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세술서적에 밀려난 문학
처세술서적에 밀려난 문학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5.01.23 11:18
  • 호수 4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예계간지 ‘문학동네’ 2014년 겨울호가 출판 불황 속에서도 4쇄를 찍었다고 문학계가 호들갑을 떨고 있다. 봄‧여름‧가을‧겨울에 한 번씩 발행되는 해당 계간지는 국내에서 가장 권위 있는 잡지 중에 하나다. 2014년 겨울호는 창간 20주년을 기념해 특별히 국내에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단편소설 11편을 실었다. 김훈·김연수·은희경·성석제·김영하·박현욱·김언수·천명관·박민규·김유진·손보미 등.
해당 잡지가 3쇄까지 판매한 부수는 놀랍게도 7000부. 7만부도 70만부도 아닌 7000부이다. 4쇄는 1000부를 찍었다고 하니 4쇄까지 다 팔린다 해도 1만부가 되지 않는다. 3개월 동안 1만부를 판 셈이니 한 달에 3000권도 못 판 것이다. 문학잡지 첫 4쇄 돌입이란 제목 아래 감춰진 불편한 진실이다.
국내 출판시장에서 여전히 소설은 잘 팔리는 편이다.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2~3권은 꾸준히 오른다. 하지만 조정래의 ‘정글만리’ 이후로 순위권에서 국내 작가의 이름은 자취를 감췄다. 70대 노장이 분발하고 있지만 젊은 작가들은 영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 국내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이상문학상의 올해 수상자가 발표됐다. 대상은 ‘뿌리이야기’를 쓴 김 숨이다. 그 외 전성태‧조경란‧이평재‧윤성희‧손홍규‧한유주‧이장욱 등이 우수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대중들은 이들 작가 중 몇 명이나 알고 있을지 의문스럽다. 100만부 이상 판매한 베스트셀러 작가인 김훈과 은희경, 얼마 전 방송에 출연해 화제를 모은 김영하 외에는 거의 알지 못할 것 같다.
몇 해 전부터 국내에서는 ‘힐링’이라는 용어가 사회전반에 걸쳐 사용되고 있다. 여행을 통해서, 음악 혹은 영화 감상을 통해서 대중은 사회로부터 받은 상처를 ‘치유’ 받곤 한다. 물론 독서도 포함된다. 1996년 발간된 김정현의 ‘아버지’는 100만부가 넘게 팔리며 상처받은 아버지들을 위로했고 더불어 가족의 결속력도 다지게 해줬다. 올해 1000만 관객을 돌파한 ‘국제시장’처럼 말이다. 하지만 현재 국내 소설은 어떤가. 이런 역할을 사실상 ‘처세술서’에 내줬다. 또 최근에는 그림으로만 채워진 컬러링북(일종의 색칠책)에게도 ‘힐링’의 역할을 내주는 분위기이다. 국내 소설을 통해 치유 받고 싶은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문학계가 힘들다는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흘러나왔다. 아직까지도 해법을 찾지 못했다면 문단을 이끄는 이들이 무능하다는 것이다. 알고도 실행하지 않는다면 무기력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팔리는 소설을 ‘생산’해야 할 때가 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