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방지법’ 직권 상정에 필리버스터 맞불… 여야 충돌의 끝은 어딜지 촉각
‘테러방지법’ 직권 상정에 필리버스터 맞불… 여야 충돌의 끝은 어딜지 촉각
  • 배지영 기자
  • 승인 2016.02.26 10:44
  • 호수 5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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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국정원)에 대테러 정보를 집중해 국가 차원의 종합 테러대비책을 마련하도록 한 ‘테러방지법’ 통과를 두고 여야가 정면충돌하고 있다.
여당은 세계적으로 테러 위협이 높아지고, 북한의 위협 또한 커지고 있어 이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테러방지법, 국가 사이버테러 방지 등에 관한 법률(사이버테러방지법) 등 테러법 처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야당은 테러 예방 필요성에는 공감하나 국가정보원에 과도한 권한을 부여하는 것에는 반대하고 있다. 댓글 사건 등을 일으킨 국정원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권한을 분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정의화 국회의장이 지난 2월 23일 제340회 국회(임시회) 본회의에 ‘테러방지법’을 직권상정하자,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 108명이 테러방지법의 표결을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를 신청했다. 이는 1964년 김대중 신민당 의원의 필리버스터 이후 52년 만에 처음이다.
필리버스터는 해적을 뜻하는 스페인어 ‘필리부스테로’에서 유래된 말로, ‘국익을 방해하는 자’라는 뜻으로 쓰이다가 현대에 와서는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자’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 의회에서 다수당이 수적 우세로 법안이나 정책을 통과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 소수당 의원들이 고의로 장시간 연설 등을 통해 의사진행을 합법적으로 방해하는 것을 말한다.
필리버스터는 1854년 미국 상원에서 캔자스, 네브래스카 주를 신설하는 내용의 법안을 막기 위해 의원들이 의사진행을 방해하면서 정치적 의미로 처음 사용됐다. 지금까지 세계 최장 연설 기록은 1957년 미국 상원 스트롬 서먼드 의원이 24시간 8분간 발언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2012년 5월 12일 국회법 개정을 통해 본회의에 부의된 안건에 대해 무제한토론을 할 경우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요구서를 의장에게 제출하고, 해당 안건에 대해 무제한토론을 실시한다는 조항(국회법 제106조 2)을 신설함으로써 필리버스터를 허용했다. 필리버스터는 의원 1인당 1회에 한정해 토론할 수 있고, 재적 의원 5분의 3이상의 서명으로 무제한 토론의 종결동의를 의장에게 제출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이날 첫 발언자로 나선 더불어민주당 김광진 의원은 5시간 33분 연설로 1964년 김대중 의원의 본회의 기록(5시간 19분)을 깼다. 세 번째 발언자인 같은 당 은수미 의원은 10시간 18분에 걸쳐 테러방지법 통과 저지를 위한 무제한 토론을 진행해 우리나라 헌정사상 최장 필리버스터 였던 1969년 박한상 의원의 기록(10시간 15분)을 경신했다.
2월 25일 오후 7시 현재 8명의 의원이 필리버스터를 이어가고 있으며, 이후에도 김경협, 강기정, 서기호, 김용익, 김현 의원 등이 준비 중에 있다. 야당은 임시국회 종료일인 3월 10일까지 필리버스터를 진행해 테러방지법 표결을 저지하겠다는 계획이다.
야당이 필리버스터를 하면서까지 테러방지법 통과에 반대하는 이유는 기존 정부기구 내 이미 비슷한 목적의 조직이 있고, 일부 조항은 국가정보원이 국민을 감시하는데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야당에 따르면, 테러방지법은 ‘국가의 권한 행사를 방해할 목적으로 사람을 상해하여 생명에 대한 위험을 발생하게 하는 행위’도 테러 행위로 규정했다. 해석에 따라 단순 집회, 시위를 테러로 규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테러위험인물의 범위도 ‘테러예비, 음모, 선전, 선동을 했거나 했다고 의심할 상당한 이유가 있는 자’라고 규정했다. 야당은 이를 “국정원이 의심하기만 하면 누구나 테러위험인물이 될 수 있는 독소조항”이라며 “조사대상자의 범위가 모호해 국정원의 무분별한 민간인 사찰과 조사도 허용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현재 여야는 물밑접촉을 통해 테러방지법의 원만한 처리 방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양측 모두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진전은 없는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당은 야당 의원들의 필리버스터가 ‘자충수’라고 판단, 테러방지법 수정안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이 강경하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25일 오전 국회에서 피켓시위를 하며 테러방지법 직권상정 철회를 위한 야당의 필리버스터를 규탄하고 있다.
야당 또한 △감청 문제 △금융정보분석원을 통한 정보수집권 제공 문제 △국정원에 조사 및 추적권을 부여하는 문제 등의 독소조항을 삭제하면 논의를 계속하겠다는 입장만 되풀이 하고 있는 상태다.
4차 핵실험 이후 북한은 국가 기간시설 테러, 사이버 테러 등을 공공연히 언급하고 있다. 테러를 위한 북한의 정보수집 활동이 강화됐다는 첩보까지 있는 상황이다. 우리는 이슬람국가(IS) 등 국제 테러 집단의 표적에도 포함돼 있다. 제대로 테러 예방 활동을 할 수 있고, 인권 침해도 최소화할 수 있는 테러방지법에 여야 모두 머리를 맞대고 신속하게 절충안을 내놓아야 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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