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센터에서 마음까지 치유해주는 시대
암센터에서 마음까지 치유해주는 시대
  • 배지영 기자
  • 승인 2016.05.20 10:31
  • 호수 5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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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산병원‧세브란스 등 암센터, 명상‧웃음치료 통해 환자 삶의 질 높여

충남 천안에 사는 박영진(64)씨는 지난해 왼쪽 가슴에 멍울이 만져지고 분비물까지 나오자 서둘러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보고 정밀검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박씨는 유방암 판정을 받아 왼쪽 유방절제술과 항암치료를 연달아 받았으며, 수술을 한 이 후에도 6주 동안 매일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체력적인 문제도 문제였지만 한 쪽 가슴을 절제했다는 상실감에 불면증이 찾아온 박씨는 일주일에 두 번 병원 암교육센터에서 실시하는 명상요법에 참여했다. 그 결과, 박씨의 불안증상은 명상요법을 받기 전과 비교해 25% 감소했고, 피로도 16% 줄었으며, 삶의 질은 100점 만점에 명상 전 56점에서 명상 후 71점으로 증가했다.
생사의 기로에 선 암 환자들은 하루하루 목숨을 건 치열한 전쟁을 벌이다 보니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쳐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병원들이 앞 다퉈 환자들의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어루만지는 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고 있다.

▲ 최근 대형병원 암센터에서는 암 환자 치료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치유해주는 강좌 등을 개설하며 환자의 건강을 관리하고 있다. 사진은 메이크업 수업을 받고 있는 여성암 환우들의 모습.

아산병원 4단계 전문클리닉 운영… 스트레스‧통증‧재활 집중지도
외모 변화로 자신감 잃은 환자에 메이크업‧의상활용법 강의 인기

그동안 각 대학병원 암센터에서 제공하던 환자 서비스 프로그램들은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할 정도로 천편일률적이었다. 기껏해야 질환별 식이요법이나 수술 후 관리요령을 알려주는 강좌 정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각 병원들이 암환자 입장에서 무엇이 필요한지 살피고 즉각 도움이 될 만한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현재 주요 대학병원 암센터에서는 통증, 스트레스, 불면증 등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함께 겪는 암환자를 위해 암통합케어센터 등을 운영하며 환자의 건강을 통합‧관리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음악치료‧무용치료‧웃음치료‧원예치료 등과 더불어 항암치료 중 피부 관리와 화장법, 가족과의 의사소통 기술 프로그램 등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환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암 자체를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암환자가 치료에 긍정적인 마음으로 참여하게 하는 것이 좋은 치료 결과를 낳는 데 일조하기 때문이다.

◇아산병원, 4개 전문 클리닉 운영
서울아산병원 암센터는 지난 2014년 암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4개의 전문 클리닉을 개설했다. ‘암환자 스트레스 클리닉’에서는 암환자가 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으면서 겪게 되는 다양한 심리적 변화와 치료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불안, 우울, 불면과 같은 심리적인 어려움을 줄이기 위한 상담치료를 시행하고 있으며, ‘암성 통증 클리닉’에서는 암환자들이 겪는 가장 힘든 증상 중의 하나인 통증을 적극적으로 조절해 환자의 삶의 질을 높여주고 있다.
‘암 재활클리닉’에서는 암 치료 중 또는 치료가 끝난 환자에게 발생될 수 있는 여러 가지 신체 증상 및 피로를 개선할 수 있는 맞춤형 재활치료와 운동법을 처방해 일상생활로 빨리 복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암 평생관리 클리닉’에서는 암 치료가 끝난 후 나타날 수 있는 다양한 증상과 신체 변화에 대해 상담하고 지속적인 관리를 통해 건강한 삶을 이어가도록 하고 있다.
이 외에도 암환자와 가족이 웃음을 통해 마음을 치유하는 ‘사랑의 웃음치료’를 비롯해 ‘명상치료’, ‘발마사지’, ‘원예치료’, ‘요가교실’ 등 암환자와 가족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무상으로 운영하며 삶의 질 관리에 힘쓰고 있다. 또한 각종 멀티미디어 매체를 통해 암에 관한 정보를 동영상으로 제공하고 있으며 다양한 식이 영양 프로그램과 증상관리 교육 프로그램, 각종 동호회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환자들은 각자에게 맞는 프로그램을 직접 선택하면 참여가 가능하다.
이같은 프로그램은 처음엔 입원환자들만을 위해 개설됐으나 프로그램에 참석하기 위해 외래환자들이 일부러 찾아서 내원할 정도로 인기가 많아지자 대상을 외래환자와 보호자까지 확대했다. 특히 요가교실, 발마사지 등 일부 프로그램의 경우에는 인기가 많다 보니 사전 예약을 통해서만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항암치료로 지칠 대로 지친 폐암 3기 환자 김미현(48) 씨는 반신반의하며 시작한 웃음치료로 인해 효과를 톡톡히 봤다고 말한다. 김씨는 “매주 1번씩 웃음교실에 남편과 함께 정기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며 “암 치료를 받기 시작하면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다 보니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져 너무 우울했는데 웃으니까 머릿속에 잡념이 없어지고, 몸에서 엔도르핀이 막 솟아나는 기분이 들어 너무 좋다”고 말했다.
웃음교실에는 김해에서 4시간씩 걸리는 장정을 마다 않는 환자도 있고, 명상 강좌에 참석하기 위해 새벽같이 달려오는 환자도 있다. 행복명상 강좌를 진행하고 있는 김지선 강사는 “명상은 훈련만 잘 된다면 암 환자 누구나 쉽게 할 수 있고, 특히 환자 자신이 치유의 주체가 돼 스스로 회복가능하다는 점에서 암 환자들에게 치료의 자신감을 높여 전체적인 암 치료에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연세암병원, ‘HELP’ 참여프로그램 운영
연세암병원은 병원 내에 ‘HELP’라는 참여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운동치료(Health-healing), 교육(Education), 외모관리와 심리사회적 치료를 병행한다.
운동치료는 암 치료 중이거나 치료 후에 건강하게 먹고 운동하며 삶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게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으로, 관절운동·스트레칭·근력운동·힐링요가 등의 운동치료가 주기별로 진행된다. 운동요법에 관심이 있는 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주 1회 연세대 체육학과 교수의 지도하에 진행되며 이외에도 라인댄스와 코어 운동, 집에서 할 수 있는 맞춤 운동 프로그램이 제공된다. 팀을 구성해 진행하기 때문에 참여자들의 관계 형성을 도와줌으로써 치료효과를 높이는 것이 주목적이다.
교육 프로그램은 각종 암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해 주기 위해 각 질환과 관련된 담당 교수가 강의하거나 암 예방과 극복을 위한 건강한 생활습관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으로 이뤄져 있다. 외모관리 강좌는 암 치료로 인해 지친 모습이 아닌 암을 이겨내는 활기차고 건강한 모습으로 가꾸기를 도와주는 이미지업 프로그램으로 가발관리, 모자와 두건 예쁘게 착용하기, 손톱관리, 피부관리, 두피마사지 등이 진행된다.
마지막으로 심리사회적 치료는 몸의 치료와 더불어 마음을 치유 받을 수 있고 나와 함께 가족도 건강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다. 대표적으로 웃음치료, 명상, 미술치료, 음악치료 등이 있다.
이 중 가장 인기 있는 강좌는 암 치료에 따른 외모 변화로 자신감을 잃은 환자들을 위한 외모 관리 강좌이다. 이 프로그램은 방사선 치료로 인해 생긴 탈모를 감출 수 있는 두건과 가발 활용법을 비롯해 피부를 화사하게 보이는 메이크업, 의상 활용법 등을 환자들에게 알려준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직접 시범을 보이면서 진행하므로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강좌는 매달 한 번 열리는데, 부인암 등 각종 질환으로 인해 투병하고 있는 여성 환우들로부터 인기가 많다.
외모관리 강좌를 수강하고 있는 안춘자(62) 씨는 “유방암 수술을 받고 난 후 여자로서의 인생도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선생님으로부터 인공유방에 대한 설명을 듣고 절제된 가슴을 가릴 수 있는 코디법 등을 배우면서 잠깐이라도 내가 환자라는 사실을 잊은 귀중한 시간이었다”며 “이번에 강좌를 처음 듣게 됐는데 앞으로도 이런 프로그램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참여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조병철 연세암병원 교수는 “암센터들이 암 치료를 뛰어넘어 암 환자의 삶의 질까지 돌봐주는 것은 이미 세계적으로 추세인 상황”이라며 “우리나라의 암 치료 성적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거듭 발전되고 있는 만큼 이제는 암센터들이 암 치료 뿐만 아니라 암 환자의 마음까지 어루만져줄 수 있는 곳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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