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디 동상에 아쉽고 부러운 마음이 드는 이유
간디 동상에 아쉽고 부러운 마음이 드는 이유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5.03.20 10:47
  • 호수 46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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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4일, 영국 의회 광장에 세워진 마하트마 간디(1869~1948) 동상을 보면서 두 가지 아름답다는 생각과 함께 아쉬움에 사로잡혔다. 하나는 예술적인 면에서 아름답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역사적인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영국의 자세가 아름답게 보였다는 점이다. 이 동상은 간디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인권변호사로 헌신하다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시작한 100주년을 기념해 세운 것으로 1931년 영국 런던을 방문했을 때의 모습이다. 영국 조각가 필립 잭슨이 제작했다.
우리나라 동상을 볼 때마다 울컥 치솟는 첫마디가 ‘도대체 왜 저렇게 밖에 못 만드는가’이다. 우선 신체 비례부터 맞지 않을뿐더러 얼굴 표정, 의상 등의 디테일을 전혀 살리지 못해 감동을 주지 못한다. 그저 청동 덩어리를 올려놓은 느낌이다. 서울역 광장에 황소처럼 서 있는 강우규 의사의 동상을 보면 경악스럽기 짝이 없다. 강우규 의사는 1920년 당시 65세의 나이로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에게 폭탄을 던져 살해하려던 독립투사이다. 커다란 두상에 두루뭉술하게 처리한 두루마기, 작은 배를 연상할 정도로 거대한 신발, 어색하게 뻗은 손동작… 미적인 감동은커녕 볼수록 좌절과 탄식만이 나올 뿐이다.
인도의 전통 복장 ‘도티’를 두르고 두손을 마주 잡은 채 고개를 왼쪽으로 살짝 돌려 사색에 빠져있는 간디 동상은 잘 구워낸 빵처럼 한눈에 맛깔스럽다는 느낌이 든다. 머리와 상·하체의 비례가 잘 맞아떨어져 늘씬하고 시원해 보인다. 손, 눈가 등의 주름을 표현한 것을 보면 ‘쇳덩어리로도 저런 표현이 가능한가’ 라는 의문이 들 정도다. 가장 놀라운 점은 간디가 끼고 있는 안경이다. 가늘고 둥그런 테가 정확히 코와 귀에 걸려 있어 살아있다는 착시감마저 준다. 간디 동상에서 국내 조각가들이 많이 느끼고 많이 공부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영국은 1612년부터 동인도 회사를 앞세워 인도를 야금야금 침략했으며 1858년부터 1947년 독립 전까지는 군주가 통치권을 행사했다. 그 과정에서 숱한 압제·착취와 함께 학살사건으로 인도인에게 씻을 수 없는 역사적인 상처를 입혔다. 하지만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동상 제막식에서 “이 동상은 세계 정치사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 가운데 한 명에게 바치는 헌사로 의회 광장에 동상을 세워 간디에게 이 나라의 영원한 집을 준 것”이라며 “인도와 영국 간 우호 관계도 간디가 남긴 수많은 유산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평화주의를 신봉한 독립운동가 간디와 건국 뒤 민주주의를 꾸준히 지켜온 인도에 존경을 표한 것이다. 이는 상대방의 가치를 인정함으로써 과거 제국주의에 대한 품위 있는 반성을 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AFP통신은 “간디 동상 건립은 과거를 기억하려는 영국 나름의 방식이자 일종의 사과의 의미가 담겨있다”고 전했다.
재밌는 점은 간디 동상 맞은편에 간디를 그렇게 미워하고 탄압했던 장본인 윈스턴 처칠 동상이 서 있다는 사실이다. 처칠은 간디를 입버릇처럼 ‘반나체의 거렁뱅이’로 표현하며 “간디씨를 보니 놀랍고 역겹다. 탁발승 모습으로 총독 관청의 계단 위를 반나체로 올라가는 꼴이라니…”하고 흉을 보았다. 처칠의 악담에 간디는 “나의 육체를 깔아뭉갤 수는 있지만 영혼은 결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의연한 반응을 보였다. 이런 두 사람이 사후에 서로 마주보고 서 있게 된 것도 역사의 아이러니일 수 있다.
간디 동상을 들여다볼수록 아쉽고 부럽기만 한 건 침략의 역사를 부정하고 왜곡하는 일본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과연 영국의 간디 동상처럼 일본 도쿄 의사당 앞에도 안중근 의사의 동상이 세워질 수 있을까. 도저히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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