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아들 위해 피를 판 사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아들 위해 피를 판 사내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5.01.23 14:21
  • 호수 4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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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 연출‧주연 영화 ‘허삼관’
▲ 가난했던 허삼관은 피를 팔아 가족을 부양했다.

중국 작가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 원작… 한국 배경으로 각색
암울한 시대를 사랑으로 극복한 주인공 통해 ‘가족’의 의미 전달

‘⃞⃞’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 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뿌리가 시큰시큰할 때까지 들이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 끝나기 전까지 오줌을 참아야 한다. 혹시나 요기를 참지 못하고 화장실로 달려갔다면 내렸던 바지는 도로 올리고 수돗물을 마셔라, 배가 아플 때까지. ‘⃞⃞’이 끝난 후에는 반드시 순대와 돼지 간에 막걸리를 한 잔 걸쳐야 한다. 안 그러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
‘⃞⃞’에 들어갈 말은 ‘매혈(賣血)’이다. 영화 ‘허삼관’은 이 처절하고도 우스꽝스러운 피를 파는 행위를 둘러싼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허삼관은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원작이 문화대혁명이라는 거대한 물결에 휘말린 중국인 ‘허삼관’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면 영화는 한국전쟁 이후 피폐해진 충청도를 배경으로 한국인 ‘허삼관’의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는 1953년 혼기가 찬 허삼관이 첫눈에 반한 허옥란을 아내로 삼기로 결심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허옥란에게는 하소용이라는 부유한 애인이 있었음에도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던 허삼관은 막무가내로 들이댄다. 허삼관은 데이트 비용을 벌기 위해 처음으로 피를 팔고 이를 발판으로 결국 허옥란을 아내로 맞는다.
11년 후 허삼관과 허옥란은 일락, 이락, 삼락이란 이름을 가진 세 아들을 얻어 가난하지만 오순도순 살아간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은 첫째 아들인 일락이가 허옥란이 결혼 전 연애했던 하소용과 닮았다고 수근거린다. 이 수근거림은 어느새 사실처럼 굳어졌고 이에 분개한 허삼관은 일락이의 혈액형을 검사 받기에 이른다. 일락이가 자신의 아이일 것이라 굳게 믿었던 허삼관은 동네 사람들을 모아놓고 일락이의 검사결과를 공개하지만 결과는 동네사람들의 예상대로 나왔다. 이 일로 충격을 받은 허삼관은 일락이에게 자신을 아저씨라 부르라 하면서 외면하기 시작한다.
영화가 던지는 첫 번째 질문은 ‘가족이란 무엇인가’이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가족관은 핏줄에 의해 결정됐다. 내 피가 섞였으면 가족이고 안 섞였으면 남이었다. 영화는 아직 그러한 사고방식으로 물들어 있는 1960년대로 관객을 끌고 들어가 전통적인 가족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영화는 피가 섞이지 않아도 부자간의 연을 맺으면 가족이 될 수 있다는 주제를 제시한다.
모순적이게도 ‘피’라는 소재를 통해서 영화의 의미는 관객에게 전달된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아들과 나머지 두 아들,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허삼관은 본격적인 매혈에 뛰어든다. 지독한 가난 속에서 가족에게 찾아온 커다란 위기에 허삼관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까지 이른다.
허삼관은 ‘국제시장’처럼 대한민국의 격동기를 살았던 어르신 세대의 이야기를 다룬다. 국제시장이 부성애에 초점을 두고 전개된다면 허삼관은 가족애에 비중을 두고 있다. ‘종달새의 왕’이라 놀림을 받으면서도 일락이를 놓지 않는 허삼관, 영화 말미에 큰 희생을 감행하는 허옥란 그리고 세 아들은 서로를 위해 희생한다. 가족애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부분이다.
나라가 발전하면서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핵가족에서 다시 1인 가족, 2인 가족 등으로 가족은 점차 그 규모가 작아지고 있다. ‘가족’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어색할 정도로 개인화된 현재이다.
서민들의 삶이 고단한 건 영화 속이나 실제 현실이나 마찬가지다. 잘하는 것이라고는 매혈밖에 없는 허삼관은 과연 가족을 지켜내고 행복한 결말을 맞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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