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민가 소년들, 비리에 둔감해진 어른을 깨우다
빈민가 소년들, 비리에 둔감해진 어른을 깨우다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5.05.22 13:39
  • 호수 47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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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국제영화제 화제작 ‘트래쉬’
▲ 소년들이 부패 정치인의 비자금을 찾아내 마을 쓰레기장 꼭대기에 올라 마을사람들이 가져갈 수 있도록 돈을 뿌리는 장면. ‘정의’를 실현하려는 세 소년의 모습이 큰 감동을 준다.

부패한 정치인에 맞서는 세 소년의 통쾌한 이야기 화제
실제 빈민가 출신 소년 캐스팅… 성인 못잖은 액션 호평

“경찰이 절 쫓고 있어요. 고위급 정치인이 찾는 물건을 제가 갖고 있거든요. 하지만 전 포기 안 해요. 이제 겁 안나요. 제가 꼭 마무리할 거에요. 옳은 일이니까요.”
정치인의 비리를 폭로하는 동영상 속 빨간 티를 입은 한 소년이 담담하게 말한다. 얼굴이 상처투성이인 소년의 눈은 초롱초롱 빛났다. 생명마저 위협받는 상황이지만 소년은 신념이 있었기에 당당했다. 영화 ‘트래쉬’를 보는 기성세대들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5월 14일 개봉한 ‘트래쉬’는 희망을 주우며 살아가는 세 소년이 우연찮은 기회로 비밀이 담긴 지갑을 발견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특별한 모험을 그린 작품이다. 5월 9일 폐막한 전주국제영화제에 출품돼 전석이 매진되며 최고의 화제작으로 떠올랐던 ‘트래쉬’는 전세계 12개국 언어로 번역된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스크린에 옮긴 작품이다.
영화는 브라질 리우의 한 쓰레기매립지를 배경으로 한다. 14살의 ‘카타도르’(재활용 쓰레기를 주워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 소년 라파엘(릭슨 테베즈 분)은 어느 날 우연히 쓰레기 더미에서 지갑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지갑에서 돈을 발견해 절친한 친구 가르도(에두아르도 루이스 분)와 나눠 갖는다.
두 소년이 뜻밖의 행운에 기뻐한 것도 잠시 곧 경찰이 마을에 들이닥쳐 어마어마한 현상금을 걸고 지갑을 수소문한다. 지갑에 중요한 무언가가 있음을 직감한 라파엘과 가르도는 하수구에 사는 또다른 친구 ‘들쥐’(가브리엘 와인스타인 분)에게 지갑을 맡긴다. 하지만 지갑의 행방을 쫓고 있던 경찰이 세 소년에게서 수상한 낌새를 눈치 채고 이들을 쫓기 시작한다.
세 소년은 리더인 라파엘이 목숨을 잃을 뻔한 큰 위기를 겪었음에도 이에 굴하지 않고 진실을 밝히기 위한 모험을 떠난다.
영화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쓰레기’에 파묻혀 ‘쓰레기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세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는 우리나라가 현대화되는 과정에서 겪었던 진통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듯하다. 어린 아이들이 경찰에게 소리 소문 없이 납치돼 고문을 당하거나 공권력에 의해서 마을이 통째로 불타는 장면은 과거 군사정권 시절 자행된 악행을 떠올리게 한다. 또 영화에서 악으로 묘사되는 정치인 산토스는 지금도 뇌물수수와 각종 스캔들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부 국내 정치인들의 모습을 빼다 박았다.
이를 대하는 영화 속 어른들은 무력하다. 경찰은 부패한 정치인에 빌붙어 꼭두각시 행세를 하고 빈민가에서 봉사하는 미국인 줄리어드 신부와 자원봉사자 올리비아도 자신들을 옥죄어 오는 불의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못한다. 오직 가진 거라곤 ‘옳은 일’을 하겠다는 순수한 마음뿐인 소년들만이 악에 맞선다. 세 소년은 비록 평생 동안 배우지 못하고 더러운 쓰레기를 뒤지며 살아야 할지는 몰라도 부와 권력을 쥐고 말끔한 옷을 입었지만 부패한 어른들보다 깨끗하다.
스티븐 달드리 감독은 작품을 이끌어나갈 세 소년을 뽑기 위해 브라질 리우에서 공개 오디션을 열었다. 자그만치 1년이나 소요된 오디션에는 수천명이 참가했고 각축 끝에 세 명(릭슨 테베즈‧에두아르도 루이스‧가브리엘 와인스타인)이 뽑혔다. 선발 된 세 소년은 실제로 빈민가 출신인 데다가 영어를 한마디도 할 줄 모르는 아이들이었다. 이들은 경찰과 벌이는 추격 장면을 소화하기 위해 수개월동안 체조와 파쿠르라는 장애물 스포츠를 배웠다.
세 소년의 노력은 영화에서 빛을 발한다. 영화의 웃음 포인트를 맡은 가르도는 사실적인 엉터리 영어로 웃음을 준다. 또한 세 소년이 유연하고 작은 몸을 바탕으로 브라질의 건물 곳곳을 넘나드는 연기는 성인들의 액션연기 못지않은 박진감을 준다.
영화의 또다른 포인트는 아이들의 무지(無地)로 인한 코믹함이다. 자원봉사자에게 틈틈이 영어를 배웠지만 하루 대부분을 생계를 유지하는데 사용했기에 실력은 제자리 걸음이다. 영어를 잘 모르기 때문에 간단한 수수께끼를 푸는 것도 힘겹다. 하지만 세 소년은 포기하지 않았고 사건을 해결하는 결정적인 수수께끼를 풀어낸다. 무지할지는 몰라도 무력하지는 않았다.
영화는 순수한 소년들이 부패한 어른들을 깨우친다는 단순한 이야기를 그리면서 그 과정도 비교적 복잡하지 않게 풀어냈다. 여러 영화에서 본 듯한 내용을 소년들을 주인공으로 바꿔 짜깁기한 것에 불과한 것이라는 비판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본 많은 관객들이 찬사를 보내고 있다. 소년들의 순수함이 관객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5월 14일 개봉. 배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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