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대학서 익힌 재능 이웃과 나누며 살아요”
“노인대학서 익힌 재능 이웃과 나누며 살아요”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5.04.24 10:51
  • 호수 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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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교육 현장을 가다]평택 북부노인대학

“어르신 좀 봐주면서 하세요.”
지난 4월 21일 평택 북부노인대학 탁구교실. 이곳 최고 ‘맏형’ 박원준(96) 어르신과 랠리를 이어가다 아쉽게 점수를 내준 김현희(여‧65) 씨는 엄살을 늘어놓았다. “봐줄 게 뭐가 있냐”며 박 어르신이 시큰둥하게 답하자 일순간 탁구교실은 웃음소리로 꽉 차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90대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의 실력을 뽐내는 박 어르신과 40여명의 탁구교실 학생들이 내뿜는 배움의 열기가 평택 북부노인대학을 감쌌다.

▲ 평택 북부노인대학은 필수, 선택과목으로 편성된 교과과정을 운영하면서 학생들의 동아리 활동도 지원하고 있다. 사진은 서예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모습.

매년 700여명 입학… 필수‧선택과목 운영, 동아리 활동 지원
봉사동아리 만들어 소외된 이웃 찾아… 졸업생 안 빠져 고민도

평택 북부노인대학은 대한노인회 평택시지회(지회장 김낙용) 산하 4개 노인대학 중 하나이다. 평택시지회는 평택시로부터 연간 1억7000만원을 지원받아 서부‧남부‧북부‧팽성노인대학을 운영하고 있다. 각 노인대학은 환경을 고려해 수용인원을 결정하는데 북부노인대학은 지난 2013년 개관한 평택북부복지타운에 입주하면서 가장 많은 연간 730명을 수용하고 있다.
지난 2010년 부임한 이준철 학장은 ‘경천애인(敬天愛人), 건강한 생활, 존경받는 노인’이란 학훈을 세워 북부노인대학을 운영하고 있다. 이 학장은 “대접 받는 노인에서 섬기는 노인이 돼야 한다는 이 심 회장의 뜻을 반영해 학교를 운영 중”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북부노인대학은 일반 대학교처럼 필수과목과 선택과목으로 나눠 수업을 운영하면서 학생들이 자치적으로 동아리활동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1‧2학년 2개 반으로 나눠 1학년 학생은 화요일, 2학년 학생은 목요일 오전 10시~12시에 전‧현직교수들을 초청해 진행되는 교양특강을 필수과목으로 들어야 한다. 또 학생들은 적성에 따라서 한글‧서예‧탁구‧가요‧실버댄스를 선택과목으로 들을 수 있다. 등록금은 1인당 연 2만5000원이지만 절반은 단체복 제작에 사용돼 실질적으로는 1만3000원인 셈이다.
점심식사 후 북부노인대학 최고 인기과목인 ‘백세건강체조’를 수강하기 위해 학생들이 삼삼오오 강당으로 모였다. 신나는 음악에 맞춰 100여명의 학생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체조를 시작했다. 강사의 지시에 맞춰 전후좌우로 몸을 쉴 새 없이 흔들었지만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보다는 웃음이 가득했다.
안효자(여‧69) 씨는 “4년 전부터 이곳을 다니면서 새로운 친구도 사귀고 기공체조와 건강체조 등을 배우면서 오히려 젊어진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타 노인대학보다 북부노인대학은 특히 동아리 활동이 매우 활발하다. 현재 난타‧기공체조‧백세체조‧하모니카‧신바람체조‧연극‧그라운드골프‧종이공예 동아리가 운영 중에 있다. 학생들이 십시일반 회비를 모아 동아리 운영자금을 마련했고 학교측에선 국민건강보험공단과 보건소를 통해 강사를 지원하고 있다. 노인대학을 다니면서 적성을 찾은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동아리를 만들며 학교를 가꿔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준철 학장은 “노인들이 은퇴 후에 남는 여가 시간을 활용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자신의 적성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분들도 상당수였다”면서 “노인대학을 다니면서 자신의 적성을 발견하고 동아리를 결성하는 등 생활의 활기를 찾는 분들이 많다”고 했다.
학생들은 동아리 활동을 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여기서 익힌 재능을 지역 복지 단체 등을 방문해 나누기 시작한 것이다. 하모니카 동아리 소속 20여명은 지역 내 주간보호센터를 방문해 하모니카를 직접 알려주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고 난타‧연극 동아리 소속 학생들은 공연을 통해 소외된 노인들에게 웃음을 전하고 있다. 또한 타 동아리 학생들 중 일부는 ‘찾아가는 영화관’, ‘이웃사촌’ 봉사활동 전문 동아리를 만들어 경로당과 동거노인을 찾아 적극적으로 봉사에 나서고 있다.
이웃사촌 동아리로 활동하는 전경순(여‧71) 어르신은 “(노인대학을 다니면서)몸과 마음의 여유를 찾자 주변을 둘러볼 수 있게 됐고 외로운 노인들을 돕는데 나설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 학교가 넘어야 할 과제도 있다. 2년 과정이지만 사실상 졸업제가 없기때문에 학생 수는 계속 느는데 수용엔 한계가 있어 신입생에겐 좁은 문이 되고 있다. 또한 고학력자의 경우 참여할 마땅한 프로그램이 부족한 것도 아쉬운 점이다. 평택시 인구 약 46만 명 중 노인의 비중은 10%인 4만6000여명이지만 여건상 이중 매년 2300명(5%)만 노인대학을 이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북부노인대학의 경우 지난해와 올해 200여명의 학생이 아쉽게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를 위해 북부노인대학은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여러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김낙용 대한노인회 평택시지회장은 “지자체의 지원 확대 추진과 졸업제 도입, 경영자 과정 개설 등 평택시 노인들이 고루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발전방안을 밝혔다.
북부노인대학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이충레포츠공원에서는 그라운드 골프 동아리 학생 10여명이 한창 활동 중이었다. 자신의 차례를 맞은 학생은 프로골프선수처럼 ‘홀포스트’를 바라보며 거리를 재고 있었다. 자신의 차례가 아닌 학생들은 스윙 연습을 하며 제 차례를 기다렸다. 학생이 친 공이 홀포스트 근처에서 멈추면 다 같이 탄식했고 한참을 벗어나면 함께 웃었다. 경쟁을 하면서도 동시에 운동 자체를 즐겼다.
그라운드 골프 동아리 회장을 맡고 있는 하응현(76) 어르신은 “북부노인대학생이 된 후 앞으로 살아가야 할 인생의 목적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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