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 백운산 고로쇠는 통일신라 때 유래
광양 백운산 고로쇠는 통일신라 때 유래
  • 차지원 기자/순천
  • 승인 2015.02.06 13:58
  • 호수 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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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운산 고로쇠 약수제 행사에 앞서 각 마을을 대표하는 아낙네들이 지역 화합을 상징하는 합수통에 담을 고로쇠물을 양동이에 이고 제단으로 향하고 있다.

도선 국사, 참선 후 수액 마시고 거뜬하게 일어서
게르마늄·미네랄 많아 골다공증·신경통에도 효능

국내 ‘고로쇠 수액의 원조’인 전남 광양시 백운산(白雲山) 고로쇠 수액의 채취가 2월 1일 올 들어 처음으로 시작됐다. 광양시와 이 지역 농민들은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병 상단부에 정제날짜와 유통기한을 표시하고 0.5ℓ짜리 소형 용기를 선보이는 등 노력을 기울여왔다.
채취 농민들은 올해부터 9~18ℓ들이 대형용기 고로쇠 수액 유통을 자제하고 변조 방지를 위해 18ℓ들이 통의 뚜껑을 종전의 노란색에서 녹색으로 바꿨다.
광양 고로쇠 수액은 2008년 국내에선 처음으로 산림청 수액부문 지리적표시 등록(제16호)을 마쳤다.
광양 고로쇠 수액은 본래 뼈를 이롭게 한다고 해 ‘골리수’(骨利水)라 불렸다.
수액의 산지인 백운산은 연중 일조량이 많고 고로쇠나무 생육환경에 알맞다. 이곳의 고로쇠수액이 타 지역에 비해 게르마늄과 미네랄이 풍부한 이유이다. 백운산 고로쇠수액은 특히 항암효과와 골다공증, 신경통 등 성인병에도 탁월한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운산 고로쇠 수액의 유래=때는 통일신라 말기로 거슬러간다. 신라의 승려이자 음양풍수설의 대가인 도선 국사는 전남 영암에서 태어나 열다섯 살 때 불가에 입문했다. 그는 어려운 설교와 경문에 주력하지 않고 참선에 의한 진리를 터득하는 선종의 도를 닦는데 알맞은 곳을 찾으려고 유랑했다. 그러던 중 경남 하동군 화개면에 있는 지리산 쌍계사에 이르러 참선에 들어갔으나 북일폭포의 물소리 때문에 참선에 실패하고 말았다.
탄식하던 그는 문득 앞산을 한숨에 달려 올라가 봉우리에서 내려다보았다. 그때 온 세상이 눈에 덮여 있는데 유일하게 물이 얼지 않고 김이 나는 곳을 발견했다. 이른바 ‘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의 지대를 발견하고 종종걸음을 쳐 지금의 광양사 옥룡면 추산마을로 내려왔다.
도선은 겨울에도 얼지 않은 물이 있고 찬바람이 닿지 않는 이곳 나무 밑에 선좌를 정하고 참선에 들어갔다. 큰 깨달음을 얻고 무아지경에 들어갈 즈음, 용이 못된 백년 묵은 지네 이무기가 나와 도선의 참선을 방해했다. 도선은 생각다 못해 지네의 상극인 닭을 기르기로 하고 당시 상서로운 색깔로 인식되는 흰 닭 100마리를 구해 이무기가 사는 주변에 풀어 놓았다. 또한 닭이 잘 움직이도록 겨울에도 꽃이 피는 동백을 주변에 심어 벌이 사시사철 날아들게 했다.
그리하여 도선은 참선에 정진하게 됐고 어느 날 경지에 이르러 깨고 보니 아직 먼 산에 눈이 덜 녹은 상태에 있는 경칩 때였다.
헌데 너무도 오랫동안 가부좌 상태에 있었던 터라 무릎에 바람이 나고 힘이 없어 일어설 수가 없었다. 시장기와 갈증마저 몰려오자 도선은 마을에 내려가려고 머리 위 나뭇가지를 붙잡고 일어서려 했다. 그런데 그만 발밑에 있는 돌멩이가 구르면서 미끄러져 머리 위에 있는 나무를 잡았는데 나무가 부러져 쓰러지고 말았다. 가만히 보니 이른 봄인데도 부러진 나무에서 물이 흘러내렸다. 도선은 떨어지는 물을 한참 받아먹었다. 잠시 후 찬바람이 일던 무릎에 힘이 돌고 갈증이 멎으며 생기가 돌아왔다.
매일 나무 밑의 물을 받아먹는 것을 본 촌부들이 “그게 뭐냐”고 묻자 도선은 뼈에 이로운 나무라는 뜻으로 골리수(骨利水)라 가르쳐 주었다. 이후 사람들의 입으로 전해지면서 골리수는 고로쇠로 바뀌어 불리게 됐다.
지금의 광양시 옥룡면 백계동(白鷄洞)은 도선이 100마리의 흰 닭을 기르던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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