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농사 짓는 86세 박시례 어르신 첫 문집 내
사과 농사 짓는 86세 박시례 어르신 첫 문집 내
  • 관리자
  • 승인 2015.01.30 14:39
  • 호수 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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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시례 어르신은 지난 2011년 작고한 고 박완서 작가보다 한살이 더 많다.

시 32편‧수필 32편 등… 남편‧딸과 사별 후 글쓰기 시작
“눈 감는 순간까지 펜 쥘 힘만 있다면 계속 글을 쓰겠다”

최근 영화계는 어르신의 활약으로 비수기인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고 있다. 480여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와 현재 70, 80대 어르신들의 청장년기를 다뤄 1000만 관객을 돌파한 ‘국제시장’은 어르신들이 가진 소재가 매력적임을 입증했다.
출판계에도 영화계의 흐름과 궤를 같이하는 책 한 권이 출간됐다. 올해 86세가 된 박시례 어르신의 시와 수필을 묶은 문집 ‘황혼의 오솔길’이 출간된 것이다. 박 어르신은 사과로 유명한 경남 밀양 얼음골에서 과수원을 운영하며 살고 있는 평범한 농부다.
문집에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조병만‧강계열 어르신의 사랑을 닮은 애절함과 ‘국제시장’ 주인공 덕수의 인생 같은 파란만장한 삶이 녹아 있다. 거기에 더해 박 어르신의 소박한 인생 이야기와 젊은 세대들에게 던지는 삶의 지혜 등이 쏠쏠한 재미로 다가온다.
박 어르신은 이번 문집에 실린 32편의 시와 17편의 수필 중에서 시 ‘노송’과 수필 ‘황혼의 오솔길’에 가장 애착이 간다고 했다.
세상 인연의 끝 놓지 않으려 / 때론 모진 삭풍 맞받고 / 영롱한 아침 이슬 맞아가며 묵직한 침묵 속에 / 그 삶의 한을 얼마나 쌓고 또 쌓아왔던가
‘노송’은 어린 소나무가 늙어가는 과정을 인고의 세월을 겪는 인간의 모습에 비유한 작품이다. 박 어르신은 노송에서 흘러내리는 송진을 ‘하얀 피’에 비유하는 등 오랜 세월 비바람을 견뎌 낸 늙은 소나무에서 어르신들의 인생을 표현하고 있다.
반면 ‘황혼의 오솔길’은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담고 있다. “어머니의 사랑이 담긴 따뜻한 추억을 상기시켜 애착이 간다”는 박 어르신의 말처럼 작품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턱을 다친 아이와 이를 보고 놀란 어머니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나를 둥쳐 업고 한 손으로 광주리를 옆에 끼고 내려가시는데 몹시 힘드시는지 무명저고리 등에 땀이 흠뻑 젖어오는데 나는 어머니의 그 땀 내음이 좋아서 얼마나 편했는지’ 같이 꾸미지 않은 문장에서 드러나는 애틋함이 이 수필의 매력이다.
박 어르신은 남편과 딸을 잇달아 잃는 아픔을 겪은 뒤부터 글쓰기를 시작했다. 지난 10여년 간 글을 쓰면서 박 어르신은 개인의 상처도 극복해나갔고 이를 통해 삶을 너그럽게 바라보게 됐다.
그는 “생각이 정리가 안 되고 글이 진전이 안 될 때 힘들었지만 펜을 내려놓고 싶은 적은 없었다”면서 “하나의 글이 완성되면 즐겁고 마음이 편안해지니까 아무리 힘들어도 계속 썼다”고 했다.
그래서 먼저 떠난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그대는 가고 없어도’와 ‘남편 제사’에서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강계열 할머니의 감정이 느껴진다. ‘그대는 가고 없어도 그대를 부르고 있는 / 이 목소리는 이곳 숲 속에 나를 부르듯 / 메아리 치고 있네’(그대는 가고 없어도 中), ‘서방 정토 찾아가서 그리운 이들과 다시 상봉하고 싶어’(남편 제사 中) 같은 80대 어르신의 직설적인 표현은 묵직한 감동을 준다.
이밖에도 안경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수필 ‘안경 이야기’ 연작과 ‘우리 동네 경로당’은 소소한 일상을 유쾌하게 전달하고 있다. 또 수필 ‘상엿집 유감’에서는 청장년 인구가 줄어 사라지는 ‘상여’에 대한 쓸쓸함이 엿보인다.
“인생의 황금기는 황혼에 있다”고 말하는 박 어르신은 “어떤 고난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걸어가면 인생은 살만하다”고 했다. 눈 감는 순간까지 펜을 쥘 힘만 있다면 계속 글을 쓰겠다고 한 박 어르신이 15년후 100세를 맞아 또 한 권의 문집을 내길 기대해본다.


고목(枯木)과 뿌리
우람스런 고목 한 그루
하늘 높이 뻗어 올라간 기상
연륜은 세월을 잊은 듯
의연히 버티고
온갖 풍상 다 겪었을 생명!

너의 뿌리는 얼마나 고되게 살아왔을까?
이 많은 가지와 잎들을 먹여 살리느라
얼마나 깊은 땅속 파고 들어가
지혈과 온갖 자양을 빨아들여
저 우람한 나무를 일구었느뇨?

고목아!
네 몸의 지체
땅속에 깊이 박힌 뿌리의 노고를 너는 알고 있느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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