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살까지 살면 좋을까”
“몇 살까지 살면 좋을까”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5.09.11 13:41
  • 호수 48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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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칠십 고래희다. 이 정도 산 것도 드문 일이다. 징글맞게 오래 살았다”

‘몇 살까지 사는 게 좋을까’. 사석에선 이런 질문을 농담 삼아 많이들 하지만 토론회·컨퍼런스 등 엄격한 자리에서 심각하고 진지하게 논의된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이 만큼 중요하고 개인적이며 내밀하고 선택적인 물음은 없을 것이다. 충분히 논의거리가 될 수 있다.
90세를 넘고 100세를 바라보는 요즘 ‘나도 백살까지 살아볼까’ 하는 기대가 희망이 아닌 현실이 됐다. 그러나 장수한 이들의 한결 같은 말은 “오래 살아봤자 그게 그거다”. 지금도 매일 8시간씩 환자를 보고 있는 ‘현역의사’ 강재균(92) 강이비인후과의원 원장은 오래 사는 것과 관련해 “별거 없더라. 가장 좋았던 시절은 젊었을 때였다”고 대답했다. 철학자 김형석(95) 연세대 명예교수도 “내가 가장 좋았던 시절은 60 ~75세였다”고 회고했다. 올해 100세를 넘긴 박용구 예술인(뮤지컬 ‘살짜기옵서예’ 연출자)은 “지인들이 다 떠나 외롭다… 나도 따라가려했지만 시기를 놓쳐 지금껏 살고 있다. 사람은 죽어서 억만개의 별 중 하나가 된다”고 말했다.
누구나 장수를 바라지만 꼭 오래 사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건강하지 못한 채 수명만 길어지면 재앙이다. 돈 없이 빈곤 상태로 오래 사는 것 역시 불행이다. 그렇다면 돈 많고 건강하고 오래 살면 좋을까. 계절마다 크루즈여행을 떠나고, 알프스에서 스키 타고, 헤롯백화점에서 명품가방·구두 사는 호사로운 생활이 과연 행복한 것일까. 그런 짓도 한두 번이지 반복되다보면 염증 나고, 감성이 풍부하고 섬세한 이들은 허무감에 몸부림치다 구토 끝에 자살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느 정도까지 살다 가야 적당할까. 이 문제와 관련, 과격·주관적이긴 하지만 명쾌·타당성 있는 말을 하는 이가 있다. 철학자 윤구병(72) 보리출판사 대표이다. 그는 1995년 충북대 철학과 교수를 등지고 전북 변산에 내려가 농촌공동체를 일구었다. 농사를 짓는 한편 어린이 도서를 발간하는 등 도시 기계문명과 맞서왔다. 그는 “처음 변산에 내려올 때는 젖먹이 농사꾼이었다. 지금은 다 없어졌지만 몇 해 열심히 농사를 지으니 배에 초콜릿 복근이 생기더라. 탤런트 권상우는 쌍절곤으로 복근을 만들었다지만… 하하하. 한때 내 별명이 풀매도사였다. 누구보다 풀을 잘 매서 붙은 말이다. 도시인 10명이 할 일을 혼자 해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건강하던 그가 최근 말기 간암으로 투병 중이다. 당연히 그답게 수술도, 항암치료도 거부하고 있다.
“인간 칠십 고래희(古來稀)다. 이 정도 산 것도 드문 일이다. 징글맞게 오래 살았다. 병원 치료는 받지 않고 있다. 병이든 교통사고든 이 나이에 죽으면 다 자연사다. 무슨 염치로 더 살겠다고 약을 먹고 주사를 맞겠나. 지난 40여년 우리 세대는 큰 잘못을 저질렀다. 후손이 살아야할 기본자산, 물과 공기와 땅을 산업화라는 이름으로 더럽혀왔다. 일흔이 넘으면 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윤 대표는 이런 말도 했다.
“노인들이 청년들의 재산과 일자리를 꿰차고 있으면 되겠는가. 지난 세월 온갖 삽질로 자연을 망쳤으면서도 젊은이에게 기대고 살겠다면 너무 뻔뻔한 일 아닌가. 문명의 물줄기를 돌려야 한다.”
필자 역시 ‘언제 죽을까’라는 화두를 늘 염두에 두고 있다. 자기 앞의 생을 마감하는 가장 좋은 시기는 바로 ‘준비됐을 때’인 것 같다. 무슨 뜻인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종교인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 순간일 것이고, 작가는 쓰고 싶은 것을 마무리했을 때일 것이고, 필자 같은 소시민은 아침에 일어나는 게 더 이상 기다려지지 않을 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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