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자랑’ 무대 마련한 신부님의 따듯한 배려
‘노래자랑’ 무대 마련한 신부님의 따듯한 배려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5.11.27 11:25
  • 호수 49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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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시설에서 동네잔치 벌이면 이웃 간 분쟁도 사라져

11월 21일 저녁 8시,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성당(주임신부 유종만). 토요미사가 끝나자마자 성당 안이 순간 공연장으로 둔갑했다. 몇 주 전부터 준비해온 노래자랑 무대가 펼쳐진 것이다. 무대라고 해봤자 성당 2층에서 쏘는 스폿 라이트 뿐이었다. 신자 300여명이 구역 별로 20~30명씩 팀을 만들어 합창 실력을 겨뤘다. 어린이, 젖먹이를 안고나온 주부, 50대 아저씨, 88세 어르신 등 4세대가 어울렸다.
개성 있는 복장도 눈을 즐겁게 했다. 금색모자와 선글라스, 조끼를 멋지게 차려 입은 팀, 한복으로 통일한 팀, 흰 셔츠와 검정색 하의에 머플러를 두른 팀 등. 신자들은 ‘내 나이가 어때서’ ‘빙글빙글’ ‘서울의 찬가’ 등을 피아노·멜로디언·장구 등의 악기 반주에 맞춰 율동과 함께 선보였다. 70대 어르신의 기타 반주도 듣기 좋았다.
지휘자의 면면도 독특했다. 음악 전공자가 아닌 이웃사람들이었다. 초등학교 여자아이가 흰색 드레스를 입고나와 당당하게 20여명 어른들을 지휘했다. 주홍색저고리의 할머니는 지휘를 하다 반주부분에서 춤을 덩실덩실 추는 등 파격의 멋도 연출했다.
합창을 듣는 신자들의 응원도 뜨거웠다. 큰 박수로 격려하고 용기를 주었다. 2시간여 공연이 모두 끝나고 마이크를 잡은 사회자가 심사위원석에 앉은 유종만(바오로) 주임신부에게 노래를 청했다. 시·음악 등에 관심 많은 유 신부는 CD를 낼 정도로 노래를 잘 부르며 강론 끝에는 매번 시 한 편을 소개한다. 유 신부가 송창식의 히트곡 ‘한번쯤’을 부르기 시작하자 두 할머니가 무대 앞으로 나와 어깨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러자 유 신부는 레퍼토리를 바로 ‘뽕짝’으로 바꿔 부르는 순발력을 보였다. 노래하는 신부와 춤추는 신자의 무대가 이날 공연의 하이라이트였다.
이어 시상식이 열렸다. 유 신부는 “함께 모여서 연습하는 과정의 친목과 화합을 중요시 한다”며 “1·2·3등 우열을 가리지는 않았지만 결과는 스스로들 잘 알 것”이라고 말했다.
유 신부가 즉흥적으로 붙인 상 이름에 신자들이 폭소를 터트렸다. 가벼운 율동을 선보여 ‘솜털댄스상’, 끝까지 최선을 다해 노래를 불러 ‘불굴의투지상’,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는 정신으로 준비해 ‘나폴레옹상’, 살아있는 것도 아니고 죽어있는 것도 아니어서 ‘미생상’, 열정은 불타지만 심사위원에게는 전해지지 않아 붙여진 ‘불타요상’ 등이 그것이다.
밤 10시 넘은 시각에 행사가 마무리됐다. 부상으로 받은 상금은 회식비나 성당 발전, 불우이웃 돕기 등에 쓰여질 것이며, 노래를 부르며 쌓은 이웃 간의 정은 신자들의 가슴에 따뜻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이날 공연을 지켜보며 주변의 종교 시설들이 유사한 행사를 많이 주관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서로의 얼굴을 모른 채 때로는 적과의 동침, 때로는 각자도생의 나날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 탓에 소설보다 더 기이하고 잔인한 일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노래자랑 같은 동네잔치를 통해 통성명을 하고 거리를 좁혀간다면 이웃 간의 분쟁이나 다툼, 잔혹한 범죄, 더 넓게는 사회의 갈등·분열·반목·질시 따위는 생기지 않을 지도 모른다.
대한노인회도 일찍이 종교가 노인의 행복한 삶 구현에 도움을 준다고 보았다. 신앙을 갖게 되면 죽음의 공포와 병고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그런 뜻에서 3년 전 기독신우회·불교신도회·천주교신우회를 조직했다. 세 모임은 지역 내 종교시설과 결연을 맺고 서로 왕래하는 등 나눔과 베풂을 통해 편안한 노후생활을 돕고 있다.
노인들은 신앙생활을 영위하고, 목사는 경로당을 방문해 노인들에게 좋은 말씀을 들려주며, 절과 성당의 청년들은 소외된 독거노인의 집을 찾아가 밥을 해주고 몸을 씻어주기도 한다.
노래자랑 그날 밤 이후 1·2등 구분 없이 기발한 상 이름을 붙여주는 것으로 신자들을 격려한 신부의 따스한 마음과 배려가 오랫동안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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