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여야 행복한 대가족이랍니다”
“우리는 모여야 행복한 대가족이랍니다”
  • 이상연 기자
  • 승인 2016.05.06 15:19
  • 호수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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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족’이 흔한 시대… 경로효친의 가치 지키는 두 가정

핵가족을 넘어 ‘1인 가구’가 흔한 시대다. 한 집에서 3대가 함께 식사를 하거나, 집안 어르신이 손주들의 ‘밥상머리’ 교육을 하는 등 대가족의 풍경은 이제 귀해졌다. 하지만 대가족 중심의 가족애를 소중히 여기는 가정은 일부에서나마 아직 건재하다. 시대 변화에 따라 형태는 조금 달라졌지만 대가족 문화의 가치를 살리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경북 울진군 북면 부구3리는 모두 합해 10가구가 살고 있는 작은 산골마을이다. 노부부 가구, 홀몸어르신 가구뿐인 이 마을에서 박병식(80) 어르신 가족은 3대가 함께 살며 이웃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 ‘1인 가족’이 흔한 시대에 아직도 전통적인 대가족을 형성해 경로효친의 가치를 지켜나가는 가족들이 있다. 사진은 경북 울진군 북면에서 3대가 함께 사는 박병식(뒤에서 제일 왼쪽) 어르신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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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어르신을 비롯해 부인(장옥이·81), 둘째 아들(박종기·54), 며느리(마이라 도밍고·49), 손주(박현철·15) 등 5명으로 구성된 가족들은 둘 이상이 모이면 담소가 끊이질 않는다. 특히 16년 전 필리핀에서 온 며느리와 시아버지 사이는 아버지와 딸 관계 이상으로 친밀하다.
박 어르신은 “타국생활 적응이 쉽지 않았을 텐데 내색 없이 살림을 도맡아 온 며느리가 대견하다”며 “폐경색 수술 후유증을 앓고 있는 나와 갑작스런 대상포진으로 고생중인 아내의 간호도 해주는 고마운 며느리”라고 칭찬했다.
며느리 도밍고씨는 “한국말이 서툰 저 대신 시부모님 두 분이 아들의 한국말 교육을 많이 해주셨다”며 “한국문화에 대한 조언도 많이 해줘 한국생활 적응이 수월했다”고 전했다.
가족의 배려 덕분인지 도밍고씨는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해부턴 북면 면사무소의 다문화가정 주부 대상 일자리에 참여 중이다.
손주 현철(15)군은 할머니 장옥이 어르신과 ‘단짝’이다. 거실에서 함께 TV를 보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할머니는 손주세대에게 낯선 한자 등을, 손주는 어르신들이 잘 모르는 부분을 설명해준다. 날씨가 더운 여름엔 아예 거실에 이불을 펴고 둘이 함께 잘 정도다.
요즘 같은 농번기는 가족간의 정이 더욱 끈끈해지는 시기다. 박 어르신 부부가 일구는 논밭 일에 온 가족들이 소매를 걷어붙인다. 건설업에 종사하는 아들 종기씨는 휴무 때마다 부모님의 일을 돕는다.
식사 시간은 ‘참새가족’이 따로 없다. 가족 대부분이 함께하는 저녁식사는 서로의 하루 일과를 물으며 웃음꽃이 핀다. 하지만 가족 간에도 꼭 지켜야할 예의범절에 관해선 엄격한 편이다.
아들 종기씨는 “저와 아내, 아들은 부모님이 수저를 든 후에야 밥을 뜬다”며 “개인적인 식사가 끝났더라도 가족 모두 식사를 마칠 때가지 자리를 지킨다”고 말했다. 예전부터 ‘밥상머리’ 교육을 강조해 온 결과다.
이렇듯 전통적인 가족 형태를 갖춘 채 모범적인 다문화가정까지 이룬 박 어르신 가족은 2년 전 경북도로부터 ‘화목한 격대가족상’을 수상했다. 이 상은 경북도가 2014년부터 시행중인 ‘할매·할배의 날’ 행사를 통해 수여하는 것으로, 모범 격대가정(조부모와 손주가 함께 사는 화목한 가정)의 노하우를 널리 알려 전통적인 대가족 문화의 장점을 알리려는 취지로 제정됐다.
박 어르신은 “요즘처럼 가족간의 소통이 부족한 시대에 가족들 덕분에 외롭지 않고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며 자랑했다.
현실적인 여건에 맞춰 대가족의 형태를 유지하는 가정도 생겨났다.
최근 방영중인 드라마 ‘그래, 그런거야’(SBS)는 잊혀져가던 대가족의 일상을 그려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하지만 집안의 대소사가 집안의 큰 어른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점, 친인척끼리 수시로 왕래하거나 제사 때 전 가족이 모두 참여하는 등의 내용은 현실과 다르다는 의견이 많다. 각자 생활하기 바빠 명절에 한 번 만나기도 힘든 현실을 감안할 때 이는 시청자들이 원하는 가족에 대한 ‘환상’일 뿐이라는 것.
충남 청양군 목면의 외진 골짜기 집에선 이런 ‘환상’ 속 풍경이 수시로 재현된다. 4대에 걸쳐 총 12가구, 39명의 대가족이 명절이 아닌 날에도 툭하면 모인다. 막내 아들 내외와 함께 사는 임면택(85)‧김광남(83‧여) 어르신 부부 때문이다.
10여년 전 귀향해 농사짓던 임 어르신은 몇해 전 위암 진단을 받았다. 젊은 장정처럼 일하던 그였지만, 천식까지 겹치며 갑자기 기력이 쇠해졌다. 주말마다 추수를 도우러 왔던 셋째 아들 임동민(53)씨는 아버지의 병간호를 위해 5년 전 그대로 눌러앉아 부모를 모시게 됐다.
임 어르신 부부는 자신들을 찾아온 막내 아들이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론 잘하던 일을 내려놓고 온 것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하지만 동민씨는 “아픈 부모님을 두곤 편히 떠날 수 없다”고 항상 말한다.
사실 이를 먼저 제안한 건 그의 아내 이재분(53)씨다. 평생 싫은 소리는커녕 며느리를 끔찍이 위하는 시부모님에 대한 보은이었다. 때문에 건설현장 책임자로 잘나가던 남편에게 선뜻 낙향을 제안할 수 있었다.
이재분씨는 “우리가 모시고 살기 전까진 주말마다 번갈아 가면서 형님들이 오셨다”며 “특별한 인연으로 맺어진 가족들이 공기 좋은 곳에서 수시로 만나니 행복하다”고 말했다.
연중행사인 김장 역시 이곳에서 치러진다. 워낙 대가족이다 보니 기본 700~800 포기, 많게는 1000 포기씩도 담근다.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달려들어 일하면 김장은 순식간에 끝난다.
특별한 일이 없는 경우엔 각자가 손수 만든 음식들을 바리바리 싸와 작은 잔치가 열린다. 부인 김광남 어르신은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손수 자식손주들의 밥상을 차려낸다. 사위, 손녀사위, 증손주들의 식성까지도 줄줄 꿰고 있어 김 어르신의 손맛은 가족들 사이에 인기가 좋다.
임 어르신 부부는 결혼한 지 65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깨가 쏟아지는 신혼 때처럼 금슬이 좋다. TV를 볼 때면 손을 꼭 잡는다. 다섯 남매 앞에선 평생 다투는 모습을 보인 적도 없다. 가족간의 정이 끈끈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평생 부모의 달달한 결혼생활을 보고 자라 이를 그대로 실천하게 된 것. 덕분에 자녀들은 애정표현에 적극적인 성격으로 자랐고, 손주들도 이를 그대로 물려받았다고 자랑이다.
대한노인회 이 심 회장은 “노년기의 고독감, 희미해져가는 경로효친 문화 등 현 시대의 사회적 문제들은 과거 가족공동체 중심의 사회에선 드문 경우였다”며 “대가족 구성이 어려운 요즘 앞선 두 가족의 사례를 통해 전통적인 대가족의 존재이유와 현실적인 해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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