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돌봄’ 나선 남성 독거노인들, 고독감 던졌다
‘자가돌봄’ 나선 남성 독거노인들, 고독감 던졌다
  • 이상연 기자
  • 승인 2015.09.11 14:08
  • 호수 48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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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노인복지관 ‘젠틀맨 프로젝트’
▲ 서울 마포노인복지관 ‘고품격 젠틀맨 프로젝트’에 참여 중인 남성 어르신들이 활짝 웃으며 동료들과 함께 웃음치료 교육을 받고 있다.

동료만나 외로움 해소… 요리 배우고, 위생·청결에도 신경 써

남성 홀몸어르신들이 고독감을 벗어던지고 ‘셀프케어’(자가돌봄)에 나섰다. 주인공은 서울 마포노인복지관 ‘고품격 젠틀맨 프로젝트’(이하 젠틀맨 프로젝트) 프로그램에 참여중인 남성 어르신들.
젠틀맨 프로젝트는 혼자 사는 남성 어르신들의 셀프케어를 통한 사회적 관계망 증진을 도모하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3월부터 현재까지 지지체계 구축(레크리에이션, 웃음치료 등), 셀프케어(자기관리, 가사수행 등) 관련 프로그램들이 진행됐다.
30여명의 참여 어르신들은 삶이 즐거워졌다고 입을 모은다.
이해관(77) 어르신은 10년 전 부인과 이혼한 후 쭉 홀로 지냈다. 자녀들과의 연락도 끊기자 심한 고독감이 찾아왔다. 말 붙일 친구 한명 없어 더욱 힘들었다.
김규욱(73) 어르신은 외로움과 더불어 병까지 얻은 상태였다. 1998년까지 꽤 큰 규모의 회사를 운영했던 그는 IMF 사태 여파로 거의 모든 재산을 잃게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몇 년 뒤 부인마저 하늘로 떠나보냈고, 이후 심한 우울증으로 고생해왔다.
하지만 두 어르신들은 젠틀맨 프로젝트에 참여한 뒤론 외로움이 사라졌다.
이해관 어르신은 “웃음치료 교육을 받는 가운데 어느새 활짝 웃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며 “지난 7월 동료들과 경기 이천 세계 도자기 비엔날레를 다녀온 후 서로간의 정이 더욱 돈독해졌다”고 말했다.
김규욱 어르신도 심각했던 우울증 증세가 크게 해소됐다. 동료들과의 많은 대화가 큰 도움이 됐다. 또 우울증과 함께 찾아왔던 초기 치매 증상도 많이 호전됐다.
그는 “삶이 즐거워지니 요즘엔 건강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며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매주 월요일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1시간을 걸어 복지관을 찾는다”고 밝혔다.
사실 프로그램 초기엔 어르신들 간의 대화가 전무했다. 저마다 상처를 안고 있던 터라 타인에 대한 경계도 심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서로의 아픔을 알게 됐고, 서서히 마음의 벽을 허물어갔다.
마포노인복지관 김혜빈 사회복지사는 “처음 자기소개 시간엔 어르신들이 아무 말 없이 어두운 얼굴을 한 채 고개를 숙이고 계셨다”며 “하지만 요즘엔 모든 분들이 둘도 없는 사이가 돼 ‘형님’ ‘아우’하며 지낸다”고 전했다.
이렇게 외로움을 벗어던진 어르신들은 가사수행 교육을 통해 요리 능력도 키웠다.
홀로 사는 고령 남성들의 경우 조리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부족해 대개는 부실한 식사를 한다. 이런 이유로 식생활 개선 교육 및 조리교육이 실시돼 어르신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10년 전 부인과 사별한 전근태(76) 어르신은 이번 젠틀맨 프로젝트를 통해 처음 요리에 도전했다. 직접 된장찌개·김치찌개·멸치조림·오이냉채 등을 만들어 본 그는 “이런 요리들을 내가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밝혔다. 이전까지 그의 밥상엔 김치 등 기본 반찬과 밥만이 올랐지만 요즘엔 매일 메뉴를 바꿔가며 행복한 식사를 한단다.
또한 어르신들은 ‘멋쟁이’로도 거듭났다.
황성갑 어르신(70)은 “외출할 때 옷매무새 하나에도 신경을 쓰고, 수시로 샤워를 하며 청결함을 유지한다”고 강조했다.
5년 전 전립선암 말기 판정을 받은 황 어르신은 그간 건강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부인과 이혼했던 터라 스스로 저염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꾸준히 건강관리를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주거환경, 의복 등에 대한 위생·청결에는 소홀했다. 그러다 젠틀맨 프로젝트 ‘이미지메이킹 교육’을 통해 작은 노력으로 호감 가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뒤론 자신을 가꿀 줄 알게 됐다.
9월 7일 오후 2시, 이날도 30여명의 어르신들은 교육에 참여했다. 교육 주제는 ‘정리정돈’. 주거 동선에 따른 정리법에 대한 강의가 2시간 동안 진행됐다. 교육 첫 시간이라 실습 없이 이론수업만 진행됐음에도 어르신들은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김혜빈 복지사는 “프로그램에 대한 어르신들의 만족도가 높다”며 “교육 종료 후에도 어르신들간의 꾸준한 만남을 이어갈 수 있는 자조모임을 결성토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상연 기자 leesy@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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