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년만에 한‧미 원자력협정 체결… 우라늄 저농축‧재활용 길 열려
42년만에 한‧미 원자력협정 체결… 우라늄 저농축‧재활용 길 열려
  • 배지영 기자
  • 승인 2015.04.24 11:24
  • 호수 46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미 원자력협정 협상이 타결됐다. 1973년 이후 42년 만에 마련된 새 협정에는 한국이 미국산 우라늄을 저농축 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이 명시됐다.
박노벽 외교부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협상 전담대사와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는 지난 4월 2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대한민국 정부와 미합중국 정부 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협력협정’에 가서명했다. 양국이 지난 2010년 10월 첫 협상을 시작한 지 4년 6개월 만에 이뤄진 성과다.
이로써 한‧미 원자력협정 협상과정에서 핵심 쟁점이었던 두 가지 사안에 대해 당장 길을 튼 것은 아니지만 미래 활용 가능성이 열리게 됐다.
한‧미 원자력협정의 주요 내용은 △사용 후 핵연료에 대한 실험단계의 건식 재처리 허용 △사용 후 핵연료 제3국 위탁 재처리 가능 △20% 미만 우라늄 저농축 가능성 허용 △원전 수출 제한 및 인허가 조건 완화 △협정 기간 40년에서 20년으로 단축 등이다.
이번 협정에는 핵심 쟁점이었던 핵연료 농축과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를 명시적으로 금지해 주권 침해 논란이 됐던 이른바 ‘골드 스탠더드’(표준문안) 조항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농축과 재처리를 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고위급 협의를 통해 합의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독자 농축이나 재처리를 할 수 있는 길을 막은 셈이다.
농축 우라늄과 핵연료 재처리 때 나오는 플루토늄은 핵폭탄의 원료로 사용된다. 이 때문에 미국은 대만 등 다른 나라와 원자력협정을 맺으며 농축, 재처리 권리를 포기한다는 ‘골드 스탠더드’를 관철시켰다. 이는 사용 후 핵연료 연구·개발에 사실상 족쇄로 작용해왔다는 평가와 함께 미국 측의 일방적 통제방식에 따라 불평등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러나 ‘골드 스탠더드’가 명시적으로 규정되지 않음으로써 상대적으로 우리 측의 자율적 활용 가능성이 확대됐다. 이로써 한‧미가 사용후 핵연료 재활용을 위해 공동연구중인 파이로프로세싱(건식 재처리)과 관련해서도 우리가 보유한 현존 연구시설에서 미국산 핵연료를 이용한 첫 단계 연구를 자유롭게 수행할 수 있게 됐다.
또 새 협정은 한국이 의료용 방사성동위원소인 몰리브덴(Mo-99)을 생산, 수출하는 길도 열었다. 수입에 의존하던 암 환자에 대한 핵의학 진단이 국내 기술로 가능해지게 된 것이다.
중남미를 순방 중인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협정에 대해 “우리의 국익이 최대한 반영된 것”이라고 평가하며 “한‧미 간 새 원자력 협력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리퍼트 대사도 “이번 협정은 한‧미 간 포괄적 글로벌 파트너십과 성장하는 교역관계, 양국민의 유대 위에 만들어졌다”고 전했다.
산업계도 까다로웠던 원전 수출 절차가 대폭 생략된 것을 환영하고 있다. 한국전력 관계자는 “미국산 원자력 장비‧부품이 제3국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됨에 따라 공정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됐다”고 환영했다.
4년 간의 지루한 줄다리 끝에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이 타결됐지만 아직 숙제는 남아있다. 협정이 발표되려면 정식 서명을 해야 하고 한‧미 양국이 의회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식 서명은 가서명 이후 일반적으로 1~2개월 뒤에 이뤄진다. 정부는 가서명 이후 한글 번역본을 만들고 법제처의 검토를 거칠 예정이다.
하지만 일본이 농축·재처리에 대해 완전한 권리를 갖는 것과 비교하면 이번 협상 결과가 미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와 관련해 일본처럼 ‘포괄적 사전 동의’를 확보한 게 아니라는 점에서 여전히 불평등한 핵 협정이 아니냐는 것이다.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은 미국과 사전 협의를 하지 않고도 자체 판단에 따라 사용후 핵연료를 농축하거나 재처리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고 있다.
또 기존 협정에는 명시적으로 들어 있지 않았던 핵물질 농축 문제가 이번에는 세세하게 포함되면서 오히려 미국으로부터 새롭게 규제받는 대상이 늘어난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됐다. ‘차관급 한·미 간 정부위원회 사전 협의를 할 경우 가능하다’는 규정이 거꾸로 ‘반드시 미국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로 해석될 소지가 있어서다.
이번 한‧미 협정은 지금껏 한국 원자력 에너지 분야의 발전을 가로막아온 일부 장애물을 제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야 원자력 에너지 주기를 완성하는 긴 여정의 첫발을 뗐을 뿐이다. 이 먼 길을 성공적으로 가려면 한·미 원자력 분야 협력을 강화하고 신뢰를 끌어올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