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닥터’ 말 무조건 믿으면 안돼
‘쇼닥터’ 말 무조건 믿으면 안돼
  • 배지영 기자
  • 승인 2016.03.25 10:53
  • 호수 5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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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증 안된 의학정보, 방송 프로그램서 쏟아내

#1. 여섯 살, 네 살배기 손주들을 돌보고 있는 김호숙(62)씨는 아토피성 피부염을 앓고 있는 이 손주들에게 피부과에서 처방해 준 스테로이드제를 쓰고 있었지만 부작용이 걱정됐다. 그러던 차에 홈쇼핑에서 피부과 전문의가 아토피에 유산균이 효과가 있다는 말을 해 사서 먹였다. 하지만 유산균만 먹어서 치료가 될 리 없었다. 김씨는 “부작용이 걱정돼 약을 끊고 유산균만 먹였는데 며칠 만에 큰 손주가 피가 나도록 팔목을 긁는 모습을 보고 정신을 차렸다. 잘못된 생각으로 애 잡을 뻔했다”고 후회했다.

#2. 보험영업을 하고 있는 오희라(57)씨는 최근 하루에도 몇 번씩 갑작스레 얼굴과 손이 화끈화끈 달아오르거나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등의 갱년기 증상에 시달렸다. 병원에 갔더니 여성호르몬 치료를 권유했고, 6개월 정도 치료를 받자 증세가 호전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우연히 접한 방송프로그램에서 갱년기 증상에 ‘백수오’가 효과가 있다는 정보를 얻게 됐다. 그 후로 오씨는 병원 치료보다 비용이 3~4배가 더 비싼 백수오 건강기능식품을 사들였다. 처음 몇 달은 효과가 있는 듯했으나 3개월 뒤 오씨에게 갱년기 증상이 다시 찾아왔다. 오씨는 “요즘 다시 병원에서 호르몬 치료를 받고 있다. 괜히 돈은 돈대로 쓰고, 고생만 한 셈”이라고 말했다.

이는 비의학적이거나 근거 없는 의학 정보를 사실인 양 호도하는 쇼닥터로 인해 피해를 본 사례들이다. 100세시대를 맞아 건강이 전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최근 방송사들이 앞다퉈 건강정보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의사들을 패널로 출연시키고 있다. 시청자로서는 방송에서 건강정보를 알려주면 좋은 점이 많다. 예약 잡기도 힘들뿐더러 어렵게 잡은 스케줄에 맞춰 진료실을 찾아도 10~15분 내외의 빠듯한 만남만이 허락됐던 의사들이 넉넉한 시간 동안 본인의 전공분야에 대한 건강정보를 친절하게 알려주기 때문이다. 방송사마다 의학 프로그램을 기본적으로 하나씩 가지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검증되지 않은 의학정보를 방송에서 쏟아내고 있는 쇼닥터로 인해 피해를 보는 시청자들이 늘고 있다. 실례로 한 쇼닥터가 탈모에 ‘어성초’가 효과가 있다며 의학적 근거가 없는 치료법을 제시한 뒤 어성초에 대한 인기가 치솟은 바 있다. 사진은 어성초를 파는 가게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특정 제품 홍보하거나 인지도 높여… 결국 시청자들만 피해
의협 가이드라인 마련 등 자정활동… 의사, 본래 자리로 가야

현재 의사가 출연하고 있는 지상파 또는 종합편성채널 방송은 KBS ‘생로병사의 비밀’과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비타민’이 있으며, EBS는 ‘명의’, MBN은 ‘엄지의 제왕’과 ‘황금알’ 등이 있다. 또 채널A의 ‘닥터지바고’, TV조선의 ‘내 몸 사용설명서’, YTN의 ‘헬스플러스 라이프’ 등 20여개에 달한다.
이같은 프로그램은 일상생활에 긴요한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의사들이 의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부정확한 정보, 특정 식품이나 의료시술 등의 효과를 과장해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자신의 병원 홍보나 제품 판매를 위해 왜곡‧과장된 정보를 확장시키는데 앞장서는 이른바 ‘쇼닥터’ 때문이다. 쇼닥터는 방송에 등장해 의학적 근거가 뚜렷하지 않은 치료법을 제시하는 일부 의사들을 말한다.
이들은 의사 신분으로 방송에 출연해 의학적으로 인정되지 않은 시술을 홍보하거나 건강기능식품을 추천하는 등 과장‧허위 광고를 일삼고 있다. 심지어 A대학병원 교수는 홈쇼핑방송에 1시간 정도 출연해 4000만원의 출연료를 받아간 사례도 있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의사가 추천하는 제품에 솔깃하기 마련이다.
방송 출연을 위해 프로그램 제작진과 연결해주는 ‘브로커’를 기용하기도 한다. 대가는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청률을 위해 흥미를 끌려는 방송사와 인지도 상승을 노리는 출연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생겨난 부작용이다. 이같이 상식을 뛰어넘는 행보를 하는 몇몇 의사들 때문에 쇼닥터가 문제시 되고 있다.
쇼닥터들은 입담이 좋고, 친근하고, 호감이 가는 외모를 가지고 있다. 특히 이들의 말은 전문가로서의 신뢰도가 높기 때문에 자칫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내용에 상업성이 농후하더라도 검증 없이 받아들이기 쉽다.
이는 불필요한 의료서비스를 권하게 되는 악순환이 된다. 의학지식을 알려주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의사 본인의 사업과 연관된 일이거나, 실력이 검증된 사람만 나오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일례로, 한 의사가 지난 2014년 MBN ‘엄지의 제왕’ 방송에 출연해 “물구나무서기를 하면 후두부 동맥 혈류량이 5배 증가해 발모효과가 강해지고 반신욕을 하면 모발색을 검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탈모에 효과가 있다며 ‘어성초’를 소개했다. 함께 출연한 한의사는 어성초가 발모를 촉진하는 효능이 있다고 거들었고, 방송 이후 어성초는 마법의 약재가 됐다. 전국 약재상에 어성초를 찾는 사람들이 줄을 섰고, 어성초의 몸값도 천정부지로 솟았다. 무려 10배가 넘는 가격에 거래되는 기현상을 보였다.
그리고 이 의사는 자신이 만든 어성초 제품을 방송을 통해 홍보했다. 의학적으로 근거가 미약한 발모차·발모팩 등을 자가 개발해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판매했고, 제품은 불티나게 팔렸다. 스스로 만들어낸 건강정보로 부와 명예를 동시에 거머쥐게 된 것이다.
하지만 어르신을 비롯한 일반 시청자가 이러한 쇼닥터를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의학 내용은 접하기 어려운데다 방송에 출연하는 것 자체가 보는 이에겐 신뢰를 주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지난해 3월 의료계 내부의 자정 활동이 필요하다고 판단, 의사들의 방송출연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정했다.
가이드라인의 기본 원칙은 △의학적 지식을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전달한다 △시청자를 현혹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해야 한다 △방송을 의료인·의료기관 또는 식품·건강기능식품에 대한 광고 수단으로 악용하지 않는다 △방송 출연의 대가로 금품 등 경제적 이익을 주고받아서는 안 된다 △의료인의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 등이다.
하지만 이 같은 조치에도 불구하고 쇼닥터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지금도 이런 방침을 비웃듯 의사들이 홈쇼핑에 출연해 건강기능식품을 버젓이 선전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이에 TV 건강 프로그램 관련 제작자를 대상으로 한 식품·건강 교육의 정례화와 함께 시청자 역시 비판적인 정보 습득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특히 쇼닥터의 특징을 잘 아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무차별적인 건강정보를 잘 감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태균 중앙대 의약식품대학원 교수는 지난해 12월 식품 의약품 분야(15개) TV 방송 모니터링 결과와 함께 ‘쇼닥터 감별법 8가지’를 공개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쇼닥터의 가장 흔한 유형은 ‘효능은 내가 보장해’형이다. “돼지기름 자체가 기관지의 점액을 증가시키는 효능이 있다”는 방송 내용이 좋은 예다.
또 ‘쇼핑 호스트겸업형’도 쇼닥터의 전형이다. “OO주스는 매일 만들어 먹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는데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연구한 것이 발효○○주스”라고 방송에서 말한 뒤 실제로 해당 제품을 판매 중인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더불어 의약품·식품·건강기능식품의 효능·효과를 강조하면서도 위험성·부작용 등의 정보는 누락시키거나 축소해 설명하는 ‘약점은 감춰형’, 자신의 발언 내용을 뒷받침하기 위해 제시한 사진·영상 자료의 출처가 불확실하거나 해석이 지나치게 의도적인 ‘자료 해석 아전인수형’, 방송에서 밝힌 핵심 정보나 충고와 관련된 객관적인 근거 자료가 없는 ‘출처는 나도 몰라형’ 등이 있다.
이명진 의료윤리연구회 전 회장은 “여러 건강프로그램에서 수많은 정보를 쏟아내다 보니 정보와 정보가 서로 엉키고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 체험자들의 말이 객관적 사실로 둔갑해 시청자를 현혹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의사들도 전문가로서의 이미지 제고를 위해 정석대로 진료하고 정도를 걷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쇼닥터를 근본적으로 근절하기 위해서는 의료 전문가 집단의 자율징계권이 강화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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