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가 종친회를 찾아가다] 피씨(皮氏)
[명문가 종친회를 찾아가다] 피씨(皮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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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6.04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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崇祖敦宗(숭조돈종) 이념으로 선조유업 전승 ‘대통합’ 온 힘

崇祖敦宗(숭조돈종) 이념

선조유업 전승 ‘대통합’ 온 힘

650여년 지난 오늘까지 가문 빛낸 효자 수두룩
조선의 개국공신 피득창 괴산피씨 중흥시켜

본지는 숭조(崇祖), 경로효친의 아름다운 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기획 특집 면을 마련했습니다. 이 지면은 해당 성씨·본관 대종회의 요청 순서에 따라 기획되며 본지 60호 ‘한국 성씨·본관 총괄 기획특집 기사에 이어 성주이씨(61호), 합천이씨(62호), 서림·서천이씨(63호), 광산탁씨(64호), 진주류씨(65호), 의성김씨(66호), 나주임씨(69호)를 게재했고 이번 호는 피씨 편을 특집으로 꾸몄습니다. 

 

글·최종동 편집위원

옛 문헌에 의하면 피씨의 본관은 32본(本)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괴산, 홍천, 단양, 경주, 충주, 안산, 공주, 당진, 광주 등 10여 본이 현존하고 있다. 32개 본관이 10개 본관으로 통폐합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이 10개 피씨 중 대종회가 잘 조직되고 본관과 세계에 대한 기록이 잘 알려진 것은 괴산피씨, 단양피씨, 홍천피씨, 안산피씨 등이며, 인구수로는 괴산피씨가 가장 많다.


  재실(齋室) 자인당.

 

피씨의 기원은 중국 주나라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주 경사(卿士)인 번중피(樊仲皮)의 피자를 따서 성(姓)으로 삼았으니 실로 역사가 오랜 성씨라 할만하다.


한국의 피씨 시조도 중국에서 건너왔다는 것이 성씨관련 문헌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괴산피씨의 경우, 시조 피경정(皮慶庭)은 중국 원나라 사람으로 초휘는 기광(起光)이고 호는 청파라고 알려져 있다. 원나라 순제 때 금자광록대부 신경위 대장으로 남월을 정벌하다 실패하자 가족을 이끌고 우리나라로 망명한 사람이다.

 
망명한 피경정이 공민왕의 고려 조정에서 괴산군에 봉해지는 등 특별대우를 받은 것이 계기가 돼 이후 괴산피씨 본관이 생겨났다. 괴산피씨를 중흥시킨 인물은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병조판서와 전라감사 등을 지낸 피득창(皮得昌)이다. 그는 이부상서 피성무(皮成茂)의 아들로 이성계를 도와 조선개국 과정에서 공을 세워 개국공신에 책록된 인물이다. 그래서 괴산피씨의 중시조로 받들고 있다.

 

‘성씨 총감’에 따르면 “원래 홍천피씨(洪川皮氏)였는데, 괴산에 정착하여 세거하면서 후손들이 괴산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고 하는데, 이 역시 피득창과 관련이 있는 얘기다.


괴산은 충청북도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괴산이라는 지명을 쓰게 된 것은 조선 태종 13년(1413) 때였다. 고구려시대에 잉근내군(仍斤內郡)이라 하였으며, 신라시대에는 괴양군, 고려시대에는 괴주군으로 불렸다가 조선 태종조에서 괴산이라고 칭하게 된 것이다.

 

고려 현종 9년(1018년)에 충주에 예속시켜 감무관(監務官)을 두어 다스리게 한 적이 있고, 1895년(고종32)에 충주부에 속했다가 1914년 부·군 통폐합시 연풍군을 병합하였다.


괴산피씨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피세만(皮世萬)을 들 수 있다. 그는 숙종때 적상별장을 거쳐 훈련원 판관이 되었다. 영조조 정희량의 난이 일어나자 병방군 류만원 등과 더불어 적을 토평, 많은 공을 세우고 순절했다. 병절교위 훈련원 첨정·부사과에 추증되고, 성산(성주)에 기공비(紀功碑)가 세워졌으며, 그 사적이 ‘충의효열록’(忠義孝烈錄)에 실려 있다.

 

그 외 중시조 득창의 아들 강지(康芝)가 장령을 지냈으며, 손자 정(釘)이 진사를, 증손 소(燒)는 목사를 역임하여 판서에 오른 후손 홍군, 통덕랑 경송, 방어사 동현 등과 함께 이름을 날렸다. 그 외 통정대부 종남과 판관 세만, 통사랑 세담이 유명했으며, 효자로 향민의 칭송을 받은 운손, 통덕랑 경우, 참봉 봉준 등이 가문을 빛낸 후손들이다.


괴산피씨는 시조로부터 약 65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그 후손이 번창하여 29세에 이르고 있고 충청도의 충주와 진천, 경북의 상주와 성주, 안동, 경주 등 괴산지역으로부터 외곽으로 세거지를 넓혀가며 오늘에 이르렀다. 2000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의하면 괴산피씨는 전국에 총 693가구 2204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홍천피씨는 원나라에서 금오위상장군을 지낸 원나라 피위종을 시조로 하고 있다. 고려 충렬왕때 동국안렴사로 우리나라에 왔다가 풍물에 정이 들어 귀화하게 되었는데, 충렬왕이 병부시랑을 제수하였고 뒤에 좌사의대부에 추증되었으며 그의 맏아들 인선이 정당문학, 좌복야 등을 지낸 후 홍천군에 봉해졌으므로 홍천을 관향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홍천은 고구려의 벌력천현인데, 신라 때는 녹효로 고쳐 삭주의 영현이 되었다가 1018년에 홍천이라 개칭하고 삭주에 예속시켰으며 1143년에 감무를 두었다. 1413년 홍천현, 1895년 춘천부 홍천군, 1896년 13도제 실시로 홍천군이 되었다.


안산피씨의 중시조는 정당문학 좌복야를 지낸 피인선이다. ‘성씨 총감’에 의하면 피인선이 안산군에 봉해짐으로써 안산을 본관으로 삼았다고 한다.

 

피인선의 시호는 문평. 그 후손 중에서 피우세가 충무위부사과를 지내고 일산 거구동에 세거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성씨총감 등 성씨관련 문헌기록에 의하면 홍천피씨 외의 몇몇 본관의 피씨도 원래는 홍천피씨였다고 밝히는 기록이 나타난다.

 

하나의 뿌리에서 나와 32개 피씨 본관으로 분파하였다가 현재 10여개 본관으로 통합, 사멸되는 과정이 현재도 계속되고 있는지 관심이 가는 대목이다. 홍천피씨의 인구는 1143명으로 괴산피씨에 이어 피씨 중에서 두 번째로 많다.

 



역사속의 피씨 인물

고려시대·조선조에 관직 중용 많아
18세손 피세만 ‘종4품’ 벼슬하사

우리 역사에서 피씨의 인물을 찾기는 쉽지 않다. 수많은 역사 현장에 이름을 올린 인물 중에서 쉽게 기억되는 인물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괴산피씨 홍천피씨 등 피씨 시조가 원나라 때 중국에서 왔고, 고려에 정착한지 오래지 않아 조선이 개국했기 때문인 듯하다.


그럼에도 고려시대와 조선조에서 관직에 중용된 피씨 인물은 많이 발견된다. 우선 괴산피씨 시조 괴산군 피경정, 이부상서 이성무, 괴산피씨 중시조 병조판서 피득창, 영조때 큰 공을 세운 괴산피씨 18세손인 피세만 등이 있다.

 

피세만은 공신 147명 중에 등재되어 종4품관인 훈련원 검정 벼슬을 하사 받았으며 그 공훈과 공적 내용이 기린각에 기록되어 있고 기공비가 경북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에 세워져 있다. 매년 5월이면 전국에 산거하고 있는 피씨후손들이 정성으로 예를 갖추어 성주 용암 회목 시조제단비(始祖祭壇碑)를 찾아 향사하고 있다.


홍천피씨의 시조 피위종은 고려 충렬왕 때 병부시랑을 제수 받았고, 그 아들 피인선은 정당문학, 좌복야 등을 지내고 홍천군에 봉해졌다. 피인선의 아들 피맹문은 승지, 손자 피원휴는 한림학사를 지냈다. 조선조 성균관 사성을 지낸 피영기, 참의 피연기, 한성부 판윤을 지낸 피세숙 등이 관직에 올랐다.


안산피씨는 의감을 지낸 피현주, 한성부 좌윤 오위도총부 부총관을 지낸 피연성, 중시조 충무위 부사과 피우세, 감목관 피재길 등이 있다.


 

현대의 피씨 인물

재·정·교육계 등 왕성한 활동

현대에 가장 크게 이름을 날린 인물로 금아 피천득을 꼽을 수 있다. 5월 25일 97세를 일기로 타계한 금아 피천득(琴兒 皮千得)은 서울대 명예교수, 수필가, 시인, 영문학자다. 수필하면 ‘인연’을 떠올릴 만큼 명작을 남겼다. 또 ‘플루트플레이어’ ‘내가 사랑하는 생활’ 등이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기업인으로는 피홍배(71)회장을 들 수 있다. 피홍배 회장은 현재 주식회사 삼정 외 몇 개 회사의 대표이사 회장을 맡고 있는 중견 기업인이다. 경북 성주가 고향인 피회장은 현재 재경 성주향우회 명예회장, 성주신문 회장, 재경 성주기독신우회 회장, 재경 성주복지장학회 등 여러 단체에서 왕성한 활동으로 고향 발전과 고향의 후학들을 위하여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리고 기업에서 얻어진 소득의 사회 환원을 실천하고 있으며, 괴산, 단양, 홍천, 경주 등 전국 피씨 총대종회장을 20여년 맡았다.


피씨는 종원 관리에 철저하여 고위관직에서 말단에 이르기까지 공직에 나가는 경우 청렴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마라’ ‘남에게 손가락질 받는 사람이 되지마라’ ‘부정축재 하지마라’ ‘봉사하는 마음을 가져라’ 등 가정교육에서부터 철저한 종원교육을 하고 있는 것.


전체 인구가 6000여명에 불과하지만 학계와 재계, 법조인 등 각 분야에서 두드러진 인물들이 고루 분포하고 있다.(지면 사정 및 본관별 형평성 등의 이유로 현대인물 명단 생략)



피씨 주요 파조(派祖)와 전국의 세거지

단양·괴산·홍천·경주·상주 등 많이 거주
성주 회목 30여호 집성촌엔 재실 자인당

19세 목사공파 피광종의 후는 대구 매천동을 중심으로 살고 있고, 사직공파 피수덕의 후는 경북 상주시 외답을 중심으로 살고 있다.


18세 첨정공파 피세만의 후는 경북 성주군 용암면 본리3동(회목)을 중심으로 살고 있고, 판관공파 피만득의 후는 경북 상주시 엄암을 중심으로 살고 있다.


17세 좌윤공파 피우백의 후는 경북 성주군 용암면 기성리를 중심으로 살고 있고, 참의공파 피순길의 후는 충북 진천군을 중심으로 살고 있다. 그리고 감정공파 피정현의 후는 경북 상주시 외답과 청리를 중심으로 살고 있다.


16세 통덕랑공파 피학빈의 후는 충북 진천군을 중심으로 살고 있다. 14세 통정공파 피한경의 후는 충북 충주시 한수를 중심으로 살고 있다. 그리고 13세 도총관공파 피동책의 후는 경북 경주시를 중심으로 살고 있다.


성주(星州)로의 입향은, 16세 통정대부 피종남이 약 370여년 전 조선 인조조에 경북 성주군 용암면 본리리 일명 회목(檜木:야시목, 여우목)에 입향하여 30여호가 집성촌을 이루었고 여기엔 시조제단비와 재실인 자인당이 있다.(기타 본관 파조 생략)

※자료 협조 : 피씨 대종회 피성찬 총무/ 피주환 운영위원



‘대종회관 건립’ 모두가 참여하자

■ 인터뷰 - 피씨 대종회 피홍배 고문 (前 회장)

현재 전국 피씨 대종회 회장은 춘천에 거주하는 피봉섭(76)씨이다. 인터뷰를 요청하였으나 20여년을 대종회 회장을 맡아오면서 피씨 전체를 이끌어온 피홍배 전 회장과의 인터뷰를 권하며 피 회장이 고사했다. 따라서 직전 회장인 피홍배 현 고문을 만나 전국피씨 대종회에 대해 들어봤다.

 

피홍배 회장은 현재 몇 개 회사의 대표이사 회장직을 갖고 있는 중견 기업인이다. 각종 봉사단체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이라는 기업인으로서의 소명을 실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전국에 흩어진 피씨 종친들을 한데 묶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여 누구보다 애종심이 투철한 분으로 평가받고 있다.

▶20년 이상 전국 피씨 대종회를 이끌어 오다가 최근에 물러나셨습니다.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종친들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는 마음으로 출발한 대종회 회장직이 어느덧 20여년 가까이 되었다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그간 나름대로 전국 종친들에게 애종심을 갖도록 독려와 최선의 노력을 하였지만, 아직도 할일이 많습니다. 미처 하지 못한 일들은 새로운 회장단이 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우리 피씨는 종원수가 많지 않아서 특별히 두각을 보이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나름대로 사회의 각계각층에서 고른 활약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제가 그 피씨의 종친회를 이끌어왔으니 아무래도 생각이 많지요.”

▶피씨의 자랑거리라면 


“반, 상의 척도는 한 문중 종인들의 품성으로 가늠할 수 있습니다. 다행히 우리 피씨는 선조들의 투철한 애종심 덕분에 사회에서 지탄 받는 사람은 없는 것이 다행한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과거 선조들은 후손들이 사회에 첫발을 들여놓을 때 반드시 지켜야 할 덕목을 가르쳐 주었지요. 또 문중 차원에서 전폭적으로 지원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후손들이 잘 따라주어 오늘날의 결실로 맺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또 1993년부터 각지역 위원회의 추천으로 효자, 효부 등 효행자를 선발하여 엄격한 심사를 거쳐 표창해오고 있으며, 장학사업으로 특정대학 입학 시 등록금과 학비전액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80세 이상 회원에게 수복상 수여제(壽福賞 授與制)를 매년 실시하여 숭조돈종을 실천하고 있는 것 또한 우리 피씨 대종회의 자랑거리라 할 수 있겠습니다.”

▶대종회장 때부터 고문으로 물러난 지금까지 늘 생각하는 숙원사업이 있습니까 


“첫째로 회관건립입니다. 5억원의 목표금액을 정해놓고 자발적인 종인들의 참여를 권유하여 모금 중에 있습니다. 종인들 중에 독지가 한 두 사람의 협찬으로도 가능한 금액이지만 본관을 초월한 종인 모두가 십시일반으로 참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그래야만 진한 애종심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본관별 합동 향사를 지내는지요 


“1973년에 피씨 전체 대종회가 발족되어 올해로 34년이 됐는데, 본관별로 제향을 모시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종회훈(大宗會訓)인 ‘숭조돈종’(崇祖敦宗)의 이념으로 선조의 유업 전승과 회원 상호간 친목도모를 꾀하고 있어 합동 향사를 지내는 것에 가름하고 있습니다.”

▶오래 대종회장을 맡아오다가 손을 놓았으니 종원들에게 당부할 말씀도 각별하겠습니다.


“비록 전국에 산거하고 있는 종인들이지만, 모든 피씨는 하나라는 일념으로 숭조돈종하면서 우리의 전통문화와 윤리관을 존중하여 회원 상호간에 우의가 더욱 돈독해졌으면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당면 숙원 사업인 회관건립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도록 모두가 동참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는 효행자 발굴이 미비하여 효자효부상 시상을 못하고 해를 거르는 경우도 있었으나 앞으로는 매년 실시될 수 있도록 우리 종원들이 모두 적극 나서주기를 또한 바랍니다. 또 장학금도 더욱 확충하여 더 많은 회원 자녀들이 혜택을 누리게 되었으면 하는 것도 제 바램입니다. 피봉섭 현 대종회 회장님을 중심으로 어느 대종회에 못지않은 피씨대종회가 될 수 있도록 우리 종친회원 여러분이 적극 협조해 주시기를 진심으로 당부드립니다.”


피홍배 전 피씨 대종회장

▷피홍배(皮弘培, 71) 경북 성주 출생
▷단국대 행정학과 졸업(1961년)
▷대통령 총무비서실 근무(1963~72년)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수료(1992년)
▷고려대학교 국제대학원 최고국제관리과정 수료(1994년)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최고위언론과정 수료(1997년)
▷재경 성주향우회장(2001~2004년)
▷전국 피씨 대종회 회장(1987녀~2006년)
▷재경 성주기독신우회 회장(현)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최고경영자과정 총동창회 부회장(현)
▷재경 성주복지장학회 이사(현)
▷새한성결교회 장로(현)
▷(주)삼정 대표이사 회장(현)
▷(주)시화제련 대표이사 회장(현)
▷(주)가야개발 대표이사 회장(현)

최종동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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