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고전주의 문학 꽃피운 ‘절친’이자 라이벌
독일 고전주의 문학 꽃피운 ‘절친’이자 라이벌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6.03.04 13:41
  • 호수 5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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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독일문학의 거두, 괴테 vs 실러
▲ 괴테(사진 왼쪽)와 실러(오른쪽)는 돈독한 우정을 쌓아가면서 두 사람의 대표작인 ‘파우스트’와 ‘빌헬름 텔’이 탄생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기도 한다.

괴테 ‘파우스트’ 20대부터 60년간 집필한 대작… 인간의 욕망 다뤄
실러 ‘빌헬름 텔’ 활 든 영웅 통해 14세기 스위스 민족의 투쟁 그려

독일 튀링겐주(州)에 위치한 바이마르는 인구 6만5000여명의 작은 도시지만 독일 고전주의의 꽃을 피운 공로로 199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이곳의 대표 건물인 바이마르 국립극장 앞에는 이 도시를 널리 알린 두 인물을 기리기 위한 동상이 세워져 있다. 두 사람은 여러 모로 달랐다. 한 사람은 키가 190cm가 넘는 거구였고 다른 한 사람은 169cm에 불과한 단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서로를 인정하고 격려하며 독일 고전주의를 세계에 알렸다. ‘파우스트’라는 대작을 남긴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와 ‘빌헬름 텔’의 저자 프리드리히 실러(1759~1805)의 이야기다.
두 사람과 떼놓을 수 없는 것이 고전주의다. 고전주의란 그리스‧로마의 고전 문화의 부흥을 꾀하며, 그것을 모방하려는 예술 사조를 말한다. 17세기 프랑스에서 개화해 괴테와 실러가 우정을 나누며 서로 협력한 10년여 동안(1794 ~1805)을 절정기로 평가한다.
두 사람의 우정이 시작된 건 실러가 1794년부터 발간한 잡지 ‘호렌’(Horen)에 괴테가 참여하면서부터이다. 괴테와 실러는 경쟁하면서도 수백 편의 시를 합작해서 쓰기도 했다. 급기야 실러가 괴테를 따라 바이마르로 이주했고 두 사람은 실러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돈독한 우정을 이어간다.
실러의 대표작인 ‘빌헤름 텔’의 탄생에는 괴테가 큰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에선 ‘윌리엄 텔’로도 유명한 이 작품은 괴테가 스위스를 여행하면서 발견한 전설을 토대로 실러가 쓴 희곡 이다. 또 작품을 무대에 처음 올린 것도 괴테였다.
아이의 머리에 올려놓은 사과를 맞춘 명사수의 일화로 많이 알려진 작품은 14세기 초 오스트리아에 대항하는 스위스 민족의 투쟁을 다룬다. 스위스는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는 동안 악한 총독들의 폭정에 시달렸다. 이중 알도로프 마을이 특히 심했다. 성을 쌓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강제로 동원됐고 총독인 ‘게슬러’는 마을 광장에 막대기를 세우고, 그 위에다 모자를 씌운 뒤 누구든지 거기에 인사하도록 강요했다.
어느 날 ‘빌헬름 텔’은 장남 ‘발왈터’과 함께 이 광장을 지날 때 실수로 인사를 하지 못했고 그 자리에서 체포됐다. 심술궂은 게슬러는 텔이 아들의 머리 위에 사과를 올려놓고는 이를 활로 쏘아 맞추면 용서해 주겠다는 명령을 한다. 텔은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며 용서를 구했으나 게슬러는 이를 외면했다. 결국 텔은 아들의 생사가 걸린 위급한 상황에서 침착하게 활시위를 당겼다. 화살은 사과 한가운데 정통으로 맞았고 구경꾼들 사이에 만세 소리가 일어났다.
텔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게슬러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만약에 텔이 실패했다면 자신을 쏘아 죽이려 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게슬러는 즉각 텔을 체포한 후 배에 태워 감옥으로 보냈지만 연행 도중 텔은 폭풍이 부는 것을 이용해 탈출한다. 이어 바위산 위에 오른 텔은 자신을 오랫동안 괴롭혀온 게슬러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한다.
이를 계기로 하나로 뭉친 마을사람들은 총독의 성을 공격해 함락시킨 후 부하들을 나라 밖으로 추방한다. 오랫동안 염원했던 평화를 되찾은 것이다.
아쉽게도 실러는 이 작품을 세상에 선보인 이듬해인 1805년에 작고한다. 이로 인해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인물이 괴테다. 친구를 잃은 슬픔에 잠시 방황하던 그는 환갑을 맞이한 1809년부터 다시 왕성한 집필활동을 시작한다. ‘파우스트’를 비롯, ‘이탈리아 기행’(1816), ‘마리엔바트의 비가’(1823) 등을 이때 남겼다.
특히 20대 때 처음 구상해 60년에 걸쳐 집필한 희곡 파우스트는 괴테 문학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빌헬름 텔’이 괴테의 조언을 통해 탄생했다면 ‘파우스트’는 실러의 격려를 통해 세상의 빛을 본다. 괴테는 라이프치히 대학을 졸업한 직후부터 이 작품에 몰두했지만 끝내 미완성의 상태로 ‘파우스트 단편’(1790)을 공개한다. 이를 읽은 실러가 감탄하며 괴테에게 계속 쓸 것을 독려했고 1808년에서야 1부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2부 역시 한참이 지난 1825년에 시작됐고, 6년이 흐른 1831년 완성된다.
작품은 악마와 계약한 대가로 향락을 즐기다 결국 천벌을 받아 지옥에 떨어지게 되는 ‘파우스트 전설’을 토대로 한다. 1부는 일명 ‘그레첸 비극’으로 지칭하는데, 괴테가 젊은 시절에 본 미혼모의 유아살해 사건에서 소재를 얻은 것이다.
주인공 파우스트는 중년이 될 때까지 많은 지식을 섭렵했지만 여전히 인간의 능력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좌절한다. 이때 악마가 파우스트 앞에 나타나 마법의 힘으로 그의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제안한다. 단, 파우스트가 만족한 순간 그의 영혼을 빼앗는다는 조건을 달았다. 마법의 힘으로 젊음을 되찾은 파우스트는 순진한 처녀 그레첸을 유혹해 타락시킨다. 그레첸은 이 죄값을 치루기 위해 자신이 낳은 아이를 죽이고 사형을 언도받는다. 파우스트는 메피스토의 힘을 빌려 그레첸을 탈출시키려 하지만 그녀는 도움을 거절한 채 죄값을 치르고 영혼도 구원받는다.
2부에서 파우스트는 전설의 미녀인 트로이의 헬레네를 저승에서 불러온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오이포리온이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자, 헬레네는 저승으로 돌아가고 파우스트는 또 혼자가 된다. 결국 파우스트는 자신의 쾌락이 아닌 인류를 위해 살기로 결심하고 대규모의 간척 사업을 실시한다. 오랜 시간 이어진 공사가 끝나고 자신이 한 일에 만족한 그는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 라는 말을 남기고 죽고 만다. 악마와 맺은 계약에 따라 지옥에 가야 했지만 그레첸의 도움으로 그 역시 구원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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