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은 안 된다는 보훈처… 5‧18 기념식 반쪽 행사로 끝나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은 안 된다는 보훈처… 5‧18 기념식 반쪽 행사로 끝나
  • 배지영 기자
  • 승인 2016.05.20 11:22
  • 호수 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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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이 거부됨에 따라 결국 기념식이 반쪽 행사로 끝나고 말았다. 국가보훈처는 법적지위가 없는 곡의 제창은 부적절하다는 원칙을 고수했고, 이에 대한 반발은 정치권과 관련 단체와의 갈등으로 번졌다.
지난 5월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거행된 36주년 5‧18기념식에는 황교안 국무총리를 비롯해 김종인 더민주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정진석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안철수·천정배 국민의당 공동대표, 심상정 정의당 대표 등 정부와 여야 지도부, 20대 총선 야당 당선인들이 총집결했다. 이날 박근혜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다.
앞서 박 대통령은 지난 13일 여야 3당 원내대표와의 청와대 회동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과 5·18 민주화운동 공식 기념곡 지정을 강력히 요구한 야당 원내대표의 건의를 받아들여 “국론분열을 일으키지 않는 차원에서 지혜롭게 좋은 방향을 찾아보라고 보훈처에 지시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보훈처는 찬반 의견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의무적으로 다함께 부르는 제창 방식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고 기존대로 합창 방식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뜻을 고수했다. 합창 방식은 참석자들이 함께 부르는 제창과 달리 합창단이 합창을 하는 가운데 참석자들이 자율에 의해 따라 부르는 방식이다. 또한 ‘전례가 없다’며 5‧18 기념곡으로 지정하기 어렵다는 입장도 재확인했다.
이와 관련, 더민주와 국민의당 등 야권은 청와대 회동 이후 ‘협치 무드’가 백지화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보훈처장 해임촉구결의안 제출에 공조하기로 했다. 더민주 우상호 원내대표는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대통령 지시에 항명한 것이라고 본다”며 보훈처장을 비난했다.
새누리당도 제창 불허 방침에 유감을 표명했다. 정진석 원내대표를 비롯한 새누리당 지도부는 이번 행사에서 정부 방침과 달리 야권 인사들과 함께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황교안 국무총리와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은 노래가 불리어지는 내내 굳게 입을 다물어 극명히 대비됐다.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은 이날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국립 민주묘지를 찾았으나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거부 결정을 비판하는 5·18 유가족을 비롯한 시민들의 항의로 인해 기념식에 참석하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5월 18일을 정부 기념일로 지정한 1997년부터 공식행사에서 제창하는 방식으로 불리어졌다. 그러나 작사자인 소설가 황석영씨의 방북 행적과 함께 제목과 가사에 들어있는 ‘님’과 ‘새날’이 북한의 김일성과 사회주의혁명을 뜻한다는 일각의 문제 제기로 인해 이명박 정부 2년차인 2009년부터 공연단 합창으로 대체됐고 공식 식순에도 빠졌다.
그러나 5‧18단체와 시민사회는 “임을 위한 행진곡의 배제는 결국 5‧18 폄하와 역사 왜곡 시도”라며 기념곡 지정과 제창을 끊임없이 촉구했고,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최근 3년간은 기념식에 불참하는 등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광주 민주화운동 중 희생된 윤상원과 들불야학을 운영하다 사망한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위해 1981년 작곡된 노래다. 비극적 죽음과 절망을 딛고 나아가는 비장한 의지와 용기, 결단을 표현한 곡으로서, 가슴 한 켠의 분노와 희망을 꺼내 드는 저항의 노래이자, 민주주의에 대한 연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사연만큼 이 노래는 80‧90년대 민주화 과정을 함께 겪어 온 국민의 정서 속에 깊이 각인돼 있다. 그만큼 시대적 상징성이 노래에 담겼다는 뜻인데, 이같은 노래에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 잣대를 들이대는 것부터 잘못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국회는 이미 지난 2013년 여야 합의로 공식 기념곡 지정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한 바 있다. 국회의장 또한 정부에 국회의 뜻을 존중해줄 것을 요구했다. 이제 소모적인 정쟁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현명한 결단이 속히 내려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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