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잃은 나전칠기… 박물관 작품으로 부활하다
인기 잃은 나전칠기… 박물관 작품으로 부활하다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5.01.30 14:37
  • 호수 4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해 11월 문 연 한국나전칠기박물관
▲ 한국나전칠기박물관은 앞으로 다양한 한국공예 작품을 전시할 예정이다. 사진은 이강효 전의 모습.사진제공=크로스포인트 공예갤러리

‘참이슬’ 이름 만든 손혜원 대표, 8년간 사재 털어 300여 작품 모아
‘분청으로부터 이강효’, ‘근현대작가 33인’ 전 열려… 장‧노년층 관심

서울 남산 소월길에 위치한 한 박물관에 들어서자 흥겨운 사물놀이 음악이 들려왔다. 일정한 리듬에 맞춰 쿵쿵거리는 소리가 제1전시장에 마련된 모니터에서 나오고 있었다. 모니터 속에서는 온몸에 흙을 묻힌 한 남성이 리듬에 맞춰 자신의 몸집보다 두 배 이상 큰 항아리에 흙을 묻히고 있었다. 분장(粉牆·White Slip)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던 남성은 도예작가 이강효였다.
이강효의 전시가 열리고 있는 곳은 지난해 11월 문을 연 국내 최초 나전칠기 전문 박물관인 한국나전칠기박물관이다. 개관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나전칠기에 향수를 가진 장‧노년층과 장식미술에 관심이 있는 청년층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나전칠기는 옻칠한 그릇이나 가구 표면에 광채 나는 조개껍데기를 여러 가지 문양으로 박아 넣어 장식한 칠기(漆器)를 말한다. 우리나라 전통공예의 하나로 일제강점기 때만 해도 200명 이상의 나전칠기 장인이 왕성하게 활동을 했다.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현재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작가만 활동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손혜원 대표가 이끄는 크로스포인트문화재단은 나전칠기 외에도 전통문화 자료 수집·연구, 공예 작가 발굴과 육성 등을 목표로 박물관 문을 열게 됐다. 손 대표는 ‘참이슬’, ‘처음처럼’, ‘트롬’, ‘힐스테이트’ 등 숱한 브랜드 네임을 탄생시킨 국내 대표 브랜드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 8년간 사재를 털어 나전칠기 300여점을 수집했고 이를 기반으로 박물관을 운영하게 됐다.

▲ ‘통영바다그림 삼층장’, 이성운 作.

손 대표는 “지난 2006년 국립박물관에서 열린 ‘나전칠기-천년을 이어온 빛’ 전시를 보고 나전칠기의 눈부신 아름다움에 놀랐는데 전시작 중 좋은 작품 대다수가 일본에서 대여해온 것이란 사실에 더 크게 놀랐다”면서 “우리나라 대표 민족공예인 나전칠기가 전문 박물관 하나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좋은 작품들을 수집해 선보이게 됐다”고 밝혔다.
박물관의 크기는 2층 규모로 연면적은 330㎡이다. 배구코트 두 개가 위 아래로 붙어 있는 다소 작은 규모이지만 그 안은 여느 박물관 못지않게 알차게 구성됐다.
현재는 기획전시실에서 ‘분청으로부터 이강효’ 전이, 상설전시실에서는 ‘한국 나전칠기 근현대작가 33인’ 전이 열리고 있다.
이강효가 만든 자기의 본체는 검은 흙으로 만들어졌다. 그는 검은 몸 위에 흰 분(粉)으로 그림을 그리고, 화장을 한다. 흰 분으로 그림을 그리고, 화장을 했다 해서 분청사기라 부른다.
그의 분청사기 작품은 5~6가지 색상의 분이 서로 중첩되면서 그 깊이를 더한다. 동시에 여러 색을 칠하므로 이강효는 머릿속으로 철저하게 계산하며 작업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만의 오랜 경험에 의해 색의 구성은 물론 두께까지 고려하며 손으로, 몸으로, 또는 붓으로 칠하고 뿌리면서 작품을 완성한다.
앞서 말했듯이 이강효는 분을 바를 때 흥겨운 음악에 맞춰 한다. 그는 온몸으로 그림을 그렸던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화가 잭슨 폴락처럼 역동적으로 작업을 한다. 분으로 드로잉 작업을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5∼10분, 길어도 20분을 넘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작가가 즐겨 듣는 사물놀이 음악은 작품에 즉흥적이고 생동적인 느낌을 담는다. 이를 통해 그의 작품은 하얀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듯한 강렬한 인상을 주고 있다.
상설전시실로 들어서면 조명을 받은 자개의 화려한 빛깔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33인전’은 일제강점기 때 활동한 나전칠기 장인 전성규부터 그의 제자 김봉룡, 김태희, 송주안, 심부길, 민종태 등에 이어 3세대인 이형만, 송방웅, 손대현으로 전해지는 계보를 엿볼 수 있는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
특히 한 폭의 산수화를 탁상에 옮겨 놓은 전성규의 나전칠 ‘금강산도 대궐반’과 갈대숲이 우거진 통영의 바다를 이식한 듯한 이성운의 나전칠 끊음질 ‘통영바다그림 삼층장’은 나전칠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 ‘금강산도 대궐반’, 전성규 作.

‘금강산도 대궐반’은 멀리 보이는 산을 가느다란 선으로, 가깝게 있는 나무들은 그 종류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잎이나 줄기들을 세밀하게 자개로 표현해 원근감과 정교함이 뛰어나다. 이성운의 ‘통영바다그림 삼층장’은 하얀 빛깔 나무와 갈대, 그 속에서 고기를 낚는 사람, 밭을 매는 사람, 지게 가득 짐을 진 사람, 머리에 소쿠리를 인 여자 등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밖에 “나전칠기에 담긴 얼과 혼을 통해 한국의 공예가 얼마나 위대한지 배우게 됐다”는 손 대표의 말처럼 ‘33인전’에는 여성들의 보석함을 들여다보는 듯한 화려한 무늬의 다양한 나전칠기가 전시돼 있다.
한편, 이강효 전은 2월 28일까지 열리며 관람료는 무료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