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조선‧해운업 구제에 혈세 11조원 투입… 대주주 사재 투입은 왜 없나
정부, 조선‧해운업 구제에 혈세 11조원 투입… 대주주 사재 투입은 왜 없나
  • 배지영 기자
  • 승인 2016.06.10 13:30
  • 호수 5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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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조선‧해운업계에 총 12조원에 이르는 구제 금융을 하기로 결정했다. 한국은행 등이 대출 형식으로 11조원의 자본 확충 펀드를 조성하고, 정부가 현물출자를 통해 1조원을 조달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6월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산업·기업 구조조정 추진계획 및 국책은행 자본확충 방안’을 확정했다.
이날 회의에서 정부는 기업을 지원하는 국책은행 자금 여력을 키우기 위해 한국은행 대출 10조원, 기업은행의 한국자산관리공사 후순위대출 1조원 등을 활용, 11조원 규모의 자본확충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 또 정부가 보유한 공기업 주식 등 1조원어치 현물을 9월 말까지 한국수출입은행에 직접 출자하고 내년도 예산안을 통해 국책은행 추가 증자를 단행키로 했다.
이렇게 조성된 자금은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에 지원돼 조선과 해운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부실채권 증가에 따른 부실을 막는 데 사용될 예정이다. 정부 추계에 따르면, 기업 구조조정에 따른 산업은행과 수협은행의 필요자금은 5조~8조원이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불거진 컨트롤타워 부재 논란을 막기 위해 부총리 주재 관계 장관 회의도 신설했다. 이에 따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고용노동부 장관, 금융위원장이 고정 멤버로 참여한다. 지금까지는 임종룡 금융위원장 혼자 ‘총대’를 메면서 큰 그림 마련과 부처 간 협조 등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뒤늦게나마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적극적인 대처에 나선 것이다.
이번 구제 금융과 함께 조선업종을 중심으로 큰 폭의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이에 따른 대량실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업계는 하청업체를 포함해 앞으로 3년간 최소 5만 여명의 실직자가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유 부총리는 “구조조정에는 고통이 따르지만 상처가 더 곪기 전에 환부를 치료하지 않으면 더 큰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며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정부는 민관 합동 조사단을 발족, 이달 안으로 조선업을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할지 여부를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조선 3사는 인력 및 설비 감축 등을 통해 10조3000억원 규모의 자구계획을 확정한 상태다. 이들 기업은 앞으로 최소 2~3년간 조선업황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주요 자산과 사업 매각, 인력 감축 등을 통해 확보한 10조원으로 회생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미 자구계획을 이행 중인 SPP·성동·대선조선 등 중소 조선사는 자체 정상화가 어려울 경우 대형사의 하청공장으로 만드는 방안이 검토된다.
현대중공업은 하이투자증권 등 3개 금융회사 매각, 자회사 분할 후 지분 매각, 인원 감축 등을 통해 3조5000억원을 확보하기로 했다. 3개 도크 가동을 순차적으로 중단하고 설비도 매각한다. 삼성중공업은 거제도 삼성호텔, 판교 연구개발 센터 등 비핵심 자산과 잉여 생산설비 매각, 인력 감축으로 1조5000억원을 확보한다. 유동성은 유상증자를 통해 마련하기로 했다.
지난해 10월 이미 1조8500억원 규모의 자구안을 내놓은 대우조선해양은 자회사 14개를 모두 매각하기로 하고 도크를 7개에서 5개로 축소하는 등 몸집을 줄이기로 했다. 인력 감축, 임직원 임금 반납도 단행한다. 또 특수선 사업부문을 자회사로 분할한 뒤 경영권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지분 일부를 매각할 예정이다. 이렇게 해서 총 5조3000억원 규모의 자구책을 내놓았다.
그동안 조선‧해운업 분야의 주요 기업들은 과잉설비와 업계현황 악화로 수주가 급격히 줄어 경영난을 겪어 왔다. 게다가 정부와 채권단이 적기에 구조조정을 하지 못해 부실 규모가 커지면서 전체 경제의 발목을 잡는 단계에까지 왔다. 정부가 이제라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구조조정은 ‘속전속결’이 생명이다. 저성장, 수출 감소, 청년 실업 등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에 주는 충격을 최소화하려면 구조조정을 신속하게, 효과적으로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구조조정이 단순한 기업 살리기에 그쳐서도 안 된다. 개별 기업을 넘어 산업 차원의 구조개편을 진행하고 미래 비전을 제시해 우리 경제가 직면한 일자리 부족과 저성장의 탈출구로 만들어야 한다.
또한 기업 근로자는 피눈물을 흘리는데 정작 부실 경영책임이 가장 큰 대주주가 요리조리 책임을 피한다면 구조조정의 정당성이 무너지고 말 것이다. 국민 혈세 투입이 단행되는 만큼 대주주 또한 사재 출연을 통해 적극적으로 고통을 분담하고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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