사고수습 및 피해배상 5236억6000만원 등 6213억9000만원으로 예상했다. 이 액수는 인구 25만명인 경남 거제시의 올해 예산과 맞먹는다. 2010년 천안함 사건 때는 전사자(46명) 보상금 129억원, 선체 인양비 94억여원 등 수습 비용이 346억9000만원이었다. 물론 세월호 희생자 수가 6배 이상 많지만 수습비용은 비교가 안 될 정도이다.
국민이 선뜻 공감하기 어려운 특혜 논란도 있다. 단원고 피해학생 전원 대학 특례입학을 비롯해 △유가족들의 직계비속에 대한 교육비 지원 △형제자매들에 대한 교육비 지원 △유가족생활안정 평생지원 등 도를 넘는 보상 및 배상은 다른 재해의 그것과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점은 국민 세금으로 충당해야 한다는 난감한 사실이다.
4개월 넘게 ‘세월호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한편 땀 흘려 번 돈까지 내주어야 하는 이중고에 국민 대다수는 불편하다. 그런데도 야당은 극단적인 장외투쟁에 나섰고, 유가족들은 도저히 들어줄 수 없는 요구조건을 내걸고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민심의 인내심도 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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