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렴하고 친절 ‘지역 사랑방’ 각광
저렴하고 친절 ‘지역 사랑방’ 각광
  • 정찬필 기자
  • 승인 2015.06.19 11:32
  • 호수 47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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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스타 전원이 60세 이상인 성남 ‘책마루 카페’

성남시 중원구 중원어린이도서관 1층에 위치한 ‘책마루 카페’에는 하루 종일 그윽한 커피향 이 가득하다. 아담한 카페 공간에 어울리는 은은한 조명 아래 어르신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여성 어르신들은 흰색 셔츠에 앞치마를 두르고 갈색 모자와 명찰을 갖춘 말끔한 모습이었다. “주문하신 커피 나왔습니다. 시럽 넣어 드릴까요?” 경쾌한 목소리와 함께 커피가 든 쟁반을 손님에게 전달하는 솜씨는 여느 커피 전문점과 다를 바 없었다.

▲ 손님맞이에 한창인 김필모(왼쪽), 이영자(오른쪽) 씨. 책마루 카페의 실버 바리스타들은 일하는 즐거움으로 당당한 노년을 맞이하고 있다.사진=조준우 기자

자격증 갖춘 전문가… 월 35만원 벌지만 자부심 커

2013년 10월 오픈한 책마루 카페는 지역 내 어르신들을 위해 성남시가 마련한 ‘어르신 일터’다. 성남시의 예산 1000만원을 투입해 20평 남짓한 중원어린이도서관의 1층 한쪽을 개조했다. 벽면에는 카운터와 진열장을 설치했고 기업이 후원한 커피머신과 냉장고 등을 들여 놨다.
1명의 매니저와 9명의 60~70대 바리스타(즉석에서 커피를 맛있게 만들어 주는 사람)가 2명씩 팀을 이뤄 하루 4~5시간씩 오전, 오후 교대로 일을 한다. 순번을 정해 하루씩 번갈아 가며 출근하기에 업무량이 부담되거나 힘들진 않다.
카페 수익금은 바리스타들의 수입이 된다. 매출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수입은 1인당 월 30~35만원 정도다. 손에 쥐는 돈의 액수는 적지만 젊었을 적 돈을 벌 때보다 뿌듯함은 더 크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어르신들은 한 분을 빼고 바리스타 자격증 시험에 당당히 합격했다. 넉달에 걸쳐 전문 학원에서 이론과 실무를 철저히 교육 받았고 시험까지 통과했다. 운영과 서비스 모두 어르신들이 책임지고 있지만 그럴듯한 모습으로 구색만 갖춘 카페는 아니다.
메뉴도 제법 다양하게 갖췄다. 아메리카노(1500)와 카푸치노(2000원), 캐러멜 마키아토(2000원)와 같은 인기 품목은 물론 딸기 라떼(3000)나 바나나 라떼(3000)등 과일을 이용한 여름 메뉴도 준비했다. 샌드위치나 빵과 같은 간단한 간식거리도 갖춰져 있다. 커피와 음료 등을 어르신들이 직접 만들어 시중가보다 20~30%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
카페가 들어서는 주민마다 놀라는 눈치다. “여기는 뭐 하는 곳이지? 정말 어르신들이 카페를 운영하신다고?”라는 기대 반, 호기심 반의 반응이었다.
매니저 강여실(66)씨는 “호기심으로 들어왔다가 단골이 되신 분이 많다. 고객들의 반응이 너무 좋아 근무자들이 신바람을 내며 일하고 있다”며 “여기서 일하는 분들은 미소가 끊이지 않아 젊어 보인다. 어린이들을 포함해 다양한 세대의 사람들과 호흡하니 나이를 잊고 지낸다”라고 말했다.
까페 바리스타 중 최고령인 김필모 (77)어르신은 지금도 자격증을 따기 위해 준비했던 시간이 꿈만 같다고 말한다. “뽑히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바리스타 자격증이 있어야 하더군요. 학원에서 필기와 실기 공부를 하고 두 달가량 시험공부를 해서 응시했습니다.”
영어에 이탈리아어, 생소한 전문용어까지 줄줄이 나오는 바리스타 시험과정은 김 어르신에게 큰 도전이었다. 평생 처음 도전하는 자격증 시험인데다 초등학교만 졸업한 학력, 녹내장을 앓고 있던 양쪽 눈도 어르신을 괴롭혔다. “중간에 포기하려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그러나 학원 선생님이나 동료분들의 얼굴을 보니 용기가 나더군요.”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던가. 우여곡절 끝에 시험에 합격하자 형용하기 힘든 성취감과 뿌듯함을 느꼈다.
첫 손님을 받을 때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직접 만든 커피를 처음 내줄 때 어찌나 두근거리던지. 맛이 없으면 어쩌나 걱정을 많이 했다. 다행히 손님들 반응이 좋아서 너무 기뻤다.”
김 어르신은 일을 시작하게 된 후 지병이던 녹내장도 많이 나아지고 오래 고생했던 관절염도 하나도 아프지 않다고 말했다. 또 일이 힘들고 쉽고, 월급이 많고 적음을 떠나 직업인으로서 새로운 것에 도전하며 경험한 성취감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크나큰 행복이라고 밝혔다.
“쉰다고 편하지 않고 일한다고 힘든 건 아니거든요. 돈을 벌기보다 즐거움을 위해 일하는 겁니다. 건강하게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계속 일을 하고 싶어요. 또 언젠가는 제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를 찾아 봉사활동도 하고 싶고요."
책마루 카페 손님중에는 학부모와 어린이들이 많다. 가족 손님들에게 ‘흰머리 바리스타들’은 더욱 각별하다. 어르신들의 친절한 서비스와 환한 미소, 게다가 즉석에서 만드는 신선한 커피와 음료 덕분에 ‘지역 주민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용기 있고 멋져 보여요. 나이를 드셔도 새로운 일에 도전하시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은 아이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어르신들에 대한 편견이 사라져 앞으로도 이런 일자리가 더 늘어나면 좋겠어요” 이날 자녀들과 책마루 카페에 들른 박유진(42·여)씨의 말이다.
중원어린이도서관의 사회복지사 류진희씨는 “항상 아이들과 손님들을 따뜻하게 반겨 주시는 모습을 볼 때 삶의 연륜이 묻어나는 ‘큰 어른’의 모습을 발견 한다”며 “어르신들이 일자리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좋은 커피 만들기에 노력하는 적극적인 모습을 뵐 때 ‘최고의 노인복지는 일자리’라는 말을 절감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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