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할아버지·할머니에게 자주 보내는 것이 노후대비예요”
“아이들을 할아버지·할머니에게 자주 보내는 것이 노후대비예요”
  • 유은영 기자
  • 승인 2015.02.27 10:55
  • 호수 4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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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하는 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

국내 노인복지학 선구자… 미국서 9년 공부 끝 귀국해 개척
“인간존중 사상과 사회복지 실천을 연결하는 일에 집중하겠다”

기대와 설렘으로 들뜨게 하는 봄이왔다.
김동배 교수에게 올봄은 특별하다. 3월부터 근 30년을 갖고 있던 교수직 명함이 명예교수로 바뀐다. 퇴임 후에도 명예교수로서 강의하는 것은 이전과 다를 게 없다. 그러나 노인복지 전문가로서 활동해 온 수십년의 이력을 회고하면 감회를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계속 김 교수의 강의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수강자에게도 큰 행운이다. 사회복지는커녕 노인복지라는 개념조차 희박했을 당시 묻고 수소문한 끝에 돌고돌아 어렵사리 국내 노인복지의 기초를 쌓은 전문가의 입을 통해 듣는 것 말이다. 노인복지의 시작과 현재, 김 교수를 찾은 2월 9일 벌써 짐 정리를 시작한 그의 연구실은 무척 분주해 보였다.

-퇴임을 앞두셨다.
“어느덧 시간이 그렇게 됐네요. 강의는 계속 해요. 명예교수지만 실제는 시간강사죠. 젊었을 적 노인복지를 찾고 공부하고 가르쳐온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퇴임 후 남은 30년을 어찌 보낼지 계획은 대강 세웠는데 다 여가생활과 관계돼 있어요. 못 읽은 책들도 맘껏 읽고 여행도 실컷 할 생각이에요. 30년 일했으니 이제 좀 쉬어야죠.”

-특별히 계획하는 일은.
“올해로 ‘영성과 사회복지학회’를 만든지 4년째가 됩니다. 사회복지 전공한 분들 중 영성에 관련된 분들과 함께 만든 연구단체예요. 사회복지 실천에서 영성적 접근을 어떻게 할 수 있느냐를 연구하는 것이죠. 그 활동에 집중할 생각입니다.”

-‘영성’은 종교에만 있는 것인가.
“종교심과 영성은 좀 다릅니다. 종교는 하나의 교리이고 제도이지만 영성은 종교가 없는 사람도 훌륭할 수 있어요.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이 오히려 영성이 낮은 경우도 있지요. 영성을 정의하기는 굉장히 어렵지만 관계성을 생각하면 쉬워집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연결돼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신과 인간이, 인간과 지구 만물이 서로 연결돼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협동하고 배려하고 다른 이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데 관심을 갖습니다. 결국 사회복지와 연결되지요. 우리 학회는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서로 돕는 관계망을 만들고 키워가는 데에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노인복지를 전공하게 된 배경이 특이하다.
“첫 전공은 정치외교학이었어요. 그때는 남자라면 정치를 해야 한다는 사고가 있었어요. 직장생활도 5년 하고 유학 간 게 30대 초반이지요. 고시공부도 몇 년 했는데 고시체질이 아니더라고요(웃음). 1980년에 유학을 가서 88년에 돌아왔어요. 사회학과 교수님을 찾아가 ‘미국에 괜찮은 대학이 어디 있습니까’ 물어서 사회학 석사를 하고 보니 좋은 학문인데 저랑은 좀 안 맞아요. 그래서 이론이 실천으로 이어지는 학문을 찾다가 박사과정 가서야 사회복지학이란 걸 처음 발견했지요. 사회학 석사를 2년 한 뒤니까 33살 때였어요. 사회복지학에 완전 매료가 됐죠.”

김 교수는 미국 켄트 주립대학에서 사회학 석사과정을 밟고 미시간 대학에서 사회복지학 석사와 박사(공식명칭은 도시학박사)를 땄다. 김 교수가 연세대를 졸업한 1972년은 사회학이라는 용어가 낯선 때였고 사회복지학은 더 생소했다. 그가 유학을 떠나고 1년 후인 1981년 연세대에 사회복지학과가 만들어졌다. 이화여대, 중앙대 등에는 있었는데 김 교수는 전혀 몰랐다고.
우여곡절 끝에 미국유학을 가서야 적성에 맞는 분야를 찾은 김 교수는 미국 사회복지대학원에서 개설된 과목들을 듣다가 자연히 노인복지쪽에 마음이 끌렸다고 한다.

-왜 하필 노인복지학인가.
“저도 나중에 공부를 하면서 내가 왜 노인복지에 관심을 갖게 됐나를 곰곰이 생각했어요. 당시 사회복지기관에 가서 실습을 하는데 미국, 독일 친구들한테 물어보니까 할아버지․할머니와의 추억이 좋은 친구들이에요. ‘어렸을 때 사랑을 베풀어 주셨다’ ‘즐겁게 논 기억이 있다’ 등등…. 저도 그렇거든요. 그때 깨달았죠. 할아버지․할머니와 즐거운 시간을 가졌던 사람이 커서 노인 공경하고 부모에게 효도한다고요. 강의를 나가면 꼭 얘기합니다. 젊은 주부들, 아이들 학원에만 보내지 말고 할아버지․할머니한테 자주 보내라고. 할아버지․할머니가 어떻게 사는지, 어떤 약을 드시는지 직접 보고 만져본 아이들이 커서 부모에게 효도하니 자연스레 노후대비가 된다고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미국 가서 문화충격을 받았어요. 그중 하나가 자원봉사예요. 정부 일이나 민간 일이나 하다못해 마을 어린이 놀이터 만드는 일까지 자원봉사와 기부에 의해 이뤄지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도로를 닦는다든가 하천을 만드는 일은 정부가 알아서 하죠. 아이들 교육이며 어르신 모시는 요양원 운영, 노인의 인권 등 사람의 삶과 직접 연관된 일은 모두 지역주민들의 참여 하에 이뤄져요. 이를테면 구청에서 한 가지 안건을 가지고 의견을 수렴하려고 하면 온갖 위원회가 일제히 열려요. 일일이 의견을 수렴한 끝에 계획이 세워지면 정부와 주민이 각자 낼 수 있는 예산을 정해요. 결정은 느리지만 정책에 실수가 없죠. 한 가지 사업에는 지역주민의 모든 의견이 결집돼 있으니 모두가 나서서 봉사하게 되고요. 그걸 보고 자원봉사가 결국은 시민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걸 느꼈어요. 그 얘기를 담은 게 ‘시민사회와 자원봉사’라는 책입니다.”

-선배가 없어서 힘드셨겠다.
“미국에서 노인복지로 학위를 처음 받은 사람이 서울대 최성재 교수예요. 제가 학위로는 두 번째죠. 지금이야 사회복지서비스라는 말이 널리 쓰이지만 유학 후 귀국했을 때만 해도 ‘써비스’라고 해야 하나, ‘서어비스’라고 해야 하나 용어도 통일이 안 돼 있을 때였어요. 사회복지 관련 보험, 제도는 당연히 없었고 양로원, 요양원 정도가 있었죠. 노인을 모시는 가족들을 쉬게 해 주자는 취지에서 단기보호소를 운영하는 노인복지기관이 한두 개 있었어요. 지금의 주간·야간 보호죠. 단기보호라는 말도 제가 처음으로 쓴 것 같아요. 논문 쓰면서 용어도 서비스로 통일했고. 어려움도 많았지만 정신적, 경제적으로 항상 든든하게 지켜주신 아버지가 계셨기에 버틸 수 있었어요. 요양병원에 계신 지금도 여전히 존경하고 사랑해요.”

-노인단체를 만들려고 시도하셨는데.
“한국에 오니까 대한노인회 외에는 노인단체가 없는 거예요. 90년에 연세대로 발령받아 94년도에 평생교육원에 은퇴준비교육과정을 처음 만들었어요. 한국타이어, 포항제철 등 일반 기업들도 퇴직준비반을 운영하긴 했는데 주로 경제적인 것, 재취업 정보 위주로 운영했었죠. 저는 그보다 공식적인 노인단체를 만들고자 했어요. 한 학기에 50~60명이 정원인데 졸업생들이 1기, 2기 쌓이면 자연히 단체가 되죠. 1기 졸업생들이 동문회 이름 ‘은우회’를 후배들에게 못 쓰게 하는 바람에 무산됐어요.”

-실망이 컸겠다.
“그때 제가 아주 공부를 많이 했어요. 아무리 설명해도 고집불통이에요. 노인단체가 활성화되고 사회에 유익하려면 노인들의 마음이 개방적이어야 한다고 느꼈어요. 이를테면 꼭 65세 이상만 받을 게 아니라 55세부터 회원으로 받아 젊은 피가 공급되면 단체가 발전을 하잖아요. 중장년층과 노년층의 소통도 되고. 그런데 우리나라는 너무 엄격해요. 옆에 언니가 사는데 성격이 안맞다고 살림이 어려운데도 따로 사는 걸 보면 노인들은 폐쇄성이 강한 거예요.”

-‘지공카드’를 받으셨다고.
“‘지하철 공짜 카드’는 참 좋은 제도이고 유지돼야 합니다. 노인들이 많이 다니면서 1만원 2만원이라도 쓰는 게 지역경제 발전에 도움이 돼요. 춘천, 천안, 온양 등은 노인들이 와서 쓰는 돈이 적지 않아요. 가만히 있는 노인들을 운동시켜 의료비도 절약하고, 국가적으로는 엄청난 이익이에요.”

-정부가 노인복지를 잘 하고 있나.
“복지는 세금과 직결되니까 국민들이 저항없이 세금을 내겠는지 따져가면서 목표를 잡아야합니다. 기초연금 등 지원확대는 좋지만 기본적으로 포퓰리즘이라고 봐요. 돈만 줘서는 삶의 질에 큰 도움이 안 돼요. 그것도 기초수급자는 또 못 받는 걸 보면 비합리적이죠. 노년기 삶은 재무뿐 아니라 주거선택부터 건강관리와 여가선용 등 다양해요. 가족관계도 새로, 거주지 인간관계도 새로 만들어져요. 마지막엔 웰 다잉이 있죠. 미국처럼 노인전문 비정부기구(NGO)가 많아지면 효과가 클 거예요. 좀 멀지만 우리나라도 전반적으로 인간존중 사상이 부양되면 노인의 삶이 좀 나아지리라고 봅니다. 인간존중 사상이 취약한 건 저 직장 다닐 때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어요. 바뀌었다면 ‘땅콩회항’ 사건 같은 건 안 일어났겠죠.”

-퇴임기념 저서를 내셨는데.
“‘제3의 인생 설계, 신노년문화’라고, 그간 백세시대를 비롯해 신문에 기고한 칼럼들을 모아놓은 거예요. 서문에 이심 대한노인회 회장님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어요. 우리나라 노인들의 대표자로서 각계각층을 어우르며 소통시키는 유일한 분이 아닌가 합니다.”

김 교수의 저서로는 노인복지론, 시민사회와 자원봉사, 노년기 정신건강(번안), 이제는 죽음을 이야기하자(공저) 등이 있다. 2월 퇴임을 기념해 그간 썼던 칼럼들을 보강해 낸 책이 ‘제3의 인생 설계, 신노년문화’다. 피아노를 전공한 부인과 사이에 장성한 아들 둘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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