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설날’을 기다리며
‘눈 내리는 설날’을 기다리며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5.02.13 10:33
  • 호수 4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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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2월 24일이 되면 사람들은 기상청의 다음날 예보에 눈이 오는 지 안 오는지 귀를 쫑긋 세운 채 듣는다. 그냥 성탄절 보다는 눈 내린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더 느낌이 좋기에 남녀노소 하얀 눈을 기다린다.
척박한 현실 때문에 낭만이 많이 사라졌다. 근무 중 창밖에 내리는 눈을 보면 잠시 동심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다가도 퇴근길이 막힐까봐 어느새 발을 동동 구르며 노심초사하게 된다. 눈을 ‘하얀 쓰레기’라고 부르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설 문화도 많이 변하고 있다.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이 윷을 던지며 놀거나 함께 민속씨름을 보면서 이만기‧강호동에게 열광했던 시절은 이제 옛말이 됐다. 씨름의 인기는 시들해졌고 TV는 온통 아이돌이라 불리는 어린 가수들의 식상한 게임으로 채워져 특정 세대에만 편중돼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설날 당일 차례를 지내기 무섭게 퇴근하듯 흩어지는 것이 자연스런 풍습이 돼가고 있고 잠깐 앉았다 떠난 자녀들의 빈자리를 보며 공허함에 시달리는 또 다른 명절증후군도 생겼다.
20여전만 해도 스마트폰은커녕 휴대폰도 없었고 방송 채널도 많지 않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가족들이 둘러앉아서 소소한 게임을 즐기며 많은 대화를 나눴다. 문명은 발달했지만 우리나라 특유의 정(情)이 담긴 문화는 오히려 퇴보한 느낌이다.
방송국에서는 올해도 설을 맞아 역시나 많은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명절만 빌린 시간 때우기에 불과하다. 이번에 가장 재미있는 프로그램은 지난 추석 이후 각자가 살아온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먹고 살기 바빠서’라는 핑계 보다는 ‘먹고 살기 바빠도’라며 가족들과 정답게 오래 지내는 문화가 부활했으면 한다. 여자들이 명절증후군에 시달리지 않도록 가족들이 역할을 분담해서 일을 돕는 문화가 자리잡았으면 한다. 경제가 어렵다 해서 가족들끼리 서로를 어렵게 대할 이유는 없다.
설날에는 폭설이 내렸으면 한다. 차례와 성묘를 마치고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눈이 내렸으면 한다. 폭설로 하루 이틀 귀경길이 늦어진다 해도 긴 연휴로 인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도 하며 모두 다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노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한해를 새롭게 시작한 날 오랜만에 모인 가족이 근심일랑 새하얀 눈 속에 묻어두고 함박눈 보다 밝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보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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