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에게 차라리 커피 한 잔 타주는 게 어떨까
도둑에게 차라리 커피 한 잔 타주는 게 어떨까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4.10.31 11:04
  • 호수 4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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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론 집에 침입한 도둑에게 커피 한잔 대접해야 할 것 같다.
최근 춘천지법은 새벽에 집에 침입한 50대 도둑을 때려 뇌사상태에 빠지게 한 최모(20)씨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고 최씨에게 징역 1년 6월을 선고하며 “흉기가 없었고 도망가려고 했던 피해자를 심하게 때려 식물인간 상태로 만든 행위는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없다”고 했다.
미국이었다면 어땠을까. 미국은 얄짤없다. 십중팔구 도둑은 총에 맞아 현장에서 즉사하고 집주인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다음날 출근했을 것이다. ‘캐슬 독트린’(Castle doctrine) 덕분이다. 이는 개인의 집은 성이자 요새이며 폭력에 대항하는 방위수단(17세기 판사 에드워드 코크)이란 개념에서 주거침입자는 사살해도 기소(재판청구)할 수 없다는 법이다.
중국은 어떨까. 중국은 무한 방위권을 적용한다. 중국 형법 제20조 3항에 “생명이나 신체 위험에 맞서 방어를 할 경우 과잉방어에 속하지 않고 형사책임을 지지 않는다”라고 정하고 있다.
이번 판결은 일반 정서와 상식에서 동떨어져 있다. 재판부는 결과만 놓고 판단했다. 원인과 과정을 생략했고, 윤리 및 도덕적 명분과 예측 가능한 문제들을 무시했다. 재판부는 도둑이 식물인간이 됐다고 동정한다. 결과만 본 것이다. 그 이전에 윤리·도덕적 차원에서 도둑의 편에서 동정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짚어보아야 한다.
국어사전에 도둑은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빼앗는 따위의 나쁜 짓. 또는 그런 짓을 하는 사람’으로 나온다. 나쁜 짓을 한 사람이다. 우리는 나쁜 짓을 하지 말라는 주의를 어릴 적부터 현재의 나이에 이르기까지 귀가 마르고 닳도록 듣는다. 역사상 명작과 명화, 명곡 중 상당 부분이 이를 주제로 한다. 인류문화유산처럼 소중하게 지켜야할 양심이다. 도둑은 이 양심을 버리고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이다. 당연히 개인이나 국가가 보호할 의무가 없다. 집주인은 재산 형성을 위해 많은 땀과 눈물을 흘렸다. 이런 피 같은 재산을 뺏으려한 이를 국가가 동정하고 보호하려 한다면 누구나 도둑이 되려 할 것이다. 윤리와 도덕을 뿌리째 뒤흔드는 판결로 상당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1954년 해병 장교를 사칭해 70명의 여성을 농락한 박인수 사건을 이 시점에 음미해 볼만하다. 당시 69명의 여성들이 피해자라고 주장하자 법원은 “쌍방합의에 의한 간통”이라고 박인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며 유명한 판결문을 남겼다. “법은 정숙한 여인의 건전하고 순결한 정조만 보호할 수 있다.” 법은 지켜줘야 할 가치가 있는 인권만을 보호해주어야 한다. 우리는 정상적인 인권(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통과 희생, 비용을 감당하고 있는가 말이다.
두 번째는 흉기 유무이다. 과연 도둑이 흉기를 가졌는지 아닌지를 시야가 확보 안 되는 캄캄한 밤에, 그것도 찰라와 같은 짧은 순간에 어떻게 구분하느냐이다. 손에 들고 있지 않았다고 흉기를 갖지 않았다는 건 유아적 판단이다. 칼은 호주머니에도 얼마든지 들어간다. 도둑은 낯선 집의 구조를 파악해 더 많은 재물을 훔쳐가려고 가능한 한 빈손을 만든다.
세 번째는 폭력의 정도이다. 왜냐하면 그에 따라 대응의 폭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정당방위의 도를 넘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이 부분은 어떠한 시뮬레이션을 대입해도 추측조차 불가능하다. 도둑의 힘이 얼마나 센지, 무슨 상황이 전개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부는 ‘모범적인 펀치’를 주고받는 그림 같은 장면을 요구한다. 상식에서 한참 먼 무리한 요구다. 급박하게 전개되는 위급한 상황을 사후에 정당방위·과잉방위의 잣대로 들이대는 건 이치에 맞지 않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정당한 노동을 통하지 않고 남의 것을 빼앗고자 하는 이들의 품성은 폭력과 살인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점이다.
이번 판결대로라면 앞으로 도둑이 집에 침입한 순간 흉기 유무를 파악하고, 도둑이 얼마만큼 힘이 세며, 어떤 심성을 가졌는가를 판단해 대응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어떤 형태의 물리적 상황이 벌어질 것인가도 미리 알아 힘 조절을 해야 한다. 그런데 사람은 미래에 벌어질 불가항력적인 일을 통제하는 초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럴 바엔 차라리 도둑에게 수고한다며 커피 한 잔 타주는 게 속 편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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