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막극을 넘어 정극에 도전하는 시니어 연극단
단막극을 넘어 정극에 도전하는 시니어 연극단
  • 이상연 기자
  • 승인 2015.07.24 14:31
  • 호수 47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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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노인복지관 연극단 ‘대학老愛’
▲ 서울 종로노인종합복지관 연극단 ‘대학老愛’ 김상미 어르신(왼쪽에서 세 번째)이 단원들 가운데 서서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1시간 분량 ‘삼시세끼’ 대학로 소극장서 올 연말 공연
‘경로당 폰팅사건’ 큰 호평, 자전연극도 관객에 감동 선사
단원들 “노인에게 용기주고, 노인의 삶 보여주려 연기”

“정식 연극을 통해 노인들의 삶을 보여주고 싶어요.”
짧은 단막극 위주의 공연을 하는 기존 실버연극단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고 나선 어르신들이 있어 화제다. 서울 종로노인복지관 ‘대학老愛’ 연극단이다.
평균연령 74세의 노인 18명으로 구성된 이 연극단은 올해 말 대한민국 연극공연의 메카인 대학로 소극장에서 1시간 가량의 정극 공연을 펼친다. 연극 제목은 ‘삼시세끼’. 지역 개발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을 위기에 처한 오지마을 노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지난 7월 21일 오후 3시, 복지관 4층 강당에 어르신들이 모여 대본 읽기에 한창이다.
“우린 테마파크가 뭔지도 몰라요. 여기서 나가면 살 곳도 없어요.”
“이렇게 되면 우리 모두 다 죽는 거라고요. 제발 선처해주세요.”
일주일 전인 7월 14일 정식 창단식을 가진 극단의 모습치곤 제법 실감나는 연기를 펼친다. 특히 귀머거리 노인 역을 맡은 김상미(72) 어르신, 독거노인을 연기할 곽정순(73) 어르신은 극 중 인물의 답답하고 쓸쓸한 심정 표현을 위해 주먹으로 가슴을 쳐대는 등 열연을 펼쳤다. 조용순(82) 어르신도 치매 걸린 노인의 모습을 실감나게 표현했다.
창단 후 처음 갖는 공연에 대한 부담감은 없는 듯 했다. 대부분이 현 극단의 전신인 ‘빨래터’ 연극단(2011년 발족) 시절부터 총 3편의 공연을 통해 나름의 연기 내공을 쌓아온 이들이기 때문이다.
고전극 ‘심청전’(2011)을 준비하며 극단의 기반을 잡은 뒤, ‘경로당 폰팅사건’(2012·2013), ‘지상 최고의 댄서’(2014)로 관객들에게 다양한 ‘노년의 삶’을 선보였다.
그 중 가장 호평을 받은 공연은 ‘경로당 폰팅사건’. 평범한 경로당에 ‘폰팅’으로 인한 고액의 전화요금 고지서가 도착한 후 범인을 찾아내는 과정을 그린 코믹연극으로, 이미 2004년에 공연돼 큰 인기를 끈 유명작품이다. 이 작품을 빨래터 극단이 리바이벌(오래된 영화나 연극, 유행가 따위를 다시 상영하거나 공연하는 것)해 선보인 것.
당시에 함께 연극에 참여한 배우 박정미씨는 “기존의 젊은 배우들이 할 수 없는, 사실감이 살아 있는 어르신들의 연기를 보며 관객들이 연극에 절로 빠져들었다”고 설명했다.
원작 중 노인 역을 맡은 고령 연기자들의 생동감 있고 진정성 있는 연기는 큰 호평을 얻어 2012년엔 앙코르 공연까지 펼쳤다.
이런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치열한 연습 덕분이다. 한국 연극계의 거장 강영철 연출가가 직접 연출을 맡아 어르신들의 걸음걸이부터 밥 먹는 동작, 목소리 톤까지 모든 부분을 혹독하게 지도했다.
김상미(72) 어르신은 “매일 2~3시간씩 강도 높은 연습을 이어갔다”며 “주말엔 단원들과 연습하다 점심과 저녁식사도 같이 먹고 또 연습에 매진하곤 했다”고 회상했다.
그 결과 어르신들은 자신의 대사는 물론, 상대방 대사와 동선까지 암기할 정도로 숙련된 연기자로 거듭나게 됐다.
연극에서 귀머거리 노인을 연기한 조용숙(82) 어르신은 “아직도 그때 외웠던 대사가 생각날 정도”라며 “가끔 밭일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기도 한다”고 밝힌다.
또한 지난해엔 자전연극 ‘지상 최고의 댄서’를 통해 자신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했다. 복지관 프로그램 시간에 어르신들이 발표한 자서전을 모티브로 한 창작 희곡이었다. 이 연극의 주인공은 곽정순(73) 어르신이 맡았다.
사실 곽 어르신은 처음엔 주인공이 내키지 않았단다. 연극의 주 내용은 곽 어르신이 어릴 적 겪었던 고생담들을 엮은 것이었는데, 이를 남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자서전을 들은 동료들은 꼭 그 내용이 무대에 오르길 바랐다.
전남 진도에서 태어난 곽 어르신은 어릴 적부터 각기병 탓에 누워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지금은 쉽게 치료할 수 있는 병이지만 당시만 해도 제대로 된 병원은커녕 약을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부모님은 매일 딸의 약을 구하러 사방으로 뛰어다녔다.
초등학교도 10살이 돼서야 들어갔다. 하지만 동급생들은 잘 움직이지 못하는 그를 매일같이 놀려댔단다.
그러다 6.25가 발발했다. 그때 곽 어르신은 큰 아픔을 겪는다. 진도에 침투한 북한 인민군들이 그의 오빠를 붙잡아간 것이다. 눈앞에서 가족을 잃은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그래서 그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항상 가슴에 품고 있다. 이런 내용이 지난해 11월 무대에 올랐다.
연극의 엔딩에서 곽 어르신은 수십 년 전 헤어진 오빠와 결혼 후 하늘로 떠나보낸 부모님을 모두 만났다. 영혼이 된 가족들이 그의 곁을 찾아와 손을 잡았다.
그는 “물론 그때 만난 가족들은 단원들이 연기한 인물들이었지만 행복했다”고 밝힌다. 엔딩 후 모든 배우들은 손을 잡고 ‘진도 아리랑’을 불렀다. 배우들과 관객들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이날의 공연을 통해 단원들은 연극공연의 감동을 알게 됐단다.
김상미 어르신은 “노인들은 살아온 인생 자체가 한편이 영화이며 공연”이라며 “노인들에게는 우리처럼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젊은이들에겐 노인들의 삶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힘줘 말한다.
인터뷰 후 어르신들은 연극 ‘삼시세끼’ 대본을 다시 들여다본다. 맡게 된 배역에 대한 숙지를 위해 미간을 찌푸리고, 눈을 흘겨 떠보기도 한다. 그런 어르신들의 얼굴은 자부심과 행복감으로 가득했다. 이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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