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벗은 금호산, 숲으로 가꾼 동네 어르신
헐벗은 금호산, 숲으로 가꾼 동네 어르신
  • 배지영 기자
  • 승인 2016.04.01 10:54
  • 호수 5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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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동구 이윤우 어르신, 자비 털어 5000그루 심어… 벚꽃동산 조성

“바닥이 돌이어서 나무를 심어도 다음날 쓰러지는 일이 태반이었어요. 매일 같이 산을 드나들며 넘어진 묘목을 다시 세우다보니 어느새 이렇게 숲이 됐네요.”
지난 3월 29일 서울 성동구 금호산공원에서 만난 이윤우(78) 어르신은 15년 전 심은 벚나무를 매만지며 이렇게 말했다. 정식명칭이 ‘응봉근린공원’인 금호산공원은 20년 전까지 나무 한 그루 없는 민둥산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매년 4월 성동구가 주최하는 벚꽃축제가 열리는 울창한 숲으로 바뀌었다. 이곳에 심어진 나무 5000여 그루 중 90%는 이 어르신이 손수 심은 것들이었다.

나남출판사 조상호 대표, 경기 포천에 20만평 수목원 만들어
이창호‧최호숙 부부는 거제 외도 매입해 해상식물원 일궈

▲ 이윤우 어르신은 1995년부터 사재를 털어 서울 성동구 금호산 일대에 벚나무를 비롯한 각종 나무 5000여그루를 심으며 민둥산을 울창한 숲으로 일궜다. 사진은 이 어르신이 자신이 심은 매화나무를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모습. 사진=조준우 기자

2006년 공휴일에서 탈락한 식목일의 위상이 점차 퇴색되는 가운데 이 어르신처럼 여전히 숲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노인들의 활약이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 특히 이들의 활약이 주목받는 이유는 식물이 살기 척박한 곳을 일궈 마을공원, 수목원, 해양식물공원 등으로 탈바꿈시켰기 때문이다.
먼저 사재를 털어 나무를 심고 있는 이 어르신은 40여년 전 성동구로 옮겨와 독서실을 운영하면서 번 돈으로 장학회를 설립하는 등 지역사회에 꾸준히 봉사해왔다. 나무 심기도 지역 노인들에게 매년 마을 뒷동산에서 경로잔치를 열어주고 싶은 순수한 마음에서 시작됐다. 젊은 시절 과수원에서 일했던 이 어르신은 나무에 대한 지식이 풍부했지만 흙보다 돌이 더 많은 척박한 환경 때문에 성공을 확신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1995년부터 시범적으로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포기하지 않고 쓰러진 나무를 계속 세웠고 이에 감복했는지 나무들이 제자리를 잡았다. 여기서 확신을 얻은 그는 1998년 4000만원을 들여 1000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행운도 따랐다. 그가 한창 나무를 심을 때 인근에 초등학교가 신축됐고 여기서 나온 8톤 트럭 15대 분량의 흙을 금호산공원으로 옮겨 올 수 있었다. 이 어르신의 노력으로 현재 금호산공원은 벚나무, 매화나무, 철쭉나무 등으로 숲을 이루게 됐고 이곳의 가치는 수십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가족을 비롯한 지자체 관계자들과 마을사람들도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그의 순수한 열정에 반해 이제는 그의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15년 전부터는 자비로 식사를 대접하며 경로잔치를 열었고 뜻이 맞는 마을사람들과 지자체가 참여하며 마을축제로 발전했다. 매년 축제준비위원들이 준비한 1500만원의 예산으로 벚꽃축제를 열게 된 것이다.
이 어르신은 “올해에도 4월 15일에 벚꽃축제가 열린다”면서 “힘닿는 데까지 나무를 심으며 마을을 가꿔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36년간 2000여 권의 책을 출간하며 출판 외길을 걸어온 조상호(66) 나남출판사 대표의 나무 사랑도 눈길을 끈다. 조 대표는 지난 2008년 경기 파주시 신북면에 20만평의 땅을 구입해 출판사 이름을 딴 ‘나남수목원’을 일구고 있다. 출판업이 나무의 희생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의 행보는 더욱 두드러진다.
여의도 면적 4분 1에 달하는 이 공간에는 잣나무, 산벚나무, 참나무로 구성된 숲이 조성돼 있고 양지바른 곳에는 사회에 공헌한 사람들의 수목장을 위한 반송 2400그루도 심었다.
그는 30여 년 전 아들의 초등학교 입학 기념으로 자신이 살던 서울 개포동 한 아파트 입구에 느티나무 두 그루를 심으면서 나무에 관심을 갖게 됐다. 또 우연히 은행이 부실채권으로 갖고 있던 파주시 적성면 임야 1만5000평을 떠안게 된 것도 한몫했다. 이때부터 조 대표는 산림조합의 가르침을 받아 자작나무, 느티나무 등을 심으며 나무에 대한 지식을 길렀고 수목원을 운영하는 데까지 이른다.
조 대표는 “나무를 키우다 보니 지구의 주인은 나무고, 인간은 그저 자연의 일부일 수밖에 없다는 걸 절감하게 된다”면서 “나이 들면서 더 아름다워지는 것은 나무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경남 거제시의 척박한 섬이었던 외도를 사들여 지역 대표 관광지로 일군 이창호(2003년 작고)‧최호숙(80) 부부의 사연도 큰 울림을 준다.
이 부부는 1969년 태풍 때문에 우연히 이곳에서 하룻밤을 머문 것이 인연이 돼 섬을 통째로 매입했다. 초창기 부부는 밀감을 심고 돼지를 키웠지만 실패했고, 결국 자신들이 좋아하는 일인 식물을 키우는 것에 집중했다. 10여년 전 외도에는 780종의 식물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지만 현재는 1000여 종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용설란과 50년 된 백련초, 쉽게 볼 수 없는 바나나꽃, 야자수, 유칼리, 선인장 등이 관람객을 맞고 있다.
부부는 다양한 나무와 꽃을 심는 동시에 섬을 이국적으로 꾸미는 데도 주력했다. 이를 통해 외도 내에는 아열대식물원, 12개의 비너스상이 전시된 비너스가든, 편백나무숲으로 된 천국의 계단 등의 볼거리가 조성됐다.
공원이 문을 연건 1995년이다. ‘외도해상농원’으로 문을 열고 2005년 ‘외도-보타니아’로 이름을 바꿨다. 현재까지 누적 관람객만 1500만 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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