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코미디언의 감추어진 얘기
어느 코미디언의 감추어진 얘기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6.09.02 11:24
  • 호수 5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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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간다에 ‘구봉서학교’… 출연료, 교회성금 등 기부

90세로 생을 마감한 ‘막둥이’ 구봉서(1926~2016). 그에 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 몇 가지가 있다. 하나가 나눔과 베풂의 삶이었다. 그는 연예계 생활을 하면서 많은 돈을 벌었지만 남을 위해 그만큼 쓰기도 했다. 아프리카에는 ‘구봉서학교’가 있다. 생전에 구씨가 돈을 보내 학교를 세운 것이다. 요즘 유니세프 친선대사인 배우 안성기씨가 TV에 출연해 불쌍한 아프리카 아이들을 돕자고 캠페인을 벌이고 있듯 과거에 우간다도 세계 각국에 손을 벌렸다. 공부하려고 해도 비바람조차 피할 데가 없으니 돈을 좀 보내주면 가건물이라도 짓겠다는 현지 주민의 말을 전해들은 구씨는 버는 대로 돈을 보내고 교회성금도 모아서 전달했다.
구봉서씨는 생전에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거기 졸업한 이가 교사가 돼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말을 듣고 보람을 느꼈다. 우간다 대통령도 한번 오라고 했지만 가보지를 못해 아쉬웠다. 학교 건물을 사진으로 봤는데 수수깡 같은 것으로 지어놨더라. 수억을 보냈는데 왜 그런 가 했더니만 시멘트를 구하려고 해도 운송료가 비싸 엄두를 못냈다더라”고 말했다.
구봉서씨가 장로였다는 사실도 일부만 알고 있다. 그는 연예인교회의 산파역할도 했다. 구씨는 마흔 넘어 온누리교회 하영조 목사의 권유로 기독교를 믿기 시작했다. 1976년 서대문에 있던 그의 집 안방에서 연예인들이 모여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남진․서수남․윤복희․정훈희․김자옥 등이 열심히 참석해 찬송가를 불렀다.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평창동에 건물을 짓고 이름도 서울예능교회로 바꿨다. 요즘은 다들 흩어졌고 구씨와 영화배우 신영균 씨만이 남았다. 신도들은 약 2000명이다. 이제 구씨가 운명을 달리한 이상 신영균씨도 특별히 남아 있을 이유가 없으니 예능교회는 예전의 화려했던 시절을 뒤로 하고 일반교회로 남을 처지가 됐다.
구봉서씨의 또 다른 이면은 그가 평생 지식탐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구씨는 일제 강점기 평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치과의료기기상이었다. 6세에 라디오 프로 ‘국어독본’에 출연해 책을 낭송하는 등 재능을 보였다. 1945년 대동상고를 졸업하고 성악가 겸 작곡가 현제명 선생에게 성악을 배웠다. 대동상고는 양반들이 모여 살던 가회동에 위치했으며 부잣집 자제들이 다니던 학교였다. 중앙․휘문 등 사립명문고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생전에 후배들에게 늘 책을 읽으라고 얘기했던 구씨는 사망하기 전까지도 일본소설과 잡지를 구독했다. 그는 일본말을 오래 동안 쓰지 않아 잘 못하지만 읽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그는 기자에게 “일본에서 문예지를 보내주던 일본인 친구 덕에 잘 봐왔는데 그 친구가 죽는 바람에 요즘엔 문고판 소설을 많이 읽는다. 최근에 나쓰메 소세키의 ‘갱부’를 읽었다. 내가 코미디언이 되지 않았다면 큰 서점 주인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씨의 지식수준은 그의 유행어에서 엿볼 수 있다. 그가 배삼룡과 함께 MBC 코미디 프로 ‘웃으면 복이와요’에서 장단 맞춰 불렀던 ‘김수한무~’가 대표적이다.
‘김수한무거북이와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치치카포 사리사리센타 워리워리 세브리깡 무드셀라 구름위 허리케인에 담벼락 서생원에 고양이 고양이는 바둑이 바둑이는 돌돌이’다.
장수의 상징인 거북이와 두루미는 물론이고 삼천갑자(18만년)를 살았다는 동방삭에 구약성서의 인물로 969년을 살았다는 무드셀라까지 집어넣었다. 구씨는 “김수한무~는 당시 코미디 대본을 쓰는 작가가 따로 없어 내가 일본책을 뒤져 지어낸 것”이라고 말했다.
눈을 감는 순간에도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잊지 않았던 코미디언 구봉서. 그는 “생활이 어려운 후배 코미디언들이 많으니 조의금을 절대 받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천국에 먼저 가서 자리를 잡은 1세대 코미디언들- 서영춘․배삼룡․곽규석 등과 함께 못 다한 회포를 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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