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가위손 할머니들, 미용실로 돌아왔다
은퇴한 가위손 할머니들, 미용실로 돌아왔다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5.08.07 13:55
  • 호수 48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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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강릉‧청주 시니어클럽 ‘은빛미용실’ 활기
▲ 최근 은퇴한 어르신 미용사들이 시장형 일자리사업을 통해 복귀하는 일이 늘고 있다. 사진은 지난 8월 4일 인천 '은빛미용실'에서 장판임 원장(좌)을 비롯한 어르신 미용사들이 손님들의 머리를 파마하는 모습.

파마 1만원, 커트는 4000원 받아… 실력‧재료는 수준급
미용실은 어르신 사랑방 역할도… 이야기꽃 피워

“전에 다니던 미용실보다 값도 싸고 파마도 더 잘나오는 거 같아요.”
지난 8월 4일 인천시 계양구 계산2동에 위치한 ‘은빛미용실’에서 만난 이일화(여‧45) 씨는 ‘셋팅파마’를 받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의 머리는 50년 경력의 장판임(여‧73) 원장 손에서 세련되게 변하고 있었다. 이 씨는 “처음에는 어르신들이 미용사라서 선입견을 가졌지만 막상 머리를 맡겨보니 전에 다니던 단골미용실 보다 훨씬 낫다”고 덧붙였다.
최근 인천, 강원, 충청지역 시니어클럽 등에서 노인일자리 사업의 일환으로 미용실을 운영하면서 은퇴했던 ‘가위손 할머니’들이 현역으로 복귀하고 있다.
시장형 노인일자리 사업으로 미용실을 운영 중인 대표적인 곳은 인천 계양시니어클럽과 강원 강릉시니어클럽에서 운영 중인 ‘은빛미용실’이다
지난 2013년 문을 연 계양시니어클럽의 은빛미용실은 현재 일평균 이용객이 20여명 이상 방문하는 인기 미용실로 자리 잡았다. 대부분의 손님이 파머를 하기 위해 방문하는데 일반 미용실로 환산하면 하루에 100만원 이상 매출을 올리는 것과 같다. 불과 2년 사이에 올린 쾌거다.
사업 초창기에는 인천지하철 계산역을 나와 10분가량 언덕길을 올라야 나오는 미용실의 불리한 위치와 ‘어르신 미용사’가 유행에 뒤처지거나 실력이 떨어진다는 편견 때문에 하루 방문객이 3~4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시니어클럽을 이용하는 어르신들을 중심으로 입소문이 났고 최근에는 지역 40~50대 주부들과 자녀들까지 방문하고 있다.
장 원장을 비롯해 9명의 어르신이 미용사로 일하는데 전원이 미용사격증을 소유하고 있다. 어르신들은 모두 젊은 시절 ‘머리 잘한다’는 말을 꽤나 들었던 베테랑 미용사였지만 결혼과 기타 사정 등으로 가위를 내려놓아야 했다. 60년대부터 꾸준히 활동하다 2009년 은퇴한 장 원장처럼 최근까지 활동한 미용사도 있지만 대부분은 결혼과 동시에 은퇴했다. 비록 은퇴는 했지만 어르신들은 지인들의 머리를 만져주며 실력을 썩히지 않았고 우연히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복귀한 것이다.
70년대 결혼과 동시에 가위를 놓았던 강정자(여‧70) 어르신은 “꾸준히 친구들의 머리를 잘라주며 감각을 유지하다 시니어클럽의 요청으로 참여하게 됐다”면서 “몸은 늙었지만 미용 감각은 젊은이 못지 않다”고 말했다.
이곳의 강점은 단연 가격. 65세 이하는 기본 파마 비용이 1만원이고 커트는 4000원에 불과하다. 인근 미용실과 비교하면 반값도 안 된다. 값이 싸다 해서 미용재료도 싼 것 아니냐는 오해를 받고 있지만 시중 미용실에서 사용하는 것과 똑같은 제품으로 방문객의 머리를 만져주고 있다. 이로 인해 꾸준히 방문하는 단골도 늘고 있다.
이곳 단골인 임계영(여‧73) 어르신은 “집에서 멀어 버스를 타고 와야 하지만 동네미용실보다 가격도 싸고 친절해 두 달에 한 번씩 머리를 하러 온다”고 밝혔다.
9명의 어르신들은 화‧수요일 조와 목‧금요일 조로 나눠 근무를 한다. 월평균 40~50시간을 일하면서 받는 금액은 30만원 내외. 금액은 많지 않지만 자신이 잘하는 일을 즐기면서 할 수 있다는 것에 어르신들은 일에 대한 만족감이 높은 편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장 원장은 “돈을 버는 것도 좋지만 손님들이 만족한 표정으로 돌아가는 모습에 보람을 느낀다”면서 “앞으로도 은퇴 없이 지속적으로 활동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2012년 문을 연 강릉시니어클럽의 ‘은빛미용실’은 지난 1월 2호점을 개설하며 어르신 일자리 확보와 함께 지역 어르신들에게 저렴한 가격에 미용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파마 1만5000원, 염색 1만원 등 주변 상권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을 책정했기 때문에 이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65세 이상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2호점도 주변상권과 어르신들의 접근 용이성 등을 오랜 시간 고민한 끝에 결정했다는 후문.
현재 1호점 18명, 2호점 21명의 어르신이 참여하고 있는데 이중 절반가량이 전직 미용사 출신이다. 보조하는 역할로 절반의 어르신을 고용해 일자리 사업의 취지도 살렸다.
또 이곳은 어르신 사랑방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커피를 마시거나 친구를 만나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 위해 미용실을 찾는 노인이 대부분일 정도이다. 미용사와 손님들이 동년배로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학창시절, 연애, 결혼 등의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며 매일같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미용사 출신 어르신들은 젊었을 때 고생을 많이 해서 다시는 생업으로 미용사일을 하지 않으려했지만 먼저 참여한 사람들이 동년배의 머리를 손질하며 즐겁게 일을 하는 모습을 보고 일하기로 마음 먹었다.
강릉시니어클럽 관계자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전직 미용사 출신 어르신들을 발굴해 싼 값에 미용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배성호 기자, 사진=조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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