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간 ‘무수혈 수술’이 대세
조만간 ‘무수혈 수술’이 대세
  • 배지영 기자
  • 승인 2016.04.15 10:43
  • 호수 5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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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 부족한데다 수혈 시 면역거부 등 부작용 해결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고관절 치환술을 받은 김효심씨(63)는 최근 무수혈 수술의 효과를 제대로 체험했다. 평소 같으면 수술 중 400cc 이상의 수혈이 필요했지만, 고용량 철분주사제를 투여 받고 헤모글로빈 농도를 유지하면서 수혈 없이 수술을 마쳤기 때문이다. 김 씨는 “수술 후 하루 만에 몸 상태가 정상으로 돌아와 회복이 빠르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특정 종교인들이 신념에 따라 선택하는 것으로 알려진 ‘무수혈 수술’이 가까운 미래의 수술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수록 수혈할 수 있는 인구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그 대안의 하나로 무수혈 수술이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 종교적 신념 때문이 아니어도 수혈의 부작용을 이유로 수혈을 받지 않는 환자들이 늘고 있다. 사진은 무수혈 환자를 구분하기 위해 수혈을 사절한다는 표식을 써놓은 차트의 모습. 사진=백병원 제공

전국 30여개 병원에서 시행
철분주사제, 자가 수혈 등 활용

혈액 부족 사태는 감염병이 돌아 헌혈 기피 현상이 확산될 때 더욱 심해지는 경향이 있다. 2009년 신종플루와 지난해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당시에는 혈액 재고량이 2일 치 아래로 떨어지기도 했다. 이렇듯 혈액 부족 사태가 만성화되고 있지만 정부는 헌혈 참여 독려 이상의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 등 선진국은 이같은 혈액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수혈 감소 정책을 펴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지난 5년 동안 수혈량이 약 40% 줄었다. 수술 등 치료 과정에서 수혈을 최대한 줄이는 치료법을 개발하고 보급하는 데 앞장선 성과다. 최근 우리나라도 만성화된 혈액 부족 사태와 더불어 수혈로 인한 다양한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무수혈 수술을 선택하는 환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무수혈 수술은 내‧외과 치료를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출혈을 최소화해 수혈을 피하는 치료법으로 자신의 피를 최대한 활용하고 가급적 타인의 피는 공급받지 않는 수술을 말한다. 무수혈 수술은 크게 △정맥철분주사제 △EPO(적혈구 생성촉진제) 투여 △경구용 철분제 △자가 수혈 등으로 나뉜다.
자가 수혈은 수술 도중 생기는 출혈에 대비해 미리 자신의 혈액 일부를 뽑아 보관하다 수술 중 필요할 때 수혈하는 방법이다. 자신의 혈액을 이용하기 때문에 감염이나 면역력 저하 등의 문제가 나타나지 않지만 암이나 패혈증 등으로 인해 혈액이 오염돼 있거나 빈혈이 심하면 이 방법을 선택할 수 없다.
수술과정에서는 혈액응고제를 사용해 출혈량을 최소화하지만 그래도 출혈이 있을 경우, ‘셀세이버’라는 기기로 수술 중 나온 혈액을 흡인해 분리·세척한 뒤, 깨끗한 적혈구만 환자에게 다시 투여하기도 한다.
무수혈 수술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고용량 정맥철분주사제는 철분을 환자의 정맥에 주입해 적혈구 내 산소를 운반하는 헤모글로빈의 농도를 증가시킨다. 1000㎎의 고용량 철분을 15분 만에 투여할 수 있어 수혈량을 최소화하는 데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수술은 심전도, 맥박 산소 계측기, 혈압계, 체온계, BIS, 헤모글로빈 감시 장치 등을 사용해 환자의 상태를 면밀히 감시하면서 진행된다.
유병훈 인제대 상계백병원 무수혈센터 교수(마취통증의학과)는 “과거에는 헤모글로빈 수치가 7 이하(정상 12~13)이면 수술 전에 무조건 수혈을 해서 최소한의 헤모글로빈 수치를 유지하고 수술을 해야 했다”며 “그러나 요즘에는 정맥철분제 등 약제가 좋아져 단기간에 수치를 올리는 방법들이 많아 굳이 수혈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무수혈 수술을 하기 전에는 혈류가 잘 통하도록 혈관을 이완시키는 엽산과 정상적인 엽산 대사에 필요한 비타민B12가 풍부한 음식의 섭취가 권유된다. 엽산이 풍부한 식품에는 브로콜리, 시금치, 쑥, 고사리, 파, 콩나물, 부추, 콜리플라워 등이 있으며, 비타민B12는 육류, 가금류, 해산물, 달걀, 우유 및 유제품 등 동물성 식품에 많다.
이같이 다양한 수혈 대체 방법들이 수술에 도입되면서 무수혈 수술의 성공률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감염, 합병증 등의 수혈 부작용도 함께 사라지고 있다. 실제로 수술시 출혈이 많은 고관절 치환술을 하더라도 수혈을 한 그룹과 하지 않은 그룹을 비교하면 하지 않은 그룹이 회복도 빠르고 합병증이 적었다.
무수혈 수술의 장점은 수혈을 받지 않기 때문에 간염, 에이즈 등에 감염될 위험이 없다는 것이다. 각종 검사를 거친 혈액이라도 막상 환자의 몸에 들어가면 크고 작은 면역반응을 일으킬 수 있어서다. 또한 수술 후 회복이 빠르기 때문에 병원비를 절약할 수 있다.
유 교수는 “넓게 보면 수혈도 장기이식의 하나”라며 “최근 미국에서 수혈 때문에 사망한 환자들을 조사한 결과 폐에 면역반응이 생긴 경우가 많았다는 보고가 있었다”고 말했다.
현재 무수혈수술이 가능한 병원은 전국적으로 30곳 정도이지만, 앞으로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굳이 종교적 신념이 아니더라도, 수혈에 대한 두려움 혹은 수혈 부작용을 우려하는 환자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무수혈 수술은 암을 비롯해 인공관절, 제왕절개, 심뇌혈관질환 등의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출혈이 심한 응급 교통사고 환자나 아무리 약을 써도 혈색소 수치가 올라가지 않는 환자는 무리하게 무수혈 수술을 할 필요는 없다고 지적한다.
유 교수는 “응급환자의 경우 출혈량이 많고 사전에 무수혈 수술을 위한 준비를 하지 않은 만큼 수혈을 통해 빠르게 혈액을 공급받는 것이 우선”이라며 “무수혈 수술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고 마취과와 외과 등이 합심해야 하기 때문에 무수혈 수술 시스템이 잘 갖춰진 병원에서 수술을 받는 것을 권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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