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노인복지센터] 평범한 자서전은 가라! 이색 자서전 뜬다
[서울노인복지센터] 평범한 자서전은 가라! 이색 자서전 뜬다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5.10.16 13:30
  • 호수 49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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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글이 아닌 만화나 영상 등으로 자서전을 만드는 어르신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진은 서울노인복지센터 만화자서전반 어르신들.

개성 넘치는 만화로 표현한 자서전, 영상으로 옮긴 자서전 등 눈길
갓 한글 배운 어르신이 일기‧시화‧편지 등으로 구성한 사연도 감동

“어때요? 자서전에 그려진 캐릭터가 저랑 닮았나요?”
지난 10월 14일 서울 종로구 서울노인복지센터에서 만난 허순애(여‧76) 어르신은 자신이 그린 만화자서전을 들어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평소 알록달록한 무늬가 그려진 벙거지 모자를 즐겨 쓰는 허 어르신은 이를 똑같이 재현한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만화자서전의 막바지 작업에 한창이었다. “커피를 과하게 먹다 생명에 위협을 느낀 경험을 통해 ‘과유불급’이란 주제를 전달하고 싶었다”는 허 어르신의 작품은 뛰어난 그림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개성을 잘 담고 있었다.
최근 만화자서전과 영상자서전 등 이색 자서전이 등장하면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또한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어르신을 대신해 학생들이 써주는 대필자서전과 한글을 깨우친 어르신들이 한 글자씩 눌러 쓴 자서전도 지역사회에 훈훈함을 더하고 있다.
서울노인복지센터가 지난해 처음 시도한 ‘만화자서전’은 어르신들의 사연과 성격을 잘 담은 개성 넘치는 작품들로 호평 받고 있다. 만화자서전반은 만화를 처음 접하는 어르신들로 구성돼 있다. 어르신들은 지난 5월부터 8월까지 진행된 1학기에 현역 만화가인 현상규‧이아미‧심승희‧이대호‧송관규 강사에게 만화 그리기의 기본기를 배웠다. 이때 색연필, 파스텔, 싸인펜 등으로 습작을 한 어르신들은 각자 맞는 도구를 정해 9월부터 시작된 2학기부터 본격적으로 만화자서전을 그렸다.
어르신들은 주로 어린 시절 인상 깊은 사건을 자서전을 담고 있다. 초등학교 때 잃어버린 스웨터에 얽혀 있는 감동적인 사연, 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상경했을 때 겪었던 사건 등 개인의 삶에 큰 영향을 준 사건을 다룬다. 어르신들은 자신이 그리고 싶은 이야기를 먼저 글로 작성한 후 강사들의 도움을 받아 이를 만화 시나리오로 구성했다. 어르신들은 이후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거쳐 현재는 채색 단계를 진행하고 있다.
만화자서전의 분량은 A4 용지 10 ~20장으로 구성되고 한 장당 3~4컷의 만화가 삽입된다. 그림의 양이 만만치 않지만 강사의 도움 없이 홀로 묵묵히 그려 나간다. 오는 11월 초 완성되는 작품들은 12월에 탑골미술관에서 전시회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우충열(70) 어르신은 “자서전을 준비하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 어려울 거 같아서 읽기 편한 만화자서전으로 바꿨다”면서 “손주들에게 할아버지가 이렇게 살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어르신의 인터뷰를 토대로 만들어지는 영상자서전도 주목받고 있다. 현재 영상자서전이 가장 활발히 제작되는 곳은 경기 성남시 중원노인복지관이다. 다수의 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며 연출 실력을 인정받은 박봉하(69) 씨를 주축으로 한 6명의 ‘IT봉사단’은 지난해부터 복지관 어르신들의 삶을 영상으로 옮기고 있다.
한 편당 분량은 대개 10~15분. 간혹 가족의 요청으로 30분짜리로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다. 영상자서전에는 보통 어르신의 인터뷰, 가족사진과 추억의 물건, 그리고 현재의 생활 모습 등을 담는다. 즉 과거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을 골고루 섞어 한 편의 다큐멘터리로 만드는 것이다.
제작기간은 평균 2개월가량이 소요된다. 사전 인터뷰를 시작하고 어르신과 관련된 자료들을 수집한 후에야 촬영과 편집이 진행된다. 이중 자료수집이 가장 오래 걸린다. 2인1조로 활동하는 봉사단은 올해 10월 어르신 30여명에게 영상자서전을 선물했다.
박봉하 씨는 “자서전을 만들다 어르신의 삶의 감동받아 배우는 것이 더 많다”면서 “사전준비기간을 늘리고 구성을 알차게해서 앞으로 영상자서전의 완성도를 높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북도에서는 도내 초·중·고등학생이 지역 어르신들의 자서전 제작에 뛰어들면서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학생들은 읍면동사무소의 추천을 받아 대상 어르신을 선정해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낼 예정이다. 단순한 1회성 만남이 아닌 3~6개월간의 지속적인 면담을 통해 어르신의 인생을 입체적으로 기록하고 이를 책으로 엮을 계획이다.
10월까지 참여학생을 모집하고 내년 1월까지 자서전 쓰기 프로그램을 진행해 2월에 완료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외에도 전남 목포공공도서관이 지난 4월부터 이달 초까지 진행한 ‘어르신 자서전 쓰기’도 특별한 사연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어르신들은 갓 한글을 깨우친 60~90대여서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는 것. 어르신들은 아직 어색한 한글을 이용해 일기, 시화, 편지 등으로 다채롭게 구성한 자서전을 집필했고 이를 모아 11월에는 1인 1자서전을 제작해 조촐한 출판 기념회와 전시회를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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