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 문건’ 파문… 국가개조 외쳐온 청와대에 눈총
‘정윤회 문건’ 파문… 국가개조 외쳐온 청와대에 눈총
  • 유은영 기자
  • 승인 2014.12.05 11:26
  • 호수 4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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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국정개입설로 정국이 소란스럽다.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을 담은 청와대 내부 문건이 외부로 유출되면서부터다.
세계일보는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비서실장이던 정윤회씨가 청와대 비서관 3인방을 통해 국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담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문건을 지난 11월 28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올 1월 6일 ‘靑 비서실장 교체설 등 브이아이피 측근(정윤회) 동향’이라는 제목의 감찰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보고서는 정씨가 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이재만·정호성·안봉근 등, 이른바 ‘문고리 3인방’으로 통하는 청와대 비서관들과 매달 두 차례 만나 청와대 내부 동향과 국정운영 방향을 논의했다고 언급했다. 이 자리에는 청와대 내부인사 6명, 정치권에서 활동하는 청와대 외부 인사 4명도 함께 참석했다. 보고서는 이들 친박계 핵심인사 10명을 중국 후한 말 권력을 잡고 조정을 휘두른 환관에 빗대 ‘십상시’로 지칭했다.
정씨의 국정개입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 것은 정씨가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 사퇴 분위기를 조성하라고 참석자에게 지시했다는 대목이다. 정씨는 지난해 말 이들과의 송년모임에서 김 실장의 사퇴 시점을 2014년 초중순으로 잡고 있다며 참석자들에게 정보지 관계자들을 만나 사퇴 분위기를 조성하는 정보를 유포하도록 지시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정씨는 당시 “김 실장은 최병렬이 박 대통령께 추천해 비서실장이 됐지만 최근 달갑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적시됐다. 최병렬은 친박 원로모임인 ‘7인회’ 멤버다.
이 문건은 현재 공식 직함이 없는 정씨가 청와대와 정치권 내부 인사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등 현 정부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한 결정적 증거로 작용해 주목된다. 그간 정씨가 박 대통령 뒤에 숨어 국정을 좌지우지했다는 세간의 ‘그림자 실세’ 의혹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다.
지난해 8월 취임한 김기춘 비서실장이 올초부터 사퇴설과 교체설에 시달린 일도 정씨가 증권가 정보지, 속칭 ‘찌라시’를 동원해 정부 인사에 개입한 정황을 사실로 굳히고 있다. 4월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사퇴설이 흘러나왔지만 정국이 어수선한 상황에서 김 실장까지 교체하면 국정 부담이 크다는 의견이 우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공직기강비서관실의 정씨와 3인방에 대한 감찰 배경이 청와대 내부 정보가 외부로 새고 있다는 첩보를 규명하기 위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정씨의 그림자 실세 의혹은 거의 사실화되고 있다. 내부 정보가 외부로 새는 경로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정씨의 존재가 드러났고 민간인 신분인 정씨의 감찰에 착수했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세계일보 발행인과 기자 등 6명을 검찰에 고소하고 문건 작성과 유출 당사자로 지목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 박관천 경정을 수사 의뢰했다. 청와대는 보도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해당 문건이 청와대 작성 문건임은 사실상 인정한 셈이다. 박 대통령은 1일 문건유출은 국기문란 행위라고 규정하고 누가 어떤 의도로 유출했는지 밝혀달라며 검찰 수사를 촉구했다. 정씨도 세계일보 기자 3명을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검찰은 4일 박 경정을 소환해 문건 내용과 작성 경위 파악에 들어갔다. 박 경정 조사가 마무리되면 청와대 3인방에 대한 고소인 조사도 진행한다. 또 문건의 당사자인 정윤회씨와 문건의 보고라인에 있던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도 불러 사실관계를 확인할 계획이다.
이 사건의 핵심은 문건의 내용이 사실인지, 또 그 문건을 누가 왜 유출했는지이다. 정계에서는 문건의 유출배경을 두고 권력암투설마저 흘러나오고 있다. 권력의 대결 구도는 박 대통령의 친동생인 박지만 이지(EG)그룹 회장과 정씨다. 권력에서 배제된 박 회장이 정씨와 청와대 3인방을 겨냥하고 박 회장의 핵심측근인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을 통해 3인방의 주변을 캐는 과정에서 문건이 작성되고 유출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건이 작성된 직후인 2월 박 경정은 서울 시내 경찰서로 좌천되고 조 전 비서관은 두 달만에 잘렸다. 이는 지난 4월 정씨 측이 박 회장 미행을 시도했다는 시사저널 보도와 전후 관계를 이루면서 박 회장이 정씨와 힘겨루기를 하려다 패배했다는 시나리오로 정가에 회자되고 있다.
이제 이 사건의 진위여부는 관심을 벗어났다. 공직사회 적폐 청산을 외쳐온 청와대가 정작 공직 적폐의 본거지였다는 오명을 안고 국정 화두인 국가개조를 어떻게 이끌지에 이목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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