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나 꿈꾸던 소녀, ‘만인의 연인’이 되다
발레리나 꿈꾸던 소녀, ‘만인의 연인’이 되다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5.01.05 10:16
  • 호수 4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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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 헵번, 뷰티 비욘드 뷰티’展

어린 시절부터 유니세프 친선대사 시절까지의 삶 조명
‘로마의 휴일’ 속 스쿠터, 아카데미상 트로피, 의상 공개

▲ 오드리 헵번은 전 생애를 통해 ‘아름다움’을 실천했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던 1940년대 네덜란드. 발레리나를 꿈꾸던 벨기에 태생의 한 소녀는 전쟁의 참화 속에 천식, 황달, 빈혈 등으로 큰 고통을 겪고 있었다. 소녀는 그녀를 위해 헌신하는 어머니 ‘엘라 판 헤임스트라’의 극진한 보호와 유니세프가 지원해주는 구호식품으로 간신히 연명하고 있었다. 소녀는 끊임없는 포성으로 움추린 가운데서도 발레리나의 꿈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끝내 그녀는 발레리나가 되지 못했다. 1950년대를 풍미했던 ‘만인의 연인’ 오드리 헵번의 이야기다.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는 배우 오드리 헵번의 전 생애를 재조명하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뷰티 비욘드 뷰티’(아름다움 그 이상의 아름다움)라는 이름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회는 오드리 헵번의 삶을 시간순으로 전시하고 있다. 전시회는 크게 세 갈레로 나뉘는데 오드리 헵번이 태어난 후 ‘로마의 휴일’을 찍기 전까지 시절, 세계적인 배우로 활동하던 시절,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아이들을 돌보던 시절로 구분된다. 그리고 각각의 시절에는 검정, 분홍, 파랑의 배경을 입혀 그 시기의 그녀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전시회는 먼저 헵번이 영화 ‘로마의 휴일’로 단숨에 스타가 되기 전까지 시절을 검정색 배경으로 꾸미고 있다. 1929년에 태어난 헵번은 5살 때부터 발레를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그녀는 목숨을 위협받는 지경까지 이르고 그녀의 삶은 완전히 뒤바뀐다. 전쟁이 끝난 후 그녀는 170cm까지 훌쩍 커버린 키 때문에 발레를 관둬야 했고, 생계를 위해 극장 쇼 무대에 올라야 하는 상황까지 몰렸다. 전시회는 그녀 생애 가장 힘들었던 이 시기를 좁은 공간에 검정 배경으로 표현하고 있다. 헵번은 이에 굴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시기의 그녀의 사진들은 검은 배경과는 무관하게 발랄한 소녀의 모습을 보여준다. 헵번이 5~6살 때부터 10대 중후반까지 발레리나를 꿈꾸던 시절의 사진은 우리가 알던 화려했던 그녀와는 달리 수수한 모습을 보여준다. 또 그녀가 전쟁의 참혹함을 잊기 위해 직접 그린 그림에서는 애틋함 마저 느껴진다. 꿈 많은 소녀가 다양한 색으로 표현한 이 그림들은 머지않아 다가올 그녀의 미래를 암시하기도 한다.
검정색 배경의 좁은 통로를 나오면 할리우드 스타로서 화려한 삶을 살았던 헵번의 분홍빛 인생이 펼쳐진다. 미국 브로드웨이 뮤지컬 지지(Gigi)에 출연하면서부터 그녀는 우리가 알던 ‘만인의 연인’ 오드리 헵번이 된다. 전시회에서는 ‘로마의 휴일’, ‘사브리나’, ‘마이 페어 레이디’, ‘티파니에서 아침을’ 등 출연작 마다 성공한 그녀의 삶을 분홍색 장식장에 전시하고 있다. 전시장 바닥에 표시된 화살표를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헵번의 20대 초반부터 40대 중후반까지 화려했던 시절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여배우로서의 삶, 두 번의 결혼과 이혼, 그리고 두 번의 유산과 그녀의 전부였던 두 명의 아들까지. 모두가 부러워했던 여배우의 삶 뒤에 가려져 있던 한 여자의 삶을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듯 감상할 수 있다. 오드리 헵번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웃는 표정대로 서서히 주름이 늘어가는 모습에서 조차 아름다움이 절로 느껴진다.
분홍색 전시장을 모두 둘러본 후 영상관에서 여러 영화에서 그녀가 출연한 장면을 12분 분량으로 편집한 영상을 볼 수 있는데 오래 전 헤어졌다 다시 만난 연인과 또 다시 이별한 듯한 긴 여운을 남긴다.
배우로서 황혼기에 접어든 1988년 자신의 인기와 명성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헵번은 유니세프 친선 대사로 임명돼 활동하게 된다. 전시회에서는 이 시절을 담은 사진들을 파랑색 배경에 배치하고 있다. 소외 받은 아이들을 위해 헌신한 그녀의 숭고한 모습은 파란 배경을 통해 배가된다. 그녀는 열정적으로 유니세프 홍보대사로 활동하던 1992년 직장암에 걸렸고 이듬해 수많은 팬들과 아이들을 뒤로하고 세상을 떠난다.
발레리나를 꿈꾸던 소녀, 뭇남성을 설레게 했던 여배우, 굶주린 아이들의 천사로 살았던 헵번의 삶을 전시회는 다양한 소품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 전시회에서는 그녀가 직접 손으로 쓴 요리책, 출연 영화의 한정판 포스터, ‘로마의 휴일’에서 타고 나온 스쿠터,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트로피 등을 볼 수 있다. 특히 세계적인 디자이너 ‘지방시’가 헵번을 위해 직접 만든 다양한 의상들을 보는 건 이 전시회의 또 다른 볼거리이다.
아울러 이번 전시회는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했던 헵번을 기념하기 위해 티켓 당 1달러씩 ‘오드리 헵번 어린이재단’에 기부한다. 입장료는 성인 1만3000원, 65세 이상은 50%할인. 전시는 오는 3월 8일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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