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에 수백명 희생… 책임 큰 옥시의 발뺌에 소비자들 ‘뿔났다’
가습기 살균제에 수백명 희생… 책임 큰 옥시의 발뺌에 소비자들 ‘뿔났다’
  • 배지영 기자
  • 승인 2016.04.29 13:37
  • 호수 5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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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발생한 가습기 살균제 사망 피해의 최대 책임 기업인 옥시레킷벤키저(옥시)에 대한 소비자들의 원성이 커지고 있다. 사망자의 70%가 사용한 제품을 만든 기업이 책임을 회피하며 무성의한 발뺌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어서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지난 2011년 전 국민을 공포로 몰아넣은 ‘침묵의 살인 사건’을 일컫는다. 그 해 5월 10일 급성 호흡부전으로 입원했던 34세 임산부가 숨진 것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신고된 사망자는 239명이며, 1528명이 피해를 입었다. 산모와 어린아이의 피해가 가장 컸다. 질병관리본부는 지난 2012년 2월3일 가습기살균제를 폐 손상의 원인으로 최종 확인했고, 공정거래위원회는 그 해 7월 가습기 살균제 판매업체 4곳을 고발했다.
소비자들의 부작용 호소는 2001년 옥시가 가습기 살균제를 팔기 시작한 직후부터 제기됐다고 한다. 가슴 통증과 호흡 곤란을 호소하는 내용이 홈페이지에 많이 게시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옥시 측은 이러한 소비자의 글을 의도적으로 삭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만약 의도적으로 삭제한 것이라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옥시 측이 유해성을 알면서도 가습기 살균제를 2011년 정부의 판매 중단 명령이 내려질 때까지 제조·판매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옥시 측이 살균제 유해성을 가려내기 위해 서울대에 의뢰한 동물실험을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담당 교수에게 부적절한 돈을 건넸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서울대 교수팀은 가습기 살균제로 쓰인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의 저농도 실험을 했고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임신한 쥐 15마리 가운데 13마리의 새끼가 죽었다는 중간보고를 했다. PHMG는 외국에서 정화조 청소용으로 주로 쓰이는 화학물질이다.
하지만 서울대 연구팀은 옥시의 요구에 따라 별도의 보고서를 따로 만들었는데 가습기 살균제와 폐질환 사이에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으니 추가 연구가 있어야 한다는 다소 모호한 내용이었다. 서울대 연구팀이 연구윤리를 깨지 않았다면 사태가 조기에 수습되고 많은 사람이 숨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또 줄곧 이번 사건과 관련이 없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던 영국에 있는 옥시 본사가 한국지사로부터 이번 사건과 관련해 수시로 보고를 받고 지시를 내리는 등 개입한 증거도 검찰이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검찰 측은 옥시 임직원들을 무더기로 소환해 조사하고 있는 상태다. 지난 4월 26일에는 옥시의 신현우 전 대표가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그는 검찰 조사에서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을 사전에 몰랐다”며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신 전 대표와 같은 날 검찰조사를 받은 옥시 연구부장 최모씨는 “제품이 인체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상급자에게 보고했으나 안전성 검사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PHMG의 유해성에 대한 정보가 회사 내부에서 광범위하게 공유됐음에도 아무런 조치 없이 제품을 판매했다는 사실을 추정케 한다. 앞으로도 검찰은 영국 본사 책임자들을 소환 조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조사를 거부하면 범죄인 인도 청구에 따른 송환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옥시의 사과문 역시 소비자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 검찰조사가 시작되자 옥시는 지난 4월 21일 사망 사건이 발생한 지 5년 만에 처음으로 홍보대행사를 통해 사과문을 배포했다. 하지만 강도 높은 검찰 수사와 비난 여론에 등 떠밀려 마지못해 내놓은 ‘성의 없는 사과’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옥시는 ‘가습기 살균제와 관련해 말씀드립니다’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통해 “조금 더 일찍 소통하지 못해 피해자 여러분과 그 가족분들께 실망과 고통을 안겨 드려 진심 어린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가습기 살균제 관련 환자와 가족을 지원하기 위한 모든 논의와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 2014년 50억원을 출연한 데 이어 이번에도 50억원을 추가로 출연해 총 100억원 상당의 피해보상기금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측은 “이번 옥시의 사과문은 사과가 아니라 입장발표문”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이같은 옥시의 무책임한 처사에 국내 소비자들은 불매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옥시가 만든 제품 목록과 이를 대신해 사용할 수 있는 제품 목록이 돌고 있는 상태다.
사태가 커지자 박근혜 대통령은 “관계 기관들은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과 관련해 철저히 조사하라”며 “생활 화학제품 안전관리에 미흡한 부분은 없는지, 사각지대는 없는지 다시 한 번 점검해서 미진한 부분은 조속히 보완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검찰은 이번 사건이 국민 건강과 생명에 직결돼 있는 만큼 한 점 의혹이 남지 않도록 신속하고 엄정하게 수사해야 할 것이다. 살균제 유해성에 대한 경영진 차원의 조직적인 은폐와 조작 시도가 있었는지 등을 철저히 파헤쳐 국민이 납득할 만한 수사 결과를 내놓아야 한다. 일부 부도덕한 기업의 탐욕으로 인해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는 일이 두 번 다시는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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