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품위(品位)있는 노년(老年)
금요칼럼-품위(品位)있는 노년(老年)
  • super
  • 승인 2006.08.25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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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두번째로 추기경이 된 정진석 추기경은 로마에서 서임행사를 마친 뒤 언론과의 회견에서 “정직하게 자기의 분수를 지켜라, 분수에 넘치는 욕심이 여러가지 문제를 부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나는 어딜 가든 밤하늘의 별을 쳐다본다. 서울에서도 항상 오후7~8시에 산책을 하면서 별을 헤아리고, 하루의 일과를 정리하면서 나만의 시간을 보낸다. 행복의 핵심은 마음의 평화, 영혼의 평화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욕망을 억제하고 자연과 가까이 하면서 스스로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행복한 삶의 자세임을 일깨워주는 말이다.

그러나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은 그렇지가 못하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더 넓은 아파트를 가지려고, 더 유명해지기 위해, 더 큰 권력을 차지하려고 아웅다웅 하면서 바쁘게 돌아가느라 마음의 여유를 잃고 산다.

 

직장에서 은퇴한 사람도 오랫동안 바쁘게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살아온 생활방식이 생리적 습관이 돼 퇴직 후 한동안 심신의 조절기능을 잃고 병적인 상태에 빠지는 경우도 흔히 본다. 현역시절 조직 안에서 비교적 상위직급에 있던 사람일수록 이런 유형이 많다.

그도 그럴것이 지금까지 많은 사람을 거느리고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며 사회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으며 그것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누구에게도 권한이 없는 단지 한사람의 개인으로 돌아오고 보면 그런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초대받던 회식자리도 차츰 뜸해지고 골프장에 가도 직함이 없는 사인(私人)을 특별히 대우하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아침마다 태우러오던 승용차가 없어지고 집안에서도 특별히 할일이 없다. 그래서 스스로를 이제 사회의 무용지물이 됐다고 생각해서 의기소침해진다.

노년을 맞아 가장 비참한 것은 자신이 이제 쓸모없는 존재가 됐다고 생각할 때다. 누구나 언젠가는 사회로부터 은퇴하기 마련이다. ‘은퇴’란 사회에 얽매어있던 타율적 생활에서 본래의 자신으로 되찾아가는 자기로의 회귀이다.

 

그동안 가족도 모르고 건강도 돌보지 못하면서 일에만 메달리던 생활에서 해방되어 자유롭게 자신의 인생을 음미하고 인간 본연의 정신적 삶을 누릴 수 있는 값진 시기인 것이다.

2천여년 전 제정로마시대의 철학자 세네카는 “돈이나 지위, 물질은 살기위한 수단일 뿐이다. 이런 수단을 얻는데 일생을 다 보내지 말라. 그렇게 사는것은 사는것이 아니라 단지 숨쉬고 있는데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동양에서도 돈이나 명성, 권력에만 집착하는 사람을 천하게 여기고 비록 가난해도 마음의 소리를 들으며 평온하게 사는 삶을 존경했다. 어떤 나이가되면 은퇴해서 은거(隱居)하고 원래의 자기로 돌아가 유유자적하게 살려고 하는 문화의 전통이 있었다.

 

세상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은사(隱士)로서 존경하고 기렸다. 그들은 마음을 비우고 자연을 벗삼아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살았다.

새가 울면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꽃이 피면 꽃향기를 맡고, 바람이 불면 바람의 방향에 눈을 돌려 자연속에서 천지우주를 느꼈다. 잡초속에 피어있는 풀꽃 한송이, 산여울에서 헤엄치고 있는 작은 물고기, 두둥실 떠가는 흰구름, 아름다운 저녁노을…, 감탄할거리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정신석 추기경의 별 헤아리기도 이런 차원이다. 자연의 소리는 가장 고요한 가운데 들려온다. 마음이 번잡해서는 들을 수가 없다. 조용히 명상을 하든가 자연에 몸을 맡기고 힘을 빼야 자연을 느끼고 거기에 넘치는 에너지(생명력)를 받아드릴 수 있다.

 

마음의 평온을 얻는 길을 알려주는 종교의 가르침은 어느 종교든 하나같이 먼저 ‘마음을 비워라’는 것이다. 늙어서도 세속의 욕망을 버리지 못하고 바둥바둥 하는 것이 가장 추한 인생의 모습이다. 이를 두고 노추(老醜)라고 하지 않는가.

로마 최고의 문인이었던 키케로(기원전 106~43년)는 “노년의 탐욕을 나는 이해할 수 없네, 가야할 여로(旅路)가 점점 짧아지는데 더욱 많은 여비를 마련하겠다고 초조하게 구는 것처럼 미련한 일이 어디 있는가”라고 한탄했다.

사람의 육신을 타고난 우리 모두에게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삶의 여정이 정해져있다. 나이가 들면 몸은 쇠약해지고 기력도 잃어간다. 그리고 마침내 올 때처럼 빈손으로 죽음을 맞는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인과율(因果律)이다. 이것을 거스르고 가진 것을 지키겠다고 노심초사 하는 것을 번뇌(煩惱)라고 한다. 아무리 물질적 성공을 거두었다 해도 번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노년은 비참한 인생이다.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정해진 운명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인과의 법칙에 순응할 때 얻을 수 있는 것이 원숙하고 지혜로운 삶이다. 물이 맑고 고요하면 물속이 깊어도 환히 보이듯 내가 나를 알고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나 자신의 삶을 산다면 온전한 삶이 되는 것이다.

 

욕망의 거푸집을 벗어던지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조용하고 순수하게 보내는 인생의 노년, 그것이야 말로 행복하고 품위있게 살다 가는 길이다.

‘인생에는 화려한 클라이막스가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행복한 종말이 더욱 중요하다’-플르 타크(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전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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