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정액제 15년째 그대로… 병만 키울라
노인정액제 15년째 그대로… 병만 키울라
  • 배지영 기자
  • 승인 2016.04.22 10:37
  • 호수 5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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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 진료비 총액 1만5000원 넘을까 조마조마… 아파도 참는 부작용

친구 사이인 김지호(72) 어르신과 홍경수(73) 어르신은 최근 한 병원에서 비슷한 진료를 받았지만 본인부담금이 3배나 차이가 났다. 친구보다 진료비를 3배 더 많이 낸 환자는 당뇨병을 앓고 있는 홍 어르신. 홍 어르신은 이 병원이 친절하게 진료한다는 소문을 듣고 고혈압 환자인 김 어르신과 처음 병원을 찾았다. 소문대로 의사가 참 친절하게 진료를 하긴 했지만 그것이 이유였을까? 병원은 전에 다니던 병원보다 진료비가 3000원이나 비싼 4500원을 요구했다. 같이 간 친구는 1500원을 냈는데 말이다. 이유를 물어보니 혈당검사 때문에 노인정액제 구간을 벗어났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상한 기분은 좀처럼 회복이 되지 않았다.

‘정액’ 넘으면 본인부담액 껑충… 진료비 분쟁 빈발로 동네의원 ‘속앓이’
새누리당 ‘2만원 인상’ 공약에 기대감… 복지부 “추가예산 1500억 필요”

노인정액제 진료비 상한선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해 병원에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노인정액제는 65세 이상인 환자가 외래로 내원해 진료와 처치를 받았을 때, 진료비가 1만5000원 이내일 경우 본인부담금을 1500원만 내도록 한 제도다. 그러나 1만5000원을 1원이라도 초과하게 되면 본인부담금이 ‘정액’에서 ‘정률’로 바뀌어 총 진료비의 30%를 내야만 한다. 이 때문에 의료 현장에서는 노인들의 항의가 거세다.
위 사례에서도 김 어르신과 홍 어르신은 모두 초진료 1만4000원이 공통적으로 부과됐지만 홍 어르신에게는 혈당 체크를 위한 슈가스틱이 추가됐다. 혈당검사에 드는 급여액은 1110원. 결국 홍 어르신의 진료비는 초진비와 합하면 1만5110원이 된다. 노인정액제 진료비 기준인 1만5000원에서 고작 110원이 더 부과됐지만 홍 어르신이 내야하는 돈은 3000원이나 많아진 것이다.

이같은 문제가 벌어진 이유는 15년 전 제도가 만들어진 후 정액구간이 단 한 차례도 증액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지난 2009년 시행한 연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층의 의원급 의료기관 진료비 평균은 1만5073원이었다. 하지만 의료수가 상승으로 인해 2014년에는 1만8000원을 넘었다. 상당수 노인 환자들이 ‘정액’ 구간을 벗어난다는 뜻이다.
노인정액제의 목적은 각종 만성질환에 시달리고 있으면서 경제적인 취약계층으로 분류된 노인 환자의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강화해 노인에 대한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고 노인복지를 증진시키기 위함에 있다.
하지만 이러한 좋은 취지의 노인정액제가 적절한 제도 개선이 동반되지 못해 수많은 문제점을 낳고 있는 실정이다. 환자들이 갑작스럽게 진료비가 뛰어오른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다 보니 의료기관에 항의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노만희 대한개원의협의회 회장은 “노인 환자의 본인부담금이 늘어나더라도 실제 의료기관이 얻는 경제적 이익은 전혀 변동이 없는데도 급격하게 본인이 내야할 진료비가 늘어나니 노인환자들의 의료기관에 대한 불만이 속출하고 수납과정에서 환자와의 마찰은 높아만 가고 있다”며 “결국 본인부담금의 상승은 노인환자의 의료서비스 강화라는 이 제도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처럼 노인정액제는 본래 의도와 달리 왜곡될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의사들이 정액구간을 벗어나지 않기 위해 제도적 허점을 이용해 편법 의료행위를 자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본인부담금 상한선을 넘기지 않는 수준에서 ‘임의 처방’을 하고 물리치료 등은 무료로 해주는 방식으로 환자를 끌어오고 있는 것이다.
한 병원 관계자는 “일부 처방이나 검사를 줄여 청구비를 1만5000원 미만으로 맞추고 대신 물리치료를 서비스로 해주는 병원이 상당수”라면서 “편법이지만 환자들 만족도가 높아 자연스럽게 확산되는 분위기”라고 했다.
노인들이 적절한 의료 혜택을 누리지 못하게 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예를 들어 주사와 약물, 물리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있어도 상한액을 넘지 않기 위해 투약이나 검사, 처치 등을 누락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의료계는 노인정액제 진료비 상한선을 최소 2만원 이상으로 올릴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치료비에 부담을 느낀 노인들이 진료를 꺼리면서 병을 키워 오는 경우가 많아지는 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어서다.
최근 새누리당도 총선 공약으로 노인정액제 개선을 약속했다. 새누리당은 노인정액제 기준을 1만5000원에서 2만원까지 단계적으로 인상해 노인들의 의료비 부담을 점차 완화해 나가겠다고 공약했다. 이와 관련, 보건복지부는 새누리당이 최근 제시한 노인정액제 기준의 단계적 인상을 골자로 한 공약 실효성을 놓고 고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진엽 장관도 지난해 8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1만5000원 정액구간 설정은 의료현장에서 부담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인상 필요성에 동의한 바 있다.
그러나 정부는 실효성 있는 제도보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노인정액제 구간이 2만원으로 인상되면 최소 1500억원의 추가 예산이 소요된다”면서 “2만원 인상 시 노인 본인부담은 1500원으로 유지될 수 있으나, 이를 초과할 경우 30% 본인부담에 의해 6000원으로 높아질 수 있어 제도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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