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병원 개원 100주년… 평생 헌신한 수녀들의 감동스토리
소록도병원 개원 100주년… 평생 헌신한 수녀들의 감동스토리
  • 김학윤 기자
  • 승인 2016.06.03 15:28
  • 호수 5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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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눈의 천사들이 있었음에 우린 행복하였네라!”
▲ 황교안 국무총리가 5월 17일 전남 고흥군 소록도에서 열린 ‘국립소록도 병원 개원 100주년 기념 및 제13회 한센인의 날’ 기념행사에 참석,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43년간 헌신 봉사했던 마리안느 수녀(왼쪽)와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마리안느·마가렛 수녀, 고름 줄줄 나는 한센인들 40여년 돌봐
칠순 넘어 조용히 본국행… 고흥군민들 “노벨평화상 후보로 마땅”

소록도는 한반도의 끝자락 전남 고흥군 녹동 앞바다에 떠 있는 아름다운 섬이다. 섬 모양이 아기사슴 같아서 소록도(小鹿島)라 부른다. 녹동항에서 600미터 거리에 있는 이 섬의 면적은 여의도의 1.5배가량 된다.
일제 강점기인 1916년 총독부에서 전국 각지에 떠돌아다니는 한센병 환자의 격리수용지로 소록도가 선정됐고, 이듬해 5월 17일 소록도자혜의원(현재 국립소록도병원)이 개원되었다.
현재 소록도에 거주하는 한센인은 530여명. 가장 많은 때는 6000명이 넘었다. 자연경관이 빼어난 소록도가 한 맺힌 한센인들을 품은 지 100년, 그곳에서 평생을 헌신한 ‘벽안(碧眼)의 천사들’ 이야기를 들어보자.

6.25전쟁이 휩쓸고 간 후 온 나라가 어려울 때 소록도 병원에서 간호사를 원한다는 소식이 오스트리아까지 전해졌다. 이 무렵 오스트리아에서 간호학교를 졸업한 세 명의 수녀가 차례차례 소록도 봉사를 자원했다. 그렇게 해서 마리안느 슈퇴거(Marianne Stoeger) 수녀는 1962년에, 마가렛 피사렉(Margreth Pissarek) 수녀는 1964년, 마라리아 수녀는 1966년에 소록도에 왔다. 이들은 수녀의 신분이지만 간호사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
당시 환자 6000여명에 아이들도 200여명이나 됐는데, 치료할 약도 돌봐줄 사람도 없었다. 다른 간호 인력이 없는 상태에서 외국인 수녀들은 팔을 걷어붙이고 환자들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위생 장갑도 끼지 않은 채 맨손으로 나병환부(癩病患部)를 만지며 약을 발라 치료했다. 약이 부족하면 지인들에게 호소하여 오스트리아·독일·스위스에서 의약품을 실어 날랐다.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들을 위해 영양제며 분유도 부지런히 구입했다.
그러는 동안 아이들은 계속 태어났다. 한센병 환자인 부모들과 함께 지낼 수 없는 아이들을 위해 영아원을 세웠다. 아이들이 여섯 살이 되어 아무런 이상이 발견되지 않으면 육지의 보육원으로 보내 정상인으로 성장하도록 해주었다.
40병상 규모의 결핵병동을 마련하고 결핵환자를 따로 요양시켰다. 또 외국 의료진을 초청해 장애교정 수술도 주선하고 물리치료기를 도입해 재활의지를 북돋웠다. 수녀들은 죽을 쑤고 과자를 구워 들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아이들을 보살폈다. 수녀들은 오스트리아 가톨릭 부녀회에서 보내 온 생활비까지 환자들 우윳값과 간식비 그리고 몸이 회복되어 떠나는 자들의 노잣돈으로 썼다. 주민들은 전라도 사투리에 한글까지 깨친 수녀들을 ‘할매’라 불렀고 수녀들은 이 호칭을 좋아했다.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는 이런 공적을 인정받아 한국 정부로부터 국민포장(1978년)과 국민훈장 모란장(1996년)을 받는다.
2005년 11월 21일 새벽, 칠순 할머니가 된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는 입도 40여년만에 소록도를 떠나기에 이른다(마라리아 수녀는 먼저 귀국). ‘사랑하는 친구 은인들에게’라는 한글 편지 한 장을 남겨 놓고.
편지에는 “나이가 들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고 주민들에게 부담을 주기 전에 떠나야 한다고 동료들과 늘 이야기 해왔는데 이제 그 말을 실행 할 때라 생각했다”고 쓰여 있었다. 또 “부족한 외국인으로서 큰 사랑과 존경을 받아 감사하며, 저희들의 부족함으로 마음 아프게 했던 일에 대해 이 편지로 용서를 빈다”는 내용도 있었다. 두 수녀의 귀향길엔 43년 전 가져 왔던 해진 가방 한 개만 달랑 들려 있었다고 한다. 누군가에게 알려질까봐, 요란한 송별회가 될까봐 ‘할매들’은 그렇게 조용히 떠났다. 그들은 배를 타고 떠나던 날 멀어지는 섬과 쪽빛 물결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소록도 주민들은 이별의 슬픔을 가누지 못해 일손을 놓고 성당에 모여 수녀님들을 위해 기도를 올렸다. 이 소식을 들은 한 언론사에서 수녀들과 인터뷰하기 위해 오스트리아로 기자를 급파했다. 주민들은 그 편에 수녀들께 편지를 보냈다.
“큰 할매, 작은 할매 감사드립니다. 그토록 곱던 젊음을…… 소록도 한센인들의 손발이 되어 평생을 보내신 할매 두 분께 충심으로 감사합니다.”
귀국 후에도 시련이 있었다. 마리안느 수녀는 대장암 진단을 받았고 한국과 오스트리아를 오가며 세 번이나 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는 많이 아팠는데 소록도 사람들이 기도해준 덕분에 나았다고 감사하고 있다. 마리안느 수녀는 “지금도 우리 집, 우리 병원 다 생각나요. 바다는 얼마나 푸르고 아름다운지… 하지만 괜찮아요. 마음은 소록도에 두고 왔으니까요!”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고 했다. 할매 천사와 소록도 주민들이 다시 만날 기회가 왔다.
천주교 광주대교구와 고흥군, 국립소록도병원이 개원 100주년 경축행사에 마리안느 수녀를 특별 초청했다. 소록도를 떠난 지 11년만이다. 고흥군에서는 청춘을 다 바쳐 한센인 손발이 되어 헌신적으로 봉사한 은덕을 기리기 위해 마리안느 수녀와 마가렛 파사렛 수녀에게 고흥군 명예군민증을 수여했다.
지난 5월 17일 ‘국립소록도병원 개원 100주년 및 제13회 한센인의 날 기념식’이 소록도병원 복합문화센터에서 황교안 국무총리를 비롯해 이낙연 전남 도지사, 국회의원 등 많은 내외 귀빈들의 축복 속에 열렸다. 마리안느 수녀도 참석했다. 이날 기념식은 한센인의 한과 피, 눈물의 역사를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한 ‘한센병박물관 개관식’도 함께 진행된 뜻 깊은 행사였다.
지난해 (사)마리안느·마가렛 이라는 별도의 법인을 설립한 소록도성당 김연준 주임신부는 고흥군의 지원을 받아 다큐멘터리 영화 ‘소록도의 마리안느 마가렛’(가제)을 제작하고 있다. 연말께 개봉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센인들과 고흥군민들은 이에 머물지 않는다. 소록도의 천사로 불리는 마리안느·마가렛 수녀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하자는 여론이 파도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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