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의 백내장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의 백내장
  • 이미정
  • 승인 2007.06.16 14: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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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현 씨어앤파트너안과 원장

얼마 전부터 백내장과 연관된 유명인들의 삶을 찾아보던 중 인상파 화가의 대표적 주자였던 ‘클로드 모네’를 접할 수 있었다. 인생의 말기에 백내장으로 고통 받아 화풍에도 영향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 모네의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기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모네전’을 관람 후 안과의사 관점에서 모네의 백내장에 얽힌 얘기를 몇 토막 적어 본다.


우선 모네는 백내장이 생길 수밖에 없는 두 가지 원인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햇빛의 조사량이 많은 해안도시에서 유년기를 보냈다는 점이다. 모네는 청소년기까지 르아브르라는 해안도시에서 자랐다. 해안가는 백내장을 유발하는 자외선이 많이 내리 쬐는 곳이다.

 

둘째는 모네가 장수했다는 점이다. 모네의 백내장이 발견된 시기가 70세 전후였고 수술을 받은 때가 83세였다. 백내장이 노년에 오는 질병이라는 점을 상기할 때 아마도 백내장 발병은 피할 수 없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수술을 받기 직전 모네의 시력은 왼쪽 0.1, 오른쪽은 빛만 겨우 분간 할 수 있었다. 작품 활동에 있어서 상당한 지장이 많았을 것이다. 즉, 한쪽 눈만 사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원근의 느낌을 효과적으로 가지기 어려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한쪽 눈마저 역시 백내장이 있었기 때문에 사물이 뿌옇게 보이면서 상이 왜곡되게 보였을 것이다.


모네는 1923년 1월 10일, 프랑스 파리의 유명한 안과의사인 쿠틀라에게 두 차례에 걸쳐 오른쪽 눈 백내장 수술을 받았다. 첫 날 홍채절제술이 시행됐고, 30일 뒤에는 백내장을 제거하는 수술이 시행됐다.


수술 후 3일 동안 꼼짝없이 침대에만 있어야 했던 모네는 첫 번째 수술이 끝난 뒤 약 한 달 열흘이 되어서야 퇴원하게 된다.


이 당시 백내장수술은 검은자위와 흰자위 경계부위에 약 12㎜ 이상 절개를 한 뒤 백내장에 걸린 수정체를 통째로 빼내는 방법인 이른바 ‘수정체 낭외적출술’이 이용됐다. 현재의 백내장수술과는 많은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현대의 백내장수술은 초음파라는 매개체를 이용해 2.8㎜의 작은 절개를 통해 빨대 같은 도구를 눈 안에 넣어 백내장을 빨아낸다. 전체를 들어내는 수술만이 가능했던 그 때와는 크게 다르다. 수술도 물론 두 번에 걸쳐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단 한 번으로 끝난다.


또 모네가 한 달 넘게 입원해야 했었던 것에 반해 요즘은 입원 없이 하루에 끝나고 집에 가서도 침대에 누워있을 필요가 없다. 수술 후 다음 날부터 좋은 시력이 나오고 대부분의 일상생활이 가능하다.


그때 당시와 지금의 백내장수술의 가장 큰 차이점은 아무래도 ‘인공수정체’의 존재 여부다. 그 당시엔 백내장수술을 성공적으로 끝냈다 하더라도 수술 후 좋은 시력을 얻기가 어려웠다. 백내장을 제거하고 그 자리에 깨끗한 인공수정체가 들어가야 좋은 시력이 나오는데 그 때는 인공수정체가 개발되기 이전이었기 때문이다.


인공수정체는 1949년에 발명 됐지만 1970년대가 돼서야 비로소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모네의 눈에 인공수정체가 삽입되지 않기 때문에 수술 후에도 시력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으며 세상이 모두 노랗게 보이기도 하고 청색으로 보이기도 하는 등의 색 감각에 있어서 큰 혼란이 야기됐다.


모네는 2번의 수술 뒤에도 원인이 규명되지 않은 합병증으로 3번째 수술을 받게 된다. 그 해 7월에 쿠틀라가 기술한 바에 의하면 모네의 눈 상태는 좋다고 되어 있으나 그래도 낮은 시력으로 고생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수술에 불만족한 모네는 반대쪽 눈의 백내장수술을 거부하게 된다.


수술 후 다른 안과의사인 마와스의 처방에 따라 안경을 처방 받아 어느 정도의 시력을 회복하는데, 이 때 사용되었던 안경렌즈가 독일 자이스 제품이다. 이 자이스는 현재 광학에 관한 한 최고의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로 인식되고 있다. 어쨌든 인공수정체가 없던 시절에 시력교정의 유일한 수단이 안경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모네는 안경 덕을 꽤 많이 보았을 것이다.


백내장이 모네로 하여금 사물을 보는데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는 지베르니 정원의 ‘일본식 다리’를 그린 1899·1918·1918~1924년에 그려진 3개의 작품을 비교하면 여실히 드러난다.


백내장으로 진단되기 전인 1899년 작품에선 빛과 그림자가 잘 표현되어 있고 물위에 투영된 나뭇잎의 모습이 세밀히 그려져 있는 반면 1918년 작품에선 다리의 형체도 분간이 힘들 정도의 추상적인 모습으로 변해 있고 마지막 작품에선 도무지 다리라고 도저히 할 수 없는 추상적인 형태로 그려져 있다.


모네가 요즘에 시행되는 첨단 백내장수술을 받았으면 어땠을까? 수술을 아무 고통 없이 받았을 것이고, 수술 후 다음날부터 깨끗한 세상을 보게 되어 신나게 붓을 들었을 것이다.


인공수정체도 노안이 한꺼번에 교정되는 특수인공수정체가 사용되어 먼 거리에 있는 일본식 다리, 연못, 수련과 가까운 거리의 물감, 캔버스 등이 모두 잘 보였을 것이다. 어쩌면 백내장 걸린 눈으로 겨우겨우 그려 냈던 ‘일본식 다리’를 수술 후 다시 보았을 때 ‘내가 지금까지 잘못 그렸군’이라고 생각해서 폐기하고 다시 그리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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