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노인들이 소리치는 이유
[기고]노인들이 소리치는 이유
  • 신춘몽 기자 / 서울 중랑구
  • 승인 2015.02.27 13:28
  • 호수 4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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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초등학교에서 노인의 특징에 대해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은 “노인이란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라 답했다고 한다. 지금은 핵가족 시대라서 조부모와 한 지붕 아래 살고 있지도 않고 명절에나 만날 수 있는 게 현실인데도 아이들 눈에는 노인들이 소리나 지르고 화만 내는 괴팍스러운 존재로 보였나 보다.
아이들의 철없는 생각이라고만 여길 수 없다. 아이들의 부모와 사회의 잘못이 더 크다. 자식세대에게 모든 것을 내주고 부모라는 이름만 남아 있는 노인들은 경제‧사회의 중심에서 밀려나며 잊혀지고 있다. 아이들의 급식이 엉망이라며 눈물 짖는 부모도 찬밥에 물 말아 넘기는 자신의 부모님 밥상을 살피지 않는 것 또한 현실이 됐다.
우리 이웃에 90세가 넘은 여성 어르신이 홀로 살고 계시다. 40대에 혼자가 됐지만 8남매를 키우고 결혼까지 시켰다고 한다. 이 어르신은 8남매를 먹이고 입히느라 도둑질만 빼고는 하지 않은 일이 없다는 말을 주문처럼 달고 산다. 매번 들어도 그 얘기가 그 얘기고 재미도 없어 나는 그와 부딪치지 않으려고 피해 다녔다.
하지만 어느 날 어르신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초등학교 교사였다는 남편 이야기부터 시집살이까지 이어지는 가족사 소개에만 두 시간이 걸렸다. 지루하기도 하고 허리도 아파 어느 시점에서 어르신의 사연을 끊어야 할지 재고 있었다.
내 참을성이 바닥났을 때 적당히 포기하며 들어보니 어르신은 들어주는 이가 없어 답답했던 마음을 스스로에게 토로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자신이 잘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말을 하는 것이었다. 언제나 말 많고 시끄럽던 어르신은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말하고 싶은 것은 가슴속에 잔뜩 쌓여 있지만 들어주는 이가 없어 노인은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8남매가 결혼해 손주가 16명이나 되는데 그 중 어느 누구도 할머니를 모시려고 하지 않았다.
‘고3 수험생이 있어서’, ‘맞벌이를 하기 때문에’, ‘집이 좁아서’라는 핑계를 대며 모두가 할머니를 외면했다. 할머니는 언제 세상을 떠날지도 모르는데 무덤 속처럼 조용한 공간에서 며느리나 딸이 만들어다 냉장고에 넣고 간 반찬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다. 냉장고에 보관된 반찬에 무슨 온기가 있을 것인가. 자식들이 그러하니 손주들도 조부모를 소리지르는 불쾌한 ‘보따리’ 취급을 하게 된 것만 같다.
무릎에 손자 손녀를 눕혀 배를 쓸어주며 ‘할머니 손은 약손’이라 말하던 목소리는 어느새 절규로 바뀌었던 게다. 잠든 손자의 쌔근거림과, 할머니의 부채바람에 쫓겨 날아가는 모기의 날갯짓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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